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만화의 대부, 박재동을 만나다

배재억 기자I 2012.01.05 15:41:57

사람을 그리면 사람이 소중해지고
꽃을 그리면 꽃이 소중해지고
돌멩이를 그리면 돌멩이가 소중해진다

[이데일리TV 배재억 PD]
 
시사만화의 대부 박재동. 그의 작품을 보면 소박하고 투박하지만 공감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그 가운데 그만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다. 박 화백을 만나 그의 지난 인생과 그가 생각하는 2012년을 ‘이슈앤토크‘에서 들어 보았다.

- 전화 드렸을 때 아프리카에 계셨는데
아프리카 세네갈에 있었다. 학교가 없어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작은 학교 짓는 일에 같이 동참하고 왔다. 요즘 책도 내고 전시도 하면서 이런 저런 일로 계속 분주하게 지낸다.

- 얼마 전 열렸던 ‘화장실전시회’는 어떤 건가요?
고속버스 휴게소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앞에 조그마한 그림이 있다. 나도 모르게 그림에 눈을 맞추게 되고 뭔가 정서적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여기에 내 그림이 걸리면 얼마나 영광스럽고 좋을까?’라는 꿈을 오랫동안 꾸었고, 결국 부천역과 근방 화장실에서 전시회를 하게 되었다.

- 새로 나온 책 ‘손바닥아트’도 입소문이 나고 있는데
늘 가지고 다니는 손바닥 정도의 작은 스케치북에 그렸던 그림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거기에 길거리의 전단지나 계산서 또는 휴지 할 것 없이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렸던 것들을 추가했다. 일상 속에서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 중 공감했으면 하는 내용들이 담겨있다.

- 예전의 시사만화들과는 완전히 다르던데?
시사만화는 그날의 이슈를 집약적으로 함축해서 폭발력 있게 표현해야 된다. 하지만 ‘손바닥아트’는 일상생활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따스한 맛이랄까? 작지만 잠시 마음이 머물렀다 갈 수 있는 그런 부담 없는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즐기듯 그림도 보다 편하게 즐겼으면 좋겠다.

- 책 속의 바퀴벌레 그림이 인상적이던데?
뭐든지 시대의 증언이기에 나는 잘 버리지 않는 타입이고 그러다보니 방이 매우 지저분하다. 어느 날 짜장면 빈 그릇 때문인지 방 귀퉁이에 바퀴벌레가 나타났다. 저 놈을 쫒아버릴까 하다가 이 기회에 생쥐와 친해지다 미키마우스를 만들어낸 월트디즈니처럼 나도 바퀴벌레와 친하게 사귀어 보자고 마음을 먹고 그림을 그렸던 거다.(웃음)

- 시사만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학교 미술교사를 그만두고 일러스트 회사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한겨레신문이 생겨 시사만화가를 모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엉겁결에 시작하게 됐다. 워낙 만화책을 많이 봤기 때문에 아동만화처럼 말풍선도 도입하면서 시사만화도 재미있게 만들어보고 싶었다.

- 그 시절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목소리내기 어려웠을 텐데
내가 용기가 있었다기보다는 국민들이 돈을 내서 만든 신문이었고, 해직기자들이 중심이 되다 보니 신문 자체가 강하고 힘이 있었다. 두려움 없이 정말 권력과 자본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소식을 전하자는 것이 취지였기 때문에 나도 용기를 내서 그릴 수 있었다.

- 해학과 풍자에 대한 원칙은
우선 첫째는 사실에 근거한 재미다. 함부로 추측하거나 함축하면 안 된다. 둘째는 공격이나 비판하지 않는 것. 셋째는 만화의 주인공이 되어서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는 것. 넷째는 최근 추가한 원칙인데 혹시라도 잘 못 그렸다고 판단하면 바로 사과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두 번 사과를 했는데, 축산폐수와 삼천포 문제였다. 만화가 나간 다음날 바로 사과했다.

-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대표도 맡으셨는데?
한겨레신문을 떠난 이유가 애니메이션을 하기 위해서였다. 계속 작품을 준비해 오다 최근 ‘마당을 나온 암탉’이 나름 대박을 쳤다. 원작동화의 스토리를 탄탄하게 구성했고 6년 동안 정말 열심히 준비해서 만든 작품이다. 후속으로 나온 저예산 애니메이션 ‘데이지의 여왕’도 반응이 좋았다. 국내 애니메이션의 가능성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나름 뿌듯하다.

- 본격적으로 다시 펜을 들고 싶다는 생각 안 드나요?
어쩌다 한번 씩 하는 건 할 수 있지만, 다시 펜을 들고 전공법으로 그걸 계속한다면 나한테 주된 일이 그쪽이 되어 버릴 것이고 내 삶이 그렇게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대충이 아니라 굉장히 공부도 많이 해야 되기에 아직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 박 화백이 생각하는 2012년은?
2012년의 사회 분위기를 많은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다. 뭔가 억압적이고, 소수의 권력 독점에 의한 폐해가 심해지고 있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지 못하고 옛날로 돌아간 듯한 기분 속에서 살고 있다. 2012년에는 이런 분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거역하기 어려운 쓰나미가 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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