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비서는 북한 정통 외교관으로 노동당 국제부의 말단 관료로 시작해 한번도 좌천되지 않고 출세가도를 달렸다. 1942년 평남 안주에서 출생한 김 비서는 김일성종합대학을 졸업한 뒤 당중앙위원회 국제부에서 지도원, 부과장, 과장, 부부장, 과장의 직책을 맡으면서 외교업무 경험을 쌓았고, 2007년 초 통일전선부 부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을 막후에서 성사시킨 북측 주역으로 꼽히며, 북한의 대(對)중국 라인 역할도 맡아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과 중국 지도부의 방북 일정을 물밑에서 지휘했다. 2009년 8월에는 고 김대중 대통령 조문을 위한 북측 사절단 일원으로 방한하기도 했다.
김 비서가 김 전 위원장의 각별한 신임과 함께 비교적 짧은 기간에 실세로 급부상한 배경에는 외교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물론 능수능란한 화술과 국제사회에서도 통용되는 세련된 매너 등이 인정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위원장의 넷째 부인인 김옥의 신임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체제 들어 대남 라인이 잇따라 숙청되는 과정에서도 김 비서의 약진은 계속됐으며, 최근에도 노동당의 노선과 정책, 주요인사 등을 결정하는 핵심기구인 정치국 위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 비서는 지난 8월 북한의 지뢰 도발로 말미암은 남북한 긴장 고조 국면에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과 함께 2+2 고위급 접촉에 나서 ‘8·25 합의’를 이끌어 낸 주역이기도 하다.
김양건 비서는 당시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피 흘리지 않고’ 중단시킨 공로를 인정 받아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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