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용어 없이 ‘레고랜드 사태’ 설명 드립니다

한승구 기자I 2022.10.28 11:01:14

''레고랜드 사태'' 정리
강원도, 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결정?
얼어붙은 자금시장...경제위기 뇌관

[이데일리 한승구 인턴기자] 최근 레고랜드로 인해 한국 금융시장 전체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레고랜드 건설을 위해 빌린 돈 2050억원을 갚지 못하게 된 것인데요. 여기에 당초 강원도가 빚을 갚겠다며 보증했다가 최근 다시 말을 바꾸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커지게 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23일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무려 ‘50조원 플러스 알파’ 규모의 돈을 자금시장에 풀겠다고 밝혔습니다. 레고랜드에서 시작된 빚 문제, 어쩌다 한국 금융시장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었을까요? 스냅타임에서 이번 레고랜드 사태를 경제 용어 없이 최대한 쉽게 설명해드립니다.

(사진출처: 연합뉴스)




사건의 발단
2020년 강원중도개발공사가 각 증권사들로부터 레고랜드 건설 자금을 빌리면서 사건은 시작됩니다. 먼저 강원중도개발공사는 2012년 레고랜드 사업을 담당하기 위해 설립된 회사로 강원도가 44%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레고랜드 같은 대규모 건설자금을 모으기 위해서는 다른 증권사로부터 자금을 중개받는 경우가 많은데요. 강원중도개발공사는 자금을 빌리기 위해 먼저 ‘아이원제일차’라는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아이원제일차는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임시 회사로 목적을 다하면 사라지는 특징을 가집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회사는 모기업(강원중도개발공사)의 재무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게 되면서 높은 신용등급을 받을 수 있고, 이것은 돈을 빌릴 때 더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그렇게 강원중도개발공사는 아이원제일차를 이용해 증권사들로부터 2050억원을 빌렸는데요. 그 과정에서 레고랜드의 사업성을 담보로 채권을 발행했습니다. 채권은 쉽게 말하면 돈을 빌렸다는 차용증입니다. 일종의 외상 증서로 투자자들끼리 사고팔 수도 있습니다. 물론, 채권은 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외상한 사람이 도망쳐버리면 돈을 받을 수 없듯이, 채권을 발행한 주체가 망해버리면 돈을 돌려받을 수 없겠죠.

그럼에도 2050억원의 돈을 빌리는 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강원도에서 채무관계를 보증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사업에 차질이 생겨,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돈을 갚기 어려워지면 강원도가 대신 갚아주겠다고 약속한 것이죠. 국가 기관인 지자체에서 보증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안심할 수 있던 것입니다. 실제로, 레고랜드의 사업성 논란에도 불구하고 신용평가사들은 2050억원 규모의 채권에 대해 최고등급인 신용평가 A1 등급을 매겼습니다.



강원도, 중도개발공사 '회생신청' 결정
진짜 문제는 여기서부터 입니다. 그 후 2년이란 시간이 흐르고, 강원도에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새롭게 부임하면서 레고랜드 사업에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기 시작합니다. 최근의 경제 불황과 더불어 강원도의 재정 상태를 고려할 때 2050억원의 빚을 떠안기 부담스럽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9월 28일, 강원도는 2050억원을 갚아야 할 날을 하루 남겨두고 강원중도개발공사에 대한 기업회생을 신청하기로 합니다.

기업회생은 기업이 혼자서 도저히 사업을 진행할 수 없을 때 법의 도움을 받는 방법인데요. 투자자들은 이 말을 사실상 강원도가 빚을 갚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법원에 기업회생 신청을 하게 되면 법원이 정한 법정관리인이 기업의 자산을 팔아 번 돈을 통해 빚을 갚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돈을 빌린 사람들은 빚을 독촉할 수 없고, 자산이 제값에 팔리지 않으면 돈을 온전히 돌려받지 못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회생 절차도 사실상 오랜 시간이 걸리기에 투자자들은 불만이 생기 수밖에 없죠.

시간은 흘러 9월 29일. 2050억원의 만기일이 됐고, 강원중도개발공사는 결국 돈을 갚지 못했습니다. 강원도는 회생 신청이 부실 사업을 털어내기 위함이고, 올해 안으로 빚을 상환할 것이라 강조했지만 평가단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10월 5일.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만든 아이원제일차는 신용등급이 A1에서 D까지 떨어지면서 최종 부도처리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국가와 비슷한 신뢰를 가진 지자체도 채무에 대한 보증을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죠.



얼어붙은 자금시장...경제위기 뇌관 우려
아이원제일차 채권의 부도 소식에 자금시장은 급속도로 얼어붙기 시작했습니다. 지자체가 보증한 채권도 부도가 난 와중에 민간기업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채무관계에 대한 불신은 기업의 자금 조달 위기로 이어졌습니다.

자금 조달 위기는 기업 경영에 치명적입니다. 기업들은 자금을 통해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고 사업을 추진하는 등의 경영 활동을 하죠. 그 가운데, 보유한 돈을 남기지 않고 계속 써줘야 하는데요. 돈이 남아있는 것 자체가 기업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업에 투자할 기회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기업은 늘 새로운 돈이 필요한데, 바로 채권이 그것을 조달하는 수단인 것입니다.

안그래도 최근 금리 인상 등의 경제 불황으로 자금이 원활하게 돌지 못하며 채권 시장이 위축된 상태였습니다. 거기에 이번 레고랜드 사태까지 겹치니, 신뢰도마저 잃은 채권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게 된 것입니다. 이른바 ‘돈맥경화’로 기업들의 돈줄이 끊기게 된 것이죠.

기업 입장에서는 돈을 제때 투자받지 못하면, 빚이 과도하게 증가하고 심하면 부도에 이르게 됩니다. 증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증권사들은 대규모 건설사업을 중개할 때 사업 리스크를 모두 떠안는 조건을 통해 자금을 가져옵니다. 기업들이 돈을 갚지 못하면 그 부담은 고스란히 증권사의 몫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자칫 ‘도미노 도산’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최근 기업들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습니다. 높은 신뢰도로 평가받는 공기업 한국전력도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1200억원 가량의 돈을 빌리지 못했습니다. 한국도로공사는 1000억원 규모로 채권을 발행하려 했으나 전액 무효가 되기도 했죠. 또, 사업성이 우수하다고 평가받은 둔촌주공 재건축 역시 7천억원 규모의 빚을 새로 돈을 빌려 갚으려다 실패했습니다.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중소 건설사의 경우, 최근 부동산 거래 비용은 하락한 반면 건설비용이 증가하면서 업황 자체가 좋지 못합니다. 거기에 사업자금 조달마저 차질이 생기면 부실 재정 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레고랜드발 경제 위기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습니다.

10월 23일. 정부는 이 사태를 진정시키고자 ‘50조원+알파’의 돈을 풀겠다고 밝혔습니다. 경색된 시장에 다시 활기를 띄우겠다는 의도입니다. 이번 연말에 기업들이 빌린 돈의 만기일이 대거 겹치면서 단기적으로 빠른 대처가 필요하다는 분석입니다. 다만, 임시방편인 만큼 시장 전반의 활기를 찾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지자체에서 비롯한 경제 위기를 국민 세금으로 메꿨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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