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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산업자재 국산화로 산업발전 기여
정 명예회장은 ‘현장경영’을 중시하며 국외에 의존하던 도료(페인트), 유리, 실리콘 등 건축·산업자재 국산화에 성공해 국내 산업발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36년생으로 한국 재계에서 창업주로서는 드물게 60여년간 경영 일선에서 몸담으며 가장 오래 현장을 지켜온 기업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KCC 관계자는 “재작년까지 매일 회사에 출근해 업무를 봤을 정도로 창립 이후 60년간 업(業)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다”며 “소탈하고 검소한 성격으로 평소 임직원들에게 주인의식과 정도경영을 강조하며 스스로 모범을 보인 경영자였다”고 회고했다.
정 명예회장은 한국전쟁 후유증이 이어지던 1958년 8월 지금의 KCC 전신인 스레이트(석판)를 제조하는 ‘금강스레트공업’을 창업했다. 당시 나이 22살이었다. 맏형이었던 정주영 명예회장은 해외 유학을 권했지만, 정 명예회장은 형의 뒷바라지를 마다하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건축자재 사업에 뛰어드는 길을 택했다.
금강스레트공업은 1970년대부터 사업 확장이 본격적으로 시작돼 1973년에 사명을 ‘금강’으로 변경하고 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이듬해인 1974년 ‘고려화학’을 세워 유기화학 분야인 도료 사업에 진출했고, 1989년에는 건설사업부문을 분리해 금강종합건설(현 KCC 건설)을 설립했다.
2000년에는 금강과 고려화학을 합병해 ‘금강고려화학’으로 새롭게 출범했고, 이후 2005년에 지금의 ‘KCC’로 사명을 바꿔달았다. 정 명예회장은 스레이트 제조업에서 출발해 △KCC(건자재·도료·실리콘) △KCC글라스(유리·인테리어) △KCC건설(건설) 등 삼각편대를 갖춘 글로벌 기업으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고인은 ‘산업보국’ 정신으로 한국경제 성장과 그 궤를 같이 했다. 특히 그동안 외국에 의존하던 도료, 유리, 실리콘 등을 자체 개발해 기술 국산화와 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적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실제로 첨단 기술 경쟁력 확보에도 앞장서 1987년 국내 최초로 반도체 봉지재(EMC) 양산화에 성공했으며, 반도체용 접착제 개발과 상업화에 성공하는 등 반도체 재료 국산화에 힘을 보탰다. 1996년에는 수용성 자동차도료에 대한 독자기술을 확보해 도료기술 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또 2003년부터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던 실리콘 원료(모노머)를 국내 최초로 독자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한국은 독일, 프랑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에 이어 실리콘 제조기술을 보유한 일곱 번째 국가가 됐다.
◇‘영’자 항렬은 역사의 뒤안길로
이번에 정 명예회장이 별세하면서 ‘영(永)’자 항렬을 쓰는 범(汎) 현대가(家) 창업 1세대 경영인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6남 2녀 가운데 ‘왕회장’으로 불린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2001년 타계한 데 이어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2005년), 정순영 성우그룹 명예회장(2005년), 정인영 한라건설 명예회장(2006년), 정희영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2015년) 등도 모두 영면에 들었다. 정주영 명예회장에겐 정희영 명예회장 외에 또 한 명의 여동생이 있었지만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나 외부에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다.
현대가는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을 남긴 정주영 명예회장의 맨손에서 출발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형제들과 의기투합해 1950년 현대건설을 시작으로 현대자동차까지 사세를 키우며 국내 최대 기업 집단으로 자리했다. 정주영 명예회장은 대부분 해당 기업 경영권을 형제와 자녀들에게 나눠주며 현재 범현대가를 이루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2남인 정인영 명예회장과 3남 정순영 명예회장은 맏형인 정 명예회장과 같이 현대건설에서 함께 일하다 독립해 한라그룹, 성우그룹을 일궈냈다. ‘포니정’으로 불린 4남 고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에서 자동차사업을 총괄하며 국내 첫 자동차 모델 ‘포니’개발을 주도한 바 있다. 이후 정주영 명예회장 뜻에 따라 현대자동차를 조카인 정몽구 회장에게 넘긴 후 현대산업개발그룹으로 계열 분리했다.
정 명예회장의 장자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은 2000년 동생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과 ‘적통’ 자리를 두고 벌인 ‘왕자의 난’ 끝에 현대차 계열 회사만 들고 갈라서 나와 홀로서기를 했다. 현대차그룹을 재계 2위로 일으켰으며, 지난해 10월 장남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에게 회장직을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범(汎)현대가는 2000년대 초 경영권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며 ‘영(永)’자 항렬에서 ‘몽(夢)’자를 쓰는 2세대로 넘어간 데 이어 현재는 ‘선(宣)’자를 쓰는 3세대로 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