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진단)①착시인가 회복인가

이숙현 기자I 2009.05.11 15:05:46

주식·부동산 `온기`- 고용·투자 `냉기`
전문가 "실물경제 긍정 신호 없어"
"경기 회복 아직은..착시 현상 경계해야"

[이데일리 이숙현기자]  주식시장이 두달새 40% 급등했다. 수도권 아파트 분양시장도 활기를 되찾고 있다. 광공업생산등 일부 경제지표들도 개선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자유낙하`라는 표현이 어울렸던 지난해 4분기 경기급락세가 진정국면으로 돌아서는 모습이 뚜렷하다. 하지만 섣부른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펀더멘탈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침체 속도 둔화`를 `경기 회복`으로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다. 현재의 경기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지, 정책당국은 이 시점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4차례에 걸쳐 짚어 본다. [편집자주] 

코스피지수가 올들어 최고치인 1400선을 돌파했다. 인천 청라, 경기 의왕 등의 분양아파트 모델하우스 주변에는 다시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이 등장하는 등 수도권 분양시장도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80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시중 부동자금이 투자처를 향해 주식과 부동산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에 따라 조기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IMF 외환위기 회복과정에서 `주식과 부동산으로 큰 돈 번 사람이 많았다`는 학습효과도 한몫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국내 금융시장과 달리 실물경제를 살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막대한 시중자금은 금융권만 맴돌고 있을 뿐 실물경제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고용, 투자, 소비 등 경제 펀더멘탈을 결정짓는 주요 지표들은 여전히 한겨울이다. 주식 등 일부 자산가격의 급등을 시중 유동성에 의한 `착시현상` 때문으로 규정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은 배경이다. 벌써부터 `미니 버블`을 지적하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의 특성상 선진국 경제의 회복 없이 홀로 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경기가 더 크게 나빠지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대내외 금융 및 실물경제에 대한 불안요인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지표 개선만을 내세운 과도한 기대감은 경계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 냉온탕 지표 혼재..`금융 안정 기미 vs 기초체력 허약`

최근 국내 금융시장의 안정세는 뚜렷하다. 지난주말 코스피지수는 1412.13으로 마감, 올해 최고치를 이틀 연속 경신하며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3월2일 1018.81이었던 코스피지수가 꾸준한 상승세를 이어가며 두달새 40%나 급등한 것. 3~4월 외국인 투자가들의 연이은 순매수가 코스피지수의 상승을 주도했고, 기관과 개인이 차례로 가세한 결과다.
 
  외국인 주식순매수 추이
외환시장도 하향 안정세다. 뉴욕 증시의 상승과 외국계 자금의 환류가 영향을 미쳤다. 오히려 원화절상 속도가 너무 가팔라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올들어 1570.3원(3월2일)까지 솟구쳤던 달러-원 율은 지난주말 1247원으로 급락, 연중 최저치다.

부동산시장도 꿈틀대고 있다. 지난달 전국 평균 집값은 지난해 10월 이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가격은 올들어 5000만~2억원이 상승,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던 2006년 최고점 대비 80~90% 수준을 회복했다. 또 청라 의왕 등 수도권 아파트 분양시장에 자금이 대거 몰리는 등 일부에선 과열 기미까지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경제 펀더멘탈의 근간을 이루는 소비, 투자, 고용 등의 실물지표는 아직 우울하다. 주식시장이 경기선행지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당한 괴리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특히 최근 주식시장 상승을 주도했던 외국계 자금이 계속 유입될 수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이 적지 않다. 미국 대형 은행의 스트레스 테스트 결과가 예상보다 좋게 나왔지만 이를 기초로 한 은행들의 자본확충 과정에서 금융시장이 다시 불안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GM의 파산 가능성 등 불안요인도 여전하다.

3월중 소비재 판매는 전년동월대비 5.3% 줄었고, 전월대비로 다시 감소세로 전환했다. 설비투자도 전년동월대비 23.7% 급감세를 이어갔고, 서비스업도 전월대비 소폭 감소했다. 서비스업 생산이나 소비재 판매 부진 등은 내수가 좋지 않다는 신호다.
 
 소비재판매 및 서비스생산 추이



 
 
 
 
 
 
 
 
 
 
경기후행 지표인 고용은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및 창출 노력에도 불구하고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4월 실업자는 100만명이 넘어설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눈을 돌려보면 미국 등 주요 선진국에서도 혼재된 신호가 나오고 있다. 경기침체가 회복국면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강한 반등의 기미는 아직 없다. 다만 ISM 제조업지수와 미시건대 소비자신뢰지수 등 생산 및 소비 관련 지표를 중심으로 다소 개선되는 모습이다.
 
또 미국 20대 도시의 평균 주택가격 동향을 보여주는 케이스/쉴러 2월 지수의 하락세가 2007년 1월 이후 처음으로 둔화되는 등 주택가격 하락세가 다소 약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신용경색 정도를 판단하는 라이보-OIS 스프레드 역시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전 상태를 회복하는 등 금융시장도 안정을 되찾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나 고용사정이 여전히 악화일로 걷고 있고 있는데다 가계의 부채조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미국 경제성장의 70%를 차지하는 소비 여건은 계속 악화되는 추세다. 제조업 가동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저치다.

◇ "회복이라 말하기엔..."

이같은 냉온탕 지표 속에서 자신있게 `회복국면`이라는 표현을 꺼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4분기가 워낙 안좋았기 때문에 기술적 반등을 하는 것일 수 있지만 회복을 전망할 수 있는 뚜렷한 징후를 찾기는 어렵다.

조동철 KDI 연구1부장은 "지난해 4분기는 거의 패닉상태였고, 그렇게 심하게 조정됐던 것들이 정상화되어 가는 측면이 있다"며 "그러나 회복 신호라고 속단하기는 힘들다"고 진단했다.

일부 지표가 개선된 것처럼 보이는 것은 `기저 효과`(Base Effect)에 따른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이전 실적이 상당히 좋지 않을 경우 상대적으로 지금은 좋아 보인다. 이처럼 비교대상이 나쁠 경우 지금이 좋아 보이는 현상이 기저 효과다.

지난달 24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올 1분기 성장률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올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전분기(지난해 4분기) 대비 0.1% 성장했다. 하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2008년 1분기)과 비교하면 4.3% 감소한 수치다. 마이너스 성장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불고 있는 금융시장의 훈풍도 경기침체 속도 완화에 기인한 착시 현상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실물경제가 아직 겨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시장은 언제든 다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허 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여러 가지 지표나 기업 실적만 본다면 회복이라고 말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지금을 바닥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회복세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그는 "주식시장이 좋아지고 있는 것은 기업들의 실적이 `상상했던` 것보다는 좋게 나왔던 점, 그리고 금리가 낮아지면서 투자처를 찾을 수 없던 시중자금이 약간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주식으로 몰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지표에 의한 과도한 기대감보다 그 이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일례로 환율의 변동성은 여전히 크다. 방향성이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불안요인이 산재해 있다는 증거다. 은행 건전성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미진한 구조조정이 다시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이번 위기의 진앙지인 미국의 금융부문이 아직 불안하고 유럽 및 일본 경제도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 경제는 여전히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상황에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착시인가 회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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