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aily 김윤경기자] 중국 경제의 급성장과 함께 금융시장을 대표하는 주식시장의 덩치도 함께 컸다. 지난 90년 12월, 91년 8월 상하이와 선전에 각각 증권거래소가 개장되면서 거래가 시작된 중국 증시는 시가총액 규모로 세계 10위의 대형시장으로 부상했다. 아시아에선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현재 상하이와 선전 A,B 증시에 상장된 기업 수는 1400여개. 시가총액은 약 5000억달러에 달한다. 증시 참여자들은 계좌수를 기준으로 할 때 6900만명 수준으로 공산당원 수 66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 10년간 주가는 20배나 뛰었다. 2000년엔 상하이증시가 51.7%, 선전증시가 58.1% 급등해 세계 최고의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으며 2001년 상반기에 개설 이후 외국인 투자만 가능했던 B증시가 내국인에게도 개방되면서 200%에 육박하는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성장통 앓는 중국 증시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중국 증시는 갈지자걸음이다. 경제의 외적 팽창이 계속되고 있지만 증시는 오랜 조정기간을 거치고 있다. 올들어 세계 증시가 강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증시는 외따로 뒷걸음질쳤다.
지난 2001년 6월을 고점으로 중국 상하이 A증시는 계속 내리막이다. 몇 차례 소폭의 반등이 이뤄졌을 뿐 지루한 조정장세가 계속되면서 저점을 갈아치우고 있다. 11월 13일 마감가는 1366.75로 52주래 최저치였다.
<상하이A증시 (2001.1.1~2003.11.14)>
자료; 블룸버그
선전 A증시도 같은 흐름이다. 역시 11월 13일 마감가 363.66이 52주래 최저치다.
<선전A증시 (2001.1.1~2003.11.14)>
자료; 블룸버그
올해 남은 기간동안 증시가 회복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적 전망이 대세다. 지난 9월 중국 관영 증권시보가 증권사와 펀드운용사, 상장기업 고위관계자 등 2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의 10%만이 4분기 중국 증시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했고 응답자의 40% 가량은 증시가 약세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태생부터 불완전
이처럼 중국 증시가 맥을 못추고 있는 건 왜 그럴까.
전문가들은 중국 증시가 태생적으로 짊어지고 있는 구조적 한계를 가장 먼저 지적한다. 중국 증시는 시장이 맡아야 할 기업제도의 확립, 자본의 효과적 분배라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그것은 중국 증시에 상장된 대부분의 기업이 국유기업이고 이들 기업의 주식은 매우 제한적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중국 대부분의 상장회사는 최초 국영기업인 유한책임회사에서 출발, 주식회사제로 전환한 뒤 자산평가를 거쳐 상장조건에 부합되면 일반 투자자에게 주식을 프리미엄 발행하는 형식으로 상장된다.
기업의 주식은 상장후 유통이 가능한 부분(유통주)과 유통이 불가능한 부분(국유주와 법인주)로 나뉘게 된다. 그런데 현재 증시에서 국유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8%에 달하며 유통되고 있는 주식은 전체 주식의 약 25%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여러 차례 중국증권감독위원회(CSRC)를 통해 국유주 감소 방안을 내놓았다. 지난 2001년엔 "국유주 감소를 통한 사회보장기금 확보 및 관리에 관한 잠정방법"을 발표, 국영기업이 신규 주식발행이나 증자시 조달 금액의 10%에 해당하는 국유주를 우선 유통시키도록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물량부담을 초래했고 국유주 감소를 악재로 해석한 증시참여 자금의 이탈을 가져오는 등 오히려 부작용을 낳았다. 지금도 여전히 국유주 유통이라는 소식만 전해지면 지수가 곤두박질친다. 국유주 유통 문제는 중국 증시의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고평가 논란
지난 10여년간 가파른 경제성장과 함께 통화량이 급증하고 이것이 불완전한 증시에 투기에 가까운 과도한 투자로 이어지면서 증시가 고평가됐었다는 데에도 별로 이견이 없다. 현재의 침체는 카지노 자본주의(Casino capitalism)의 뒤안길을 보여준다는 것.
증시의 주가수익률(P/E)은 최근 낮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높다. 상하이 A증시의 P/E는 약 33배, 선전 A증시의 P/E는 56배에 달한다.
국유기업의 펀더멘털에 대한 평가 또한 상당히 부풀려져 있다. 중국 소재 투자은행 애널리스트들은 국유기업들이 대대적인 적자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주가수익률(P/E)은 전통적인 시장 가치에 비해 50~60배에 달한다고 진단하고 있다. 주가가 기업실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서 주식가격과 주식가치가 엄청난 괴리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투자부담으로 이어져 투자보다는 투기에 나서도록 부추기는 요인이 되어 왔다.
당국은 분기별로 재무상태를 점검하고 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 기업의 질적가치가 주가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실효를 거두고 있진 못하다.
상장회사의 상당수는 국유주의 지분이 높고 이 경우 회사의 이사장이나 총경리를 정부가 임명한다. 소액일반주주는 회사의 경영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가 없다. 정부가 최대주주로서 회사 경영의 중대사안을 임의로 결정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상장회사의 독립적인 법인지위란 실현될 수가 없는 구조인것이다.
또한 여전히 정치권과 줄이 닿아있는 기업들은 자금을 얻어 살아나고 장래가 유망한 기업들은 돈을 구하지 못해 파산하는 모순도 빈번히 자행되고 있다. 살아나야 할 기업과 그렇지 않을 기업을 제대로 나눌 수 있는 퇴출제도도 미약하다.
우량 기업들은 아예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중국 정부가 추진해 왔던 차스닥(제2증권시장) 시장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기업들은 홍콩을 비롯한 국외 증시에 우회상장하는 쪽을 택하고 있다.
◇근본적 체질개선 요구
증시는 미래성장성을 팔고 사는 곳이다. 따라서 이렇게 중국 증시에 드리워져 있는 그늘은 중국 경제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홍콩소재 밸류파트너스의 펀드매니저 노만 호는 상장기업에 대한 규제, 특히 기업 회계에 대한 감독 및 규제가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기업들이 글로벌 기준에 맞는 위상을 갖추도록 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시장의 활기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보다 큰 관점에서의 체질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중국이 계획경제와 시장경제 사이에서 애매한 입장을 취하기 보단 확실한 “시장화”를 택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실적이 증시에 투명하게 반영되고 투자자들은 상장회사의 실적을 보고 투자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민간기업에 대한 상장기회를 넓혀주고 유통의 한계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얘기들이 모두 여기에 묶일 수 있다.
카이징매거진의 자본시장 및 금융부문 에디터 리 슈펭은 "시장에서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주식이 한정돼 있고 이것이 왜곡된 가격을 초래한다"면서 "모든 주식이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가능할 때 주식시장에 얽혀있는 이해관계들이 개선되고 장기적인 투자가 가능할 것이며 따라서 투기는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