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재판지연 해소 올인' 조희대 대법원장 "국회·정부 도움 절실"

성주원 기자I 2024.02.16 12:00:00

조희대 대법원장,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
국회 계류 '판사정원법 개정안' 통과 호소
판사 이탈 방지 위해 처우 개선 필요 강조
"싱가포르, 정부 전폭 지원에 사법개혁 성공"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판사 정원을 370명 늘리는 법안이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을 통과시키는 게 사법부의 목표다.”

조희대(67·사법연수원 13기) 대법원장은 지난 15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재판 지연 문제 해소를 위한 필수 조건인 ‘법관 증원’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은 “21대 국회에서 판사 정원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기획재정부와 다시 처음부터 협상해야 한다”며 오는 5월 29일까지인 회기 안에 국회가 법안을 통과시켜 줄 것을 호소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법원)
판사 정원법 개정안 국회 계류…“법관 증원 최우선 과제”

현행법상 각급 법원 판사 정원은 법으로 규정돼 있다. 정부가 지난 2022년 12월 발의한 해당 개정안은 현행 3214명인 판사 정원을 5년간 총 370명 순차적으로 증원해 2027년에는 3584명까지 늘리는 것이 핵심이다.

구술심리주의와 공판중심주의가 강화되고 당사자가 많은 사건들이 늘어나면서 일선 판사들의 업무 부담은 계속 가중돼왔다. 조 대법원장은 ‘법관 증원’을 충분한 심리와 신속한 재판이 이뤄지기 위한 최우선 해결 과제로 꼽았다.

판사 숫자가 가뜩이나 부족한 상황에서 육아휴직이나 해외연수 등의 사유로 재판업무에서 빠져있는 법관이 현재 220여명에 달한다. 단축근무 등을 제외하고도 전체 판사의 7% 이상이 비가동 인원으로 분류된다. 일반 공무원과 달리 판사의 경우 육아휴직을 한 판사를 대체해 임시직·계약직 판사를 고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판사 정원의 확대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처우 개선해 기존 판사 이탈 막아야”…싱가포르 사례 주목

조 대법원장은 새로운 판사를 고용하는 것만큼이나 기존 판사들의 이탈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선 정부의 예산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맨입으로 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 조 대법원장의 생각이다.

그는 앞서 사법개혁에 성공한 벨기에, 싱가포르, 영국 등이 법관 보수를 획기적으로 인상해서 법관 인사 문제를 해결한 사례를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제가 판사될 당시만 해도 다른 직역에 비해 보수가 높았지만 지금은 그런 정도는 아닌 것 같다”며 “법관들이 몇년 재판업무에 매달리다 보면 체력적인 한계에도 부딪히고 로펌들의 영입 제안도 받다보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싱가포르의 사법개혁 사례를 주목했다. 경범죄에 대해서도 엄벌을 내리는 국가로 잘 알려져있는 싱가포르는 태형(죄인의 볼기를 매로 치는 형벌) 집행으로 인해 미개한 사법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라는 국제적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던 싱가포르가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사법개혁에 성공했다는 것이 조 대법원장의 설명이다. 싱가포르 법관의 보수는 대형로펌의 우수한 파트너변호사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인상됐고 국제상사재판부는 국적에 관계없이 외국인도 법관이 될 수 있게 하는 등의 사법개혁이 이뤄졌다.

조 대법원장은 “10년전에는 우리나라가 선도적으로 국제중재센터, 국제상사재판 아시아허브, 특허재판 아시아허브를 유치하기 위해 홍콩과 경쟁했었고 전망도 어둡지 않았었다”며 “그런데 지금은 싱가포르가 국제중재 허브를 설치했고, 아시아허브를 유치하기 위해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사법제도를 갖춘 나라가 어딘지 챗GPT에 물어보면 90% 이상 싱가포르라고 답변한다”며 “10여년에 걸쳐 장기 목표를 세우고 국가 예산을 투입해서 이뤄낸 결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재판지연 해소 안간힘…“법과 원칙 어긋나지 않게”

지난해 12월 11일 취임한 조 대법원장은 지난달 천대엽(21기) 대법관을 법원행정처장으로 임명해 재판 지원 업무 강화에 힘을 실었다. 재판 도중 재판부가 바뀌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관 사무분담 기간을 기존 재판장 2년, 배석 판사 1년에서 각각 3년과 2년으로 1년씩 늘렸다. 사법행정 업무를 총괄하는 법원행정처 상근 법관도 기존 10명에서 17명으로 확대했다. 판사 업무를 돕는 재판연구원(로클럭) 정원은 기존 350명에서 400명으로 확대했다.

또한 노련한 재판능력을 갖춘 법원장들이 장기 미제 사건이나 복잡하고 까다로운 사건의 재판 심리를 직접 맡도록 해 신속한 사건 처리를 도모하고 있다. 아울러 사법정보화실을 신설하는 등 정보기술(IT) 도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밖에 정년퇴임을 한 법관이 계약직으로 다시 재판 업무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시니어 판사’ 제도 도입을 검토중이다.

조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현재까지 재판지연 문제 해소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조치는 최대한 했다고 생각한다”며 “사소한 문제라도 법과 원칙에 어긋나지 않게 할 것이고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국민께 소상히 설명하고 가장 합리적인 제도를 채택해서 실패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15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대법원)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