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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께 죄송…고개 숙인 김현미 장관
7·10 대책 이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TV와 라디오 생방송 뉴스에 출연해 적극적으로 정책 홍보에 나서고 있다. 김 장관은 문 정부 출범 이후 교체되지 않은 장관 3명 중 한 명(강경화 외교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오는 9월이면 역대 최장수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이름을 남기게 된다. 김 장관은 문 정권 출범 초기 대통령의 신임을 받은 정치인으로서 ‘실세 장관’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따라서 김 장관은 이번 정부의 간판 각료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국민의 정책 체감도가 높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서 기대치도 높았다. 그러나 김 장관이 받은 부동산 정책 관련 성적표는 낙제점에 가까웠다.
스무 번 남짓의 대책에도 서울과 수도권 내 집값 급등이란 현실을 막지 못했던 탓이다. 국토부와 경실련이 문 정부 출범 후 서울의 집값 상승률을 놓고 공방을 벌였지만 국토부의 주장을 수용해도 서울의 집값은 14% 이상 올랐다. 금리와 물가상승률 등을 고려했을 때 14% 인상은 적은 게 아니다. 게다가 상승률 자체가 평균값 이다보니 집값 급등지역에 사는 국민이 느끼는 ‘체감 상승률’은 훨씬 높을 수 있다.
결국 김 장관은 최근 라디오와 TV 인터뷰에서 “국민들께 죄송하다”며 정책의 오류를 시인했다. 7·10 대책 발표 당일 SBS 8시뉴스에 출연해 “주택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장관으로서 지금의 이런 상황(주택시장 불안), 젊은 세대들이 많은 불안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고 14일 오전 TBS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해 “섬세하고 선제적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세웠더라면 지금과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국민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동안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고 자신했던 모습에서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다만 김 장관은 여전히 ‘부동산 불로소득’을 막겠다는 의지만큼은 꺾지 않고 있다.
◇‘부동산 불로소득’ 유도한 건 누구인가
사실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 급등은 단순히 한 가지 이유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대내외적으로 복합적인 변수가 작용한 탓이기는 하다. 현재와 같이 복잡한 이해관계가 맞물린 시장에서 가격의 움직임을 단순히 수요와 공급만으로 단순하게 설명하기도 어렵다.
문제는 현 정부가 타깃으로 잡은 ‘부동산 불로소득’이 역으로 그간 정부가 경제상황에 따라 규제를 풀었던 상황에 따른 부산물이라는 점이다. 국민들의 기억으로는 정부가 오히려 빚을 내서 집을 사라고 했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이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당시에는 부동산 시장 활성화에 방점이 찍혔다. 한국감정원의 아파트값 실거래지수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값 실거래지수는 외환위기 당시였던 2008년 12월 69.7을 찍으며 최저점을 기록했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던 2013년 2월의 서울 아파트값 실거래가 지수는 74.6이었다. 아파트값 실거래지수는 2017년 11월의 아파트 가격을 100으로 놓고 아파트 값의 오르내림 정도를 반영하는 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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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박근혜 정부도 수요 진작책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기 시작했다. 결국 2016년 8·25 대책을 통해 집단담보대출을 억제하고 원리금 균등상환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규제기조로 전환한 뒤 11월에는 11·3 대책을 통해 서울 전역 및 경기와 부산 및 세종시 등을 조정대상지역으로 묶는 등의 규제책을 쓰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6년 하반기와 2017년 상반기는 탄핵 정국으로 사실상 정부의 정책이 공중에 떴고 인수위원회조차 없이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문 정부가 출범하던 2017년 5월 당시 서울 아파트값 실거래가 지수는 93.8로 이미 우상향 추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올 3월 서울 아파트값 실거래가 지수는 135.7을 기록하며 최고점을 찍은 다음 4월 현재 134.5로 소폭 내렸다.
◇국토부 내부 ‘정책 속도 조율’ 자성 나와
부동산 정책을 주관하는 국토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 여러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지만 목소리가 크지는 않다. 김 장관을 비롯해 현 정권의 결정권자들은 서울과 수도권의 부동산 과열 원인이 결국 부동산을 통한 수익에 과세를 제대로 하지 않아 불로소득을 노린 수요를 잡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고 있어서다. 김 장관도 연일 “부동산 불로소득을 막겠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그러나 ‘부동산 불로소득’은 앞서 정부가 묵인했고 현재 정치권과 고위공무원들조차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김의겸 전 대변인과 노영민 청와대 비서실장의 사례에서 보듯이 ‘서울 강남의 집 한 채’를 통한 부동산 소득의 꿈은 비단 일반 국민만 바라는 것만이 아니었다. ‘집은 사는(buy)것이 아니라 사는(live)곳’이라 강조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주택이 상품이라는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공기업인 한국감정원조차 홈페이지에 ‘부동산테크’ 란을 마련해 놨고 LH도 매해 ‘부동산 투자설명회’를 개회한다.
따라서 부동산 정책을 고민하는 국토부 공무원들도 ‘부동산 시장’의 이중성을 좀 더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들을 사석에서 내곤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은 사는 것이자 사는 곳’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지 이를 분리해서 정책을 만드는 게 사실상 ‘뜨거운 아이스커피’를 요구하는 것일 수 있어서다. 특히 최근 GTX와 신안산선, 동북선 등 서울 내 철도착공과 강남마이스 등 여러 개발 사업들이 속도를 내면서 서울의 집값을 ‘원상복구’ 하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선도 없지 않다.
무엇보다 정책의 속도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22번의 대책이 나오면서 국토부 내부에서도 변경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경우도 왕왕 발생했다. 주무부처의 담당 공무원들조차 전에 나왔던 대책을 다시 확인하는 상황도 다반사다. 부동산 관련 세제의 잦은 변화는 세무사들조차 고개를 젖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기획재정부와 금융위까지 부동산 정책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대책은 점점 더 암호표를 보듯이 어려워지고 있고 이에 따른 국토부의 해명 및 설명자료도 빈번해지고 있다. 이는‘(서울)집값을 잡겠다’는 강박에 빠진 현 정부의 결정권자들이 조바심을 가지고 부동산 대책을 압박하는 것이 원인이다.
그래서 7·10 대책 이후 국토부 고위 관계자가 “정책 속도가 빠르다는 점은 반박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1년 전 봤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문 정부 출범 이후 정부는 대통령 공약을 이유로 최저시급 1만원을 위해 2년 동안 두자릿수 인상률을 고수했다. 이 과정에서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고 지적이 적지 않았다. 경제시스템 안에서 어느 한 쪽의 과속은 결국 원활한 순환에 방해가 되고 반대편의 부담으로 작용해서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지적을 귀담아 듣지 않았고 이는 고스란히 영세자영업자와 소기업한테 임금부담으로 전가됐다.
결국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해 7월, 2020년 최저임금 인상률 2,87%를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경제는 순환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어느 일방에게 과도한 부담이 될 때 악순환의 함정에 빠진다.”
이러한 자성의 목소리가 왜 이제야 부동산 정책 쪽에서 들리는 지 안타깝다. 성급한 부동산 정책 역시 어느 일방에게 과도한 부담이 되고 악순환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정녕 몰랐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