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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끄덕끄덕]나락과 캔슬컬처

송길호 기자I 2024.06.21 11:46:38
[정덕현 문화평론가]생물학교수 폴(니콜라스 케이지)은 너무나 평범한 중년 남성이다. 학생들 사이에 별로 인기도 없는데다 소심하기도 한 그는 자신의 연구를 책으로 내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지만 그다지 행동에도 옮기지 않는 인물이다. 그는 수업중에 자신이 예로 들었던 얼룩말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얼룩말의 줄무늬는 맹수들의 눈에 잘 띄어 생존에 불리하지만, 무리 지어 있으면 거대한 동물처럼 보여 맹수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 마찬가지로 그의 평범한 삶은 대중들 속에 있을 때는 아무런 득도 실도 없어 안전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무리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여러 사람들의 꿈에 자신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꿈을 꾸었다는 이들이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그는 유명인사가 되고 광고 출연 제안까지 오는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는 이 인기를 바탕으로 자신의 연구를 책으로 펴낼 수 있으리라는 욕망을 갖게 되지만, 그의 인기는 사람들이 꾸는 꿈이 악몽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이제는 ‘나이트 메어’의 프레디 같은 공포의 존재가 되면서 그의 모든 일상이 파괴된다. 교수직도 박탈되고 가족도 파탄지경에 이른다.

크리스토퍼 보글리 감독의 영화 ‘드림 시나리오’가 꿈을 소재로 가져와 그려낸 폴의 이야기는 여러모로 SNS 시대의 풍경들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 매스미디어 시대에는 미디어가 조명해주는 인물들을 대중들이 주목하는 방식으로 스타가 탄생했지만, 현재 SNS 시대는 어떤 일상적인 사건 속에서도 대중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 벼락스타가 탄생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사실상 인플루언서라고 불리는 이들이 그렇게 영향력을 갖게 된 건 더 많은 수치의 대중들이 관심을 주는 그 상관관계 안에서 생겨난다. 네트워크 상의 주목이란 이처럼 그 거미줄처럼 쳐진 디지털 관계망에서 어느 한 지점이 어떤 계기에 의해 집중되게 될 때 벌어진다. 하지만 이처럼 대중들의 집중에 의해 도드라지게 된 인기나 명성은 어느 한 순간 (심지어 자신의 의지와도 무관하게)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폴이 겪은 것처럼.

한 순간에 벼락스타가 되어 대중들이 원하는 대로만 소비되다가 어느 순간 악몽으로 변하게 되자 폴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이 과정은 최근 해외에서 하나의 트렌드처럼 언급되는 ‘캔슬컬처’를 떠올리게 한다. SNS 상에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계정을 구독 취소하는 문화를 말하는 캔슬컬처는 흔히 유명인들이 어떤 논란을 일으킬만한 일을 저질렀을 때 나타나는데, 이런 문화가 최근 몇 년 간 우리에게 들어와 ‘나락’이라는 인터넷 유행어까지 만들어졌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은 ‘나락 퀴즈쇼’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큰 인기를 끌었는데, “당신도 언젠가 나락에 간다”라는 멘트로 시작하는 이 쇼에서는 ‘다음 중 가장 싫어하는 운동을 고르시오’라는 문제에 ①3.1 운동, ②흑인 민권 운동, ③노동자 인권 운동, ④여성 운동 등을 고르라고 한다. 어느 것을 고르든 그 사람의 성향을 드러내기 마련이라 공식적인 답변이 어려운 이 퀴즈 앞에서 출연자들이 곤혹스러워하는 걸 웃음의 포인트로 삼는 코미디다.

이처럼 코미디 채널에서도 소재로 활용할 정도로 널리 퍼져있는 ‘나락 간다’고 표현되는 이 런 일들은 이제 사회 전반에 벌어지는 여러 사안들에서 유행처럼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음주운전 뺑소니에 거짓말까지 겹쳐져 엄청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김호중은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고, 최근 퇴직한 직원들로부터 갑질 폭로를 받은 강형욱은 바로 이 나락의 위기에 직면해 해명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물론 그만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이들에 대한 대중적인 반감과 불편함은 공감가는 면이 있다. 하지만 아직 진위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사안에 대해서 누군가를 나락 보내는 그 짜릿함에 경도되어 섣불리 나락에 동참하는 흐름은 위험하다. 또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도 그 해당 잘못에 대한 처벌을 충분히 받았다면 다시 사회에 복귀해서 살아갈 수 있는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는 사회 또한 과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피해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 가해자들의 신상을 공개해 2차 가해 논란을 불러 일으킨 사례에서도 ‘나락’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나락 보관소’라 불리는 유튜버가 피해자의 의사를 묵살하고 가해자 신상 공개라는 ‘나락’의 방식을 강행한 건, 결국 그들의 행위가 피해자를 위한 것도 또 이 사안에 대해 분노하는 대중들을 위한 것도 아니라는 걸 말해준다. 결국 그건 나락과 캔슬컬처를 통해 주목받고 이를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의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안이 다시 꺼내져 세간에 집중되는 사이 피해자는 또 다시 과거의 시간으로 되돌려져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사실 폴이 마주하게 된 나락은 그가 했던 어떤 잘못의 결과나 대가가 아니다. 여러 타인들이 꿈에서 자신을 보게 됐다는 사실은 전혀 폴이 의도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가만히 있었는데 대중들에 의해 의도치 않게 주목받게 된 것일 뿐. 하지만 그러한 주목이 기분 좋은 인기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그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사실은 SNS 시대에 우리가 마주한 위험한 현실을 드러내준다. 과거의 아픔을 겪은 피해자가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세상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한 행위로 인해 다시금 그 상처를 헤짚게 되는 그런 일들은 이제 우리에게는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일이 됐다.

나락과 캔슬컬처는 SNS 시대에 누구나 클릭 하나로 쉽게 할 수 있는 의사표현의 한 방식으로 자리하게 됐지만, 바로 그 쉽다는 점이 야기하는 폐해는 누군가의 삶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을 정도로 파괴적이다. 어떤 잘못된 일을 했다고 해도 그것으로 그 사람의 모든 삶과 인생 전체를 결단내는 건 과한 일이다. 심지어 잘못도 아니고 대중들에 의해 의도치않게 벼락스타로 떠올랐다가 그렇게 주목받는다는 이유 하나로 나락을 경험하게 되는 건 SNS 시대에는 이제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똑같은 줄무늬로 무리를 지어 숨어 있다는 그 익명성의 편리함은, 그 각각의 시선들이 무리 바깥으로 튀어나온 하나의 표적을 향할 때 맹수도 어쩔 수 없는 공포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나락이라는 유행어를 그저 우스개로 보기 어렵고, 캔슬컬처를 선선히 공감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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