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한나기자] "파생상품은 다루면 다룰수록 깊게 파고들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관건은, `넓게` 보는 것 같아요."
이 사람, 선물에 대한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았을 때 선물사를 택했던 사람이다. 사이버 선물회사를 직접 만들었다가 은행에 들어와 주가연동예금을 도입해놓고 증권사로 옮겨 금융공학을 건드리더니, 다시 은행으로 돌아와서 이제는 맞춤형 파생상품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인공은 노상규 신한은행 자금시장부 차장(사진).
남들은 하나만 맛보기도 쉽지 않은 길들을 두루두루 경험해 본 경력 때문일까. 그는 `깊이`보다는 `넓이`가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상품을 만들고 파는 건요, 어느 하나만 잘한다고 되는게 아니더라구요. 고객과 만나야 정확한 니즈를 파악할 수 있고, 그래야 될만한 물건을 만들 수 있으니까요. 마케팅도 해봐야 하고, 딜도 해봐야 하고, 상품설계도 해봐야 `파생상품을 한다`고 할 수 있는 거죠."
남들이 못보는 현상을 잡아내 상품화하는 것도, 고객 마음을 움직여 그 상품을 파는 것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다. 파생상품업계에서 사람은 가장 큰 무기이자 자산. 특히 국내 금융기관들은 외국계 기관에 비해 부족한 맨파워로 고민이 많다. 그는 이것 역시 `깊이` 보다는 `넓이`로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외국계 어느 하우스는 피아니스트 경력을 지닌 퀀트(quant)를 채용했다고 해요. 다양한 경험을 지닌 사람일수록 더 넓게, 남들이 보지 못하는 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 그 판단이 옳다고 봅니다."
신한은행은 올해 발행된 전체 구조화채권 중 절반 이상을 찍어내며 구조화채 거래를 주도했다. 구조화채권이 발행됐다는 소문이 퍼지면 참가자들은 일단 신한은행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중심에 노 차장이 있었다.
"처음 구조화채권을 찍기 시작했던 건 2003년 6월입니다. 조흥은행과 통합 이후 잠시 쉬면서 다시 시작할 만한 메리트가 있는지 점검하고 안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해 밀어붙인거죠. 무엇보다 은행에서 기존 절차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압축적으로 업무가 추진될 수 있도록 인정해준 점이 다른 은행보다 한 발 앞서 나가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은행 시스템 자체가 빠르게 변하는 시장 요구에 맞게 움직여 준거죠."
그는 올해를 구조화채권이 규모 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룬 해라고 평가했다. 열매를 맺기도 전에 꽃이 져버린 2002년과는 차원이 다른 발전을 이뤘다는 것.
"2002년 경험도 있고 이후 많은 사태를 겪으면서, 파생상품에 투자했다가 안되면 정말 크게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 습득됐다고 봐야죠. 시장의 내공이 깊어졌달까요. 다만 크레딧리스크를 적극적으로 부담하지 않으려는 성향 때문에 구조화채권이 은행채로만 거래된 것은 좀 아쉽기도 합니다."
그는 내년에도 구조화채권 시장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를 기점으로 판매하는 쪽이나 투자하는 쪽 모두 관심이 크게 늘었기 때문에 내년에는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차원에서 거래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동안 금리변동 리스크를 헤지하기 위해 설정된 옵션 셀 포지션 규모가 큰 점도 앞으로 구조화채권이 좀 더 많이 발행될 수 있는 배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가장 기본은 `사람`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다양한 경험을 갖고 있고, 다양한 주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인 것 같아요. 남과 다른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한 거죠."
시스템적인 부분도 지적됐다. 외국계보다 부족한 인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국내 금융기관의 문화와 제도 모두에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 "외국계와 비교했을 때 연봉제나 조직 문화적인 측면에서 너무 크게 차이가 납니다. 잘하는 사람을 적극 키우고, 그걸 조직내 다른 부분에서 이해해주는 문화가 조성돼야 해요."
더불어 그는 상품시장이 더 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주식과 금리, 환율시장에 비해 발달 정도가 미약해 앞으로 성장할 여지가 무궁하다는 기대도 함께였다.
"환율은 한해 변동폭이 5%내외에 불과하지만 기업들을 울고 웃게 하지요. 상품시장 변동성은 30%나 되는데도 거의 무방비 상태에요. 금융기관들이 상품 분야를 관심있게 연구하고, 아이디어도 내놓고 해서 해결책을 충분히 제시해줘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가 동북아 금융허브로 도약하는데에도 상품시장 발달은 필수적입니다. 아직 너무 작지만, 그건 그만큼 커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도 되겠죠."
인터뷰 내내 `넓이`를 강조한 그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상상력을 키울까.
"지름길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사람 많이 만나고, 경험 많이 하고, 이것저것 많이 보는게 방법이라면 방법이죠. 퇴근하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머리 속에 떠다니는 생각들을 정리하고, 상품이 될 것 같다 아니다를 결정하곤 하죠. 아직 해보고 싶은게 많아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