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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 증시50년)⑭60년대 중반...완전한 침체기

김영곤 기자I 2004.09.01 12:20:02
[edaily] 6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증시엔 내내 어둠의 장막이 깊게 내려 앉는다. 증시가 자리하던 지역은 중구 을지로2가였으나 그보다는 명동 뒷골목으로 부르는 편이 훨씬 걸맞았다. 그렇게 증시는 명동의 앞길이 시장처럼 북적이는 것과 달리 그 그늘에서 꼭 뒷골목처럼 그렇게 더러운 면과 한전한 면과 컴컴한 면을 대표하고 있었던 것이다. 증시는 철지난 파시와 너무 닮았다. 어느 때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들고, 떠들고, 시끄럽던 거리가 적막강산처럼 조용하고, 사람들의 왕래가 끊어진 채 그 속을 마치 열병을 앓고 난 환자처럼 야윈 몸으로 서 있기조차 부담스러울 만큼 휘청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한때 골드러시에 따라 급조된 것과 같이 흥청거리던 증권가는 이제 별 볼일없다는 생각으로 모두가 떠나버린 뒤 형체만 남아 있는 고스트타운처럼 으시시하고 황량하기조차 했다. 사실로 증권거래소 건물 자체가 어찌 보면 유령이 나올만큼 그렇게 낡고 어두컴컴한 곳이기도 했다. 6.25전쟁으로 많이 부숴졌던 것을 대충 고쳐 사용해서 그랬던 것인지는 몰라도 건물에 들어서면 전기를 아끼느라 불도 많이 켜지 않아서 음침하고 삐걱거리는 것도 좋은 느낌을 주지 못했다. 62년8월 최대로 60개사에 이르렀던 증권회사들은 차례차례, 아니 무더기로 문을 닫아걸어 20개사 정도가 남아 있었는데 남아있던 증권사들도 영업이 잘돼서라기 보다 그동안 투자한 금액이 아까워서 그저 간판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증권회사들은 예외없이 불과 수명의 직원을 둔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소규모로 그것도 뒷골목 낡은 건물 윗층에 마치 전당포처럼 숨어 있었다. 그 증권회사 사장실은 그래서 무슨 꿍꿍이속을 더듬는 몇사람의 음모자들이 목소리를 낮춰 뭔가를 모의하는 비밀아지트 같이 보였다. 그런 증권사에 가끔씩 찾아오는 단골 고객들이 있다. 그들은 마치 죄지은 듯 떳떳하지 못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와 시세를 살핀다. 그들은 대부분 증권파동때 단지 일확천금의 말만 믿고 줄을 서 대증권을 산 사람들이며 휴지와 같은 주권을 들고 망연자실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중 일부는 혹시 단돈 몇푼이라도 건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미련을 가지고 증시를 기웃거리다가 힘없이 돌아서 가곤 했다. 증시 주변엔 또 한패거리의 군상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시장주변에 삼삼오오 모여 시세끝수를 가지고 수위 "맞대기"라는 노름판을 벌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허름한 옷들을 걸치고 있었다. 들리는 얘기로는 5월파동때 재산을 몽땅 날린 사람들이라고들 했다. 그들은 시장에 들어가 떳떳하게 투자를 할 수도 없는 처지라 시장주변에서 막연히 뜬구름 같은 기대를 삭이고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 저주의 대상인 증권을 놓고 시장에서 형성된 시세의 끝자리가 짝수냐 홀수냐로 내기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노름치고 어느 무엇보다도 합리적 근거없이 단순한 찍기 노름인데, 이렇게 해서 담배값이나마 날리거나 아니면 막걸리값이라도 벌려고 하는 것이다. 무모한 투자가 막장에 어떤 결과까지 나타나는 가를 보여주는 서글픈 풍경화다. 가끔 조용하던 시장주변에서 느닷없이 함성이 터져나와 지나가던 행인들을 놀라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이 노름에서 막걸리 값을 벌게 된 사람들의 환성이었다. 그들에겐 그것은 짧은 환성이었지만 듣는 사람에겐 기나긴 비명의 여운이 남았다. 그렇게 몇몇의 왕래자들이 있을 뿐 과거 그 많던 투자자들은 증시주변 자체를 꺼려했다. 증시를 피하기 위해 증권가가 지름길인데도 멀리 돌아가는 것이었다. 증시만 봐도 진저리쳐지는데다 증시주변을 지나치다 누굴 만나면 지금도 투자를 하고 있나 불신을 받을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증시는 서럽게 외명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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