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성재기자] 11일 이명박 대통령이 제18대 국회 개원식에서 읽은 시정연설문 곳곳에는 취임 당시 대통령이 천명했던 국정기조가 상당히 달려졌음을 보여주는 여러가지 신호들이 눈에 띈다. 특히 쇠고기 파동 이후 국민과의 소통실패로 바닥까지 추락한 신뢰를 회복해 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번 연설에서는 MB노믹스와 국정운영의 원칙이자 목표로 상징되던 '실용'이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국민들의 경제에 대한 실망감과 정국혼란을 돌파하기 위해 '통합'과 '발전'이 국정운영의 양 바퀴로 등장했다.
이 대통령은 또 시종일관 국내외에서 커져가는 경제 위기를 설파하며, 취임초기의 '경제성장 우선'보다는 '서민경제 안정과 물가안정'을 강조했다. 특히, 지금까지 무대응이거나 원론적 수준에 그쳤던 대북정책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남북대화의 손을 내밀겠다는 의사를 밝혀 향후 진행과정이 주목된다.
◆ 국민 신뢰 회복 의지 강조..'실용' 사라지고 '통합'과 '발전'
이 대통령은 연설에서 국회 개원을 축하하는 초반부의 의례적 언급이 끝나자마자 곧장 최근 경제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어 '발전'과 '통합'을 언급하며 이것이 '이명박 정부 국정운영의 두 수레바퀴'라고 비유했다.
5개월 전 취임 당시 '대통령이 앞장서고 국민들이 따라오는' 방식으로 선진국으로 향해가자던 '독단적' 국정운용 방식과는 다르다. '발전'(성장)을 추구하되, 독단적으로 국민을 끌고가려다 힘에 부치자 '통합'을 강조하고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현재 MB정권의 최대 컴플렉스인 '소통부족''소통실패' 비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그는 "최근 쇠고기 문제는 저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었다"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국민과 함께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더 낮은 자세로 일하겠다'며, 지난 5~6월 대국민 사과문의 한 대목을 한번 언급했다. 이어 "신뢰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큰 자산이며 신뢰가 없다면 경제도 정치도 성공할 수 없다"면서 "국민의 신뢰를 얻는 일에 국정의 중심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신뢰추락의 배경과 원인에 대해서는 '남탓'이거나 '인터넷 탓'이라는 기존의 생각을 버리지 못했다.
이 대통령은 "감정에 쉽게 휩쓸리고 무례와 무질서가 난무하는 사회는 결코 선진화 될 수 없다"며 "부정확한 정보를 확산시켜 사회불안을 부추기는 '정보전염병'도 경계해야할 대상"이라고 말했다. 정권 불신과 그간 시끄러웠던 촛불정국의 배경이 정책오류, 리더십부재에 있다기 보다는 인터넷 등으로 확산되는 '정보전염병' 때문이라는 의미다.
◆ 경제 운용 '안정'중심.. 국민소득은 4만달러서 '3만달러'로 ↓
다섯달 전 취임식에서 '경제살리기가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밝혔던 점에 비해, 이번 연설에서는 '안정 위주의 경제운용'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약속을 잊은 적이 없다"면서도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강물을 거슬러 배를 끌고 가듯 어려운 상황"이라고 진단한 뒤, "무엇보다 물가안정에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경제운용의 내용도 서민생활에 부담이 되는 공공요금 인상 억제, 물가를 압박하는 금융, 외환시장 요인 감소, 민생안정에 재정 투여 등의 대책을 제시했다. 세금규제, 정부부문의 민간이양 등에 대한 언급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또 "부동산 시장의 안정기조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을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지방 부동산시장의 거래가 심각히 위축되고 있어 부동산가격의 안정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거래활성화, 시장기능 정상화를 도모해야 한다"고 부동산 시장 규제완화 방침을 내비쳤다.
'연 7% 성장으로 국민소득 4만달러, 세계 7대 강국'의 약자로 사용했던 '747정책' 가운데 '국민소득 4만달러 공약'도 이번에는 목표점이 바뀌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문에서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고 세계속의 당당한 강국으로 자리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4만달러 국민소득 공약은 10년내 달성을 목표로 한 것이며 이번 연설에 담긴 내용은 대통령 임기중에 3만달러 국민소득이 가능하다는 비전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대북 '無정책'에서 적극적인 대화 제안
이날 이 대통령이 "남북 당국의 전면적인 대화가 재개되여야 한다"며 "과거 남북간에 합의된 성명과 선언들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지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대목은 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 변화를 예고하는 부분이다.
이 대통령은 식량제공, 이산가족문제 해결 등 '남북한 인도적 협력 추진'도 제의하면서 적극적인 대화 의지를 밝혔다.
지금까지 이 정부는 대북관계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해왔다. 또 7.4공동선언, 남북기본합의서, 6.15 공동선언, 10.4정상선언 등 이전 정부들이 거둔 남북화해와 평화 선언을 계승하지 않겠다는 뜻을 비쳐왔다.
취임당시 "남북한 주민이 행복하게 살고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며 제시한 공약인 '비핵 개방구상'이 정부의 대북정책이었다. 그러나 이 구상은 '정책'이라기 보다는 '원칙'만을 담은 것이어서 그간 '대북 무(無)정책 정부'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북핵 해소 및 6자 회담 진행 과정에서 북한이 미국 등 주변국들만을 상대하며 남한 정부를 '왕따'시켜 온 점을 감안해, 이번에는 이명박 정부가 선제적으로 대화의 손을 내미는 방식의 대북정책을 구사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또 적극적인 대북 화해 제스처로 대통령이 연설문에서도 밝힌 최근의 '내우외환' 정국을 돌파하고,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실망스런 시선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의도도 읽혀진다. 이명박 정부에 적대적 감정을 표출했던 북한이 이번 제안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관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