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상기 칼럼니스트] 한미 FTA 협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협상, 주한 미군기지 이전 비용 협상 등등. 우리나라의 대외 협상 부분에서 가장 광범위한 분야에서 그리고 가장 커다란 비중을 가진 나라 미합중국. 영어로는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이다. 즉, 개별 주권을 갖고 있는 50개의 나라가 합의에 의해 하나의 공화국으로 존재하는 나라인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미국의 실질적 명칭은 The United Corporates of America 가 더 적절치 않나 생각해 본다.
이유는 개별 주(State)의 주장이나 권익을 보호하고자 했던 1776년 독립선언 당시의 의미는 이미 퇴색했고, 오늘날의 미국은 막강한 거대 자본으로 대변되는 기업들(Corporates)의 권익과 주장이 의회내의 입법과정에서 심지어 외국과의 외교 및 통상 문제에서 조차 거의 완벽하고도 합법적으로 보호되고 실현되는 나라로 변모되었기 때문이다.
구 소련 붕괴 및 동유럽 개방에 의한 냉전 체재 종식을 이끌어 낸 레이건 정권 이후 방위산업을 위시한 거대 기업과 친정 관계인 네오콘의 급속한 성장과 지속적 권력 장악은 8년 간의 부시 정권 기간 내내 그 절정을 구가하며 거대 기업 중심의 대내외 경제 및 외교통상정책의 기조를 확고히 다져온 점을 본다면 더욱더 분명해진다.
더욱이 유럽 연합 및 중국발 아시아 신경제 블록의 대두로 인해 세계경제 패권을 잡기가 점차 녹록하지 않은 상황인 데다, 누적된 엄청난 연방 적자 그리고 최근의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총체적 경제 위기 상황은, 미국으로 하여금 국제 사회에서의 무력화를 방지하고 미국경제 회복의 조속한 실현을 지상과제로 삼을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차기 대통령이 민주당의 오바마가 되든 공화당의 맥케인이 되든 상관없이 공격적인 대외 경제 및 무역정책은 그 강도를 더해갈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우리 대한민국의 어려움이 있다.
60여 년을 이어 온 둘도 없는 동맹국으로서 또한 최대 교역국인 한국에 대해, 한마디로 돈과 관련된 모든 정부간 외교, 군사, 통상협상에서 그리고 기업간의 비즈니스 협상에서 전에 없이 국수적 태도의 강공을 펼쳐 올 것은 명약관화하다. 한미 FTA 협상 및 미국산 소고기 수입 협상에서 우리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미국의 공세적 협상을 이미 경험한 바 있다. 그리고, 현재 진행중인 주한 미군기지 이전 비용 및 유지 비용협상 등에서 목격되고 있는 미정부의 과도한 일방적 비용분담 및 비타협적 협상태도는 이러한 우리의 우려가 기우가 아님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매번 미국과의 협상에서, 그 것이 양국 정부간의 외교협상이든 기업간의 비즈니스 협상이든 간에 항상 답답하고 지리멸렬한 협상을 거듭하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매번 깨지고만 있는 것일까? 더 가관인 것은, 누가 봐도 밀려도 한참 밀린 협상인데, 우리측 협상 팀이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성공협상을 자화자찬하며 스스로 공치사 한다는 데 있다. 도대체 무슨 공을 치하하고 무엇을 축하한단 말인가? 바로 여기에 미국의 對 한국 협상 전략이 숨겨져 있다.
그 협상 전략 전술은 호사가들의 얘기처럼 그다지 놀랍도록 창의적이라던가, 우리로선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유별나게 새로울 것은 하나 없다. 거의 언제나 또 거의 모든 對 한국 협상에서 반세기 이상 판에 밖은 듯이 반복적으로 시행되어 왔다는 것이 옳다. 되려, 그토록 변화 없이 반복 되어 온 그들의 협상전략전술을 아직도 간파하지 못한 체, 혹은 대응책을 찾지 못한 체, 허구한날 판판이 당하기만 하는 상황이 오히려 신기하고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다.
어쨌든 그 모든 내막을 이 자리에서 다 풀어 헤칠 수는 없고 필자가 그 동안 조사한 미국 정부 기관 및 기업에서 한국과의 협상에서 반드시 적용하라고 교육하는 기본 내용 몇 가지만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 한국인과의 협상에서는 가격이든 세부 계약조건이든, 심지어 계약서 양식까지도 절대 주도권을 놓치지 마라. (Take initiative with Koreans on price offers, terms, conditions, and even the format of a contract.) 그러면 한국인들은 해당 분야에서 자신들을 능가하는 식견을 소지한 전문가로 당신을 인식하고 오히려 고분고분해 질 것이다.
둘째, 처음부터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최초의 제안을 일체의 양보 없이 협상후반까지 밀어 붙여라. (Stand firm at the beginning and repeat your offer.) 협상 초기 적정한 양보가 미덕이자 관습인 한국 사람들로선, 위세 등등한 미국이 요지부동 일절 양보 없이 막판까지 밀고 가기만 하면 결국은 별 저항 없이 수용할 것이다. (이를 Hard-nosed negotiation(강경협상) 이라 부른다)
셋째, 한국측 협상 상대를 일단 막판까지 몰아 붙여라. 미국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는 가운데, 협상 실패로 인한 처벌과 비난을 받을 지 몰라 안절부절못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측 협상 상대에게 그의 실추된 체면과 위신을 살릴 수 있도록 적절한 ‘타협’이란 양보 제스처를 써서 협상을 유리하게 마무리 지어라. (It is wise to compromise at certain times to allow Korean partner to save face or maintain respectable image.)
실무 협상자뿐 아니라, 배후의 최고 결정권자의 체면과 위신도 함께 살려 주게 되므로, 대외적 체면을 중요시하는 한국인과의 협상 종결 기법으로 이 보다 나은 것은 없다. 게다가, 최종 서명에 앞서 호의로 포장한 추가 양보, 즉, 별것 아닌 덤이라도 하나 더 얹어 주면, 한국측은 이를 대외적으로 성공 협상의 대표적 증거로 떠벌릴 것이니 가급적 챙겨 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를 Sweetner 라고도 부른다.)
넷째, 한국측 핵심 인물과의 돈독한 개인적 유대 관계 수립에 힘써라. 일단 한국인과 친분을 맺게 되면 한국인들은 미국의 유력자인 당신에게 어지간한 상황 정보는 다 알려 줄 뿐 아니라,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당신을 위해 중재자 역할을 기꺼이 자처하며 나서줄 것이기 때문이다. 즉, 한국에선 관계가 관건이다. (Get closer to and establish a friendly relationship with the person or group in charge. The Korean will tell you the whole story and help to mediate if problems are encountered. Relationships are the keys to success.) 공사가 불분명한 한국인과의 개인적 유대는 결국 공적 협상이 난관에 봉착했을 때, 뜻밖의 돌파구를 열어 줄 것이다.
최소한 위에서 열거한 ‘미국측의 한국을 상대로 한 협상 전략 전술’만이라도 제대로 파악하고 향후 협상 테이블에 나서는 우리 정부와 기업의 노력을 기대해 본다
박상기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