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책연구원 김윤선 선임연구위원(부장판사)은 최근 발간한 ‘법원의 구속기간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통해 현재 최대 6~8개월인 심급별 구속기간 제한 규정을 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현행 구속기간 제한제도는 재판 개시 후의 충실한 증거조사와 피고인의 공격·방어권을 사실상 제한하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며 “(현실적으로) 구속기간 제한제도를 유지하되 그 엄격성을 완하는 방식이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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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속기간 연장이 필요한 ‘예외적 사건’으로는 △장기 10년이 넘는 징역·금고 범죄 △재범 위험성 △사건관계인 위해 우려 △재판 불출석·연기 등에 따른 추가심리 △보석조건 위반에 따른 재구속 등을 제시했다.
김 연구위원은 “구속은 그 자체로 개인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고통을 주는 것일 뿐만 아니라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피고인의 공격·방어권을 크게 제한하는 효과를 야기하기 때문에 신중히 이뤄져야 한다”면서도 “우리의 형사재판의 현실에 맞는 보다 유연한 구속기간 제한제도의 검토와 불구속재판 확대를 위한 구속대체제도와 석방제도의 도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앞서 사법행정자문위원회가 지난해 3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현직 판사 88.4%가 구속기간 제한제도에 대한 개선 필요성에 동의했다. 재판 단계에서의 구속기간 제한을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14.4%나 됐다.
◇구속기간 6개월, 제헌 형사소송법 통해 도입
우리나라의 구속기간 제한은 1953년 제헌 형사소송법을 통해 도입된 이래 70년 간 이어져왔다. 이를 통해 피의자 및 피고인 보호를 위해 수사단계에서의 구속기간 최대 30일, 기소 후 심급별 구속기간 최장 6개월로 정해졌다.
피의자 인권 보호를 위해 피의자의 구속기간을 제한하는 경우는 주요국에서 볼 수 있지만, 재판에 넘겨진 후 구속기간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다. 이는 불법체포와 감금 등이 빈번히 벌어졌던 일제 강점기의 경험을 토대로 한 입법이었다.
이는 불법체포와 감금이 횡행했던 군사독재 시절 기소 후 무제한적인 피고인 구금을 막았다는 점에서 일부 효과가 있었다고 볼 수 있지만, 민주화 이후 특히 사건이 더욱 복잡해져 심리에 상당기간이 걸리게 된 요즘 시대엔 오히려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하는 요소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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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기업 사건 등에서 검찰이 법원에 제출하는 기록은 10만 쪽이 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이르면 내년 말부터 형사재판에도 전자소송이 도입될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피고인 측은 검찰의 이 기록들을 일일이 열람·복사해 기록을 파악한 후, 방어 논리를 마련해야 한다.
◇형사사건 난이도 오르며 6개월 내 선고 불가능한 경우 다반사
통상 이 정도의 기록의 경우 복사에만 몇 주가 소요된다. 막대한 비용을 부담해 대형 법무법인을 선임한 경우에도, 다수의 변호사들이 총 동원하더라도 이 정도의 기록을 파악하고 방어논리를 짜기까지엔 상당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변호사들이 통상 수십 건의 사건을 수임해 진행하는 점을 감안하면 통상 1~2명의 변호인을 선임하는 일반인의 경우엔 당장 기록 파악조차 쉽지 않은 구조다.
일반 사건의 경우라도 검찰 신청 증거조사만으로도 상당한 기일이 걸리는 상황에서 결국 피고인과 변호인들이 공소사실을 탄핵하기 위한 반대 증거나 양형에 유리한 자료 조사 요구 일부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판사들로선 구속기간이 넘을 경우 보석이나 구속취소를 통해 피고인을 풀어줘야 하기 때문에 이 같은 부담을 피하려는 것이다.
아울러 재판 지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판사들 입장에선 구속 사유가 명백해 보석사유가 되지 않는 피고인에 대해선 구속기간 만기 전 선고하는데 주력한다. 재판부로선 일단 구속기간 내 선고를 위해 구속사건에 대해 역량을 집중해 심리를 하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같은 재판부가 심리하는 불구속 사건의 지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실제 지난 10년간 불구속사건의 평균처리 기간은 지방법원 형사합의부 기준으로 2.61배가 증가했다.
악용의 소지도 다분하다. 중형이 예상되는 피고인이 구속취소를 목적으로 재판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킬 경우 법원으로선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 간혹 구속취소가 임박한 피고인에 대해 조건을 붙여 보석을 하기도 하지만, 심급별 구속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피고인의 경우 별다른 효과를 내기 어렵다. 자칫 증거인멸이나 피해자 보복 등의 우려가 있는 피고인들마저 풀려날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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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피고인이 간이 갱신절차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공소사실 낭독, 법원 조서에 대한 추가 증거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실제 2021년 2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재판부가 변경되자, 간이 갱신절차를 거부하고 그동안의 증인신문 등 증거조사 녹음파일을 일일이 재생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결국 갱신에만 7~8개월이 소요됐다. 다른 사건에서도 충분히 악용될 소지가 있다.
◇구속만기 피하려, 檢 쪼개기 기소→법원은 추가 구속영장 발부
현실과 다른 이 같은 제도로 인해 현실에선 검찰이 중요사건에서 쪼개기 기소를 하고, 법원이 이를 묵인하며 제도를 보완하고 있다. 검찰이 피고인에 대해 별건으로 추가 기소하고, 기존 사건의 구속기간 만기 전 새로운 기소 건으로 법원에 추가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수도권 법원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중요 부패사건의 경우 6개월 내 선고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판사들 중에서도 재판 단계에서 추가 구속영장을 통해 구속연장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갖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현재의 구속기간이 현실과 맞지 않아 생긴 문제”라고 평가했다.
구속기간 변경을 위해선 국회에서 형사소송법이 개정돼야 한다. 법원과 검찰 내부에서 공감대가 큰 상황에서 변수는 변호사들이다. 구속 피고인들의 경우 재판 단계에서 석방이나 보석에 총력을 기울이는 경우가 많아, 변호사들로선 쉽사리 동의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법원 내부에서도 구속기간 연장을 위해선 보석제도를 보다 활성화하고, 구속영장 단계에서 보석제도와 유사한 ‘조건부 석방제’ 등이 도입될 경우 대다수 변호사들도 찬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고위 법관은 “불구속재판의 원칙상 구속 피고인의 숫자는 점진적으로 줄여 줄이되, 강력범이나 중범죄자 등에 대해선 보다 장기간 구속을 통해 철저한 재판을 하자는 것이 법원 내부의 공통된 시각”이라며 “피고인의 방어권이 더 보장되는 만큼 변호사들도 반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