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한나기자] 다음주부터 금융권의 선물환 거래에 대해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의 공동 실태조사를 벌입니다. 조사를 받는 금융사는 일부에 불과하지만, 조사결과에 따라 선물환 거래와 관련된 추가 규제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조사의 직접 대상이 아닌 금융회사들까지도 촉각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의 타깃인 선물환 거래가 해외펀드 헤지과정에서 비롯된 것이고, 해외펀드가 단기간에 엄청난 속도로 증가한데는 정부의 비과세 정책이 적잖은 공을 세웠지요. 이와 관련해 시장부 최한나 기자는 우리나라 달러 수급과 관련해 정부가 보고 있는 큰 그림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지 질문을 던집니다.
몇주전에 유럽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름 휴가철이 지난 때라 한국 사람을 만날 일이 드물거라고 생각했는데, 웬걸요. 가는 곳마다 한국 사람 없는 곳이 없더군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여행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그래서 여행수지는 물론 여행수지를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수지가 큰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매달 기사를 써왔지만, 직접 나가서 보니 정말 그럴 만 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상품수지 흑자와 서비스수지 적자가 어깨를 나란히 하며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여행이나 유학 등으로 빠져나간 달러(서비스수지 적자)를 수출을 통해 벌어들여(상품수지 흑자) 채워넣고 있다는 말입니다.
국제수지의 또다른 항목인 자본수지는 어떤지 볼까요. 올 상반기 기준 자본수지는 117억달러 흑자(유입초)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본 항목을 통해 해외에서 들어온 달러가 반대 경로를 통해 나간 달러를 메우고도 117억달러 남았다는 의미입니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의 자본수지는 유입초과 상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올 상반기 기록이 특별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그동안 달러가 유입되는 가장 큰 창구였던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유출`로 변하고, 대신 외국에서 꿔 온 달러(외채)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외국에서 빌려온 달러가 없었다면 자본수지는 큰 폭의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것입니다.
올 초 재정경제부는 `기업의 대외진출 촉진과 해외투자 확대 방안`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흔히 `해외투자활성화 방안`이라고 불리는 정책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달러가 너무 많으니 밖으로 좀 들고 나가게 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정책입니다.
기업들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내용도 있지만, 이 중 가장 관심을 끈 것은 해외펀드에 대한 세제혜택이었습니다. 해외펀드 투자에서 발생한 소득에 대해 3년간 세금을 물리지 않겠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이 해외펀드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국내 자금이 해외주식시장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표면상 국내 달러를 해외로 빼내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요즘 중국이나 인도, 동남아 국가 주식에 투자하는 펀드 참 많지요. 정부의 해외펀드 장려책과 해외 주식에 대한 관심이 맞물리면서 해외펀드 투자액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작년말 15조원에 불과했던 해외펀드 투자액은 최근 50조원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늘어났을 정도니까요.
이처럼 해외펀드가 단기간에 급속히 불어난데는 정부의 해외펀드 비과세 방침이 적잖은 유인으로 작용했다는게 시장의 평가입니다. 정부가 펀드 수익에 세금을 매기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이후, 매달 해외펀드 증가액이 두배 이상 커졌다는게 그 증거입니다.
당초 목적했던 대로 해외펀드 투자가 급증했으니, 당국은 좋아서 춤이라도 춰야 할텐데 사정은 정반대입니다. 당장 다음주부터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금융권의 선물환 거래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이 당국의 고민을 잘 보여줍니다.
당국이 금융회사들의 선물환 거래를 직접 조사하기로 한 것은 최근 급속도로 늘어난 해외펀드가 대외채무를 늘리는 주범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해외펀드를 헤지하는 과정에서 선물환 매도가 크게 늘었고, 은행들이 이를 희석하기 위한 달러화를 해외에서 빌려오면서 외채를 불어나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관련기사: 해외펀드에 투자하는데 외채가 왜 늘어나나 )
금융사들은 당연히 당국의 조사에 불만입니다. 해외투자활성화 대책을 통해 주식과 부동산 등 해외자산에 투자하라고 부추겨놓고 이제 와서 너무 심하다며 금융사들을 몰아세우고 있다는 것이지요. 금융회사 특성상 돈 벌 기회가 있으면 투자하는 것이 당연한데, 무조건 투기적 거래로 몰아붙이며 범죄자 취급을 하고 있는 것 또한 적절치 않다며 항변하기도 합니다.
좀 더 큰 그림에서 볼까요.
기본적으로 `해외투자활성화 방안`은 국제수지가 흑자를 기록할 때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경상수지 항목에서 균형을 이뤄 달러가 넘치지 않는 상황이라면 굳이 해외로 외화를 퍼내는 정책이 필요없겠지요.
재경부는 당시 정책을 발표하면서 `경상수지와 자본수지가 동시에 흑자를 보이면서 외환 초과공급으로 외환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으므로 자본 흑자를 적정 수준으로 조절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달러가 너무 많이 들어와 외환 수급이 맞지 않으니 이를 조정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서비스수지 적자와 원자재가격 급등세로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크게 줄었습니다. 게다가 올해도 상반기중에만 50억달러 이상의 외국인 주식투자자금이 빠져나갔습니다.
달러가 넘치지도 않는 상황에서 해외주식 투자로 달러를 퍼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외에서 달러를 빌려오는 수 밖에 없는 것이죠.
해외투자활성화 방안이 나왔던 연초에 이미 우리 시장은 중공업이나 조선업 등 수출업체들이 내놓은 선물환 매도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선물환 매물을 받아내기 위한 외채 유입 요인은 그때도 이미 충분했다는 얘깁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설 경우입니다. 내년 글로벌 경제가 미국 경기 둔화와 중국 경기 위축 등으로 올해보다 위축되고, 그로 인해 국내 수출이 올해만큼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경상수지도 적자를 기록하게 될지 모릅니다. 경상수지 항목으로도, 자본수지 항목으로도 달러가 들어오지 않는다면 외채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여건이 바뀌면 방향을 틀어야 합니다. 아직도 달러를 퍼내야 하는 시대인지, 이전에 갖고 있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시점은 아닌지 당국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또 그 때 그 정책이 과연 시의적절했던 것인지도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