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치 역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국내 정치 개혁을 위해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개헌의 최적 시기로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를 제시했다. 매 정부 때마다 반복됐던 개헌 이슈지만 정치·경제·사회 구조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에 현 정권에서 정치권을 개혁, 사회 및 정책 안정성을 이끌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생각하는 정치 제도의 첫 단추는 분권형대통령제다. 그는 “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후 대부분의 대통령이 실패하고 문제를 드러냈다”며 “이제는 대통령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대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회에서 선출하는 고도의 정치적 능력을 갖춘 총리가 국정을 이끌도록 해야 한다. 국민은 국가원수 역할을 하는 대통령을 뽑으면 된다”고 덧붙였다.
또 현재의 승자독식 선거제도를 바꿔 다양한 정당에서 다양한 인물이 국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하는 선거제도 개혁도 주장하고 있다.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사기를 쳐서 안됐는데 선거제도를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강화하고,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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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뭘하고 지내셨는지 궁금하다.
△집무실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도 만나고 주로 책을 읽으며 보내고 있다. 최근에는 독일 철학자가 집필한 언론의 역할과 책임을 주제로 쓴 책을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하면 무조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우크라이나) 편을 들어야 하는 것처럼 몰아가는 것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이제는 국민 개개인이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정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언론이 모든 영향을 다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최근 정치나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다. 이런 위기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보시는지.
△위기가 기회가 되려면 기존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어야 했는데 그런 상황이 아니다. 아무런 변화도 없이 위기가 왔다고 당연한 기회가 되지 않는다. 특히 정치권이 정신을 차려야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가 정점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정점에 와 있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현재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이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다. 과거 일본처럼 재패니지 넘버원(Japanese NO.1) 시절과 같이 K-문화. K-넘버원을 외치고 있다. 다만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 달러가 넘은 선진국이지만 사회상황도 거기에 맞아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지표와 비교하면 우리나라 자살률은 두 배가 넘고 노인 빈곤율도 최고 수준이며, 출산율은 가장 낮은데 과연 이게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겠나. 행정부 권한이 있지만 결국 제도 개혁은 국회를 끌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 하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 거대 야당을 교섭해서 여건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밤낮 없이 입씨름만 하고 협의가 실종됐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첫 처리된 예산안을 어떻게 보시는지.
△법인세를 보자. 사실 법인세율이 투자에 큰 영향을 안 미친다. 당초 정부안은 법인세율을 25%에서 22% 내리겠다는 것이고 야당은 내릴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야당을 설득하는 노력을 했어야 했는데 (정부안대로) 밀어붙이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결국 국회의장이 1%포인트 내리자는 조정안을 내서 여야가 합의한 것을 보고 한심하다고 느꼈다. 이런 식이면 현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연금·교육개혁 등을 할 수 있겠냐. 오는 2024년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당이 되기 전까지는 달성이 힘들 것이다.
-올해 정치 상황은 어떻게 보시는지.
△협치는 물 건너갔다. 이제 약 1년 앞이면 총선이다. 기본적으로 여당의 잘못을 먹고 사는 게 야당이다. 결국 다른 말로 여당이 잘하면 절대 정권교체가 되지 않고 야당은 절대 여당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여당은 그런 센스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제도를 어떻게 바꿔야 할까.
△근본적으로 개헌을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는다. 오는 2024년 총선에서 여당이 다수의석을 차지하게 되면 모르겠지만 만약 여소야대 상황이 계속되면 개헌 논의에 불이 붙을 수 있다. 이때 대통령도 개헌 카드를 꺼낼 수 밖에 없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만들었던 민주당도 이미 박근혜 정부 당시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드러나 이후 개헌 주장을 하기도 했다. 내각제 형태의 국회 운영에 부정적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개헌 관련 무슨 내용을 담아야 할까
△핵심은 분권형 대통령제로 권력구조를 개편하는 것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국가원수로 역할을 하고, 위회가 선출한 총리가 내각수반을 맡게 하는 제도다. 또 선거법을 바꿔 양당제가 다당제로 갈 수 있도록 하고 비례대표제를 손봐서 다양한 정당에서 국회의원이 배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부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여당이 일방적으로 국정을 끌고 가지 못하게 해야 정부 조직이 안정되고 정책이 일관성 있게 갈 수 있다.
-본받을만한 해외 사례가 있을까.
△전 세계적으로 정권의 안정성을 놓고 보면 미국을 제외하고 프랑스, 영국, 독일 정도가 우수한 것으로 보인다. 이 중 정치, 사회적으로 가장 안정된 국가는 독일이다. 그 나라는 한 번도 1당이 여당을 잡아본 적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매번 연정을 해왔다. 소위 말하는 교통신호 정부로 빨강, 노랑, 초록 등 여러 당들이 이념적으로 반대되는 이들이 모여서 나라를 잘 이끌고 간다. 이게 정치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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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지금은 말만 하는 단계이지 실체가 없다. 노동, 연금, 교육 개혁 등도 선언한 한 것이지 구체적으로 방안이 나온 게 없다. 말만 해서 정책이 나오는 게 아니다.
-내년 경제도 어렵고 총선 역시 여당한테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최근 국민의힘이 당원투표 100% 반영한다고 했는데 시비를 걸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것을 도입하려면 왜 도입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금 상황이 과거와 뭐가 달라졌는지 봐야 한다. 우리나라의 문제는 대통령이 된 사람이 당을 본인 걸로 하고 싶은 것이 있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정당 소속 정치인이 대통령만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통령이 만든 정당이 아니다.
-어려운 정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을까.
△윈스턴 처칠이 “역사 속에 진실이 다 담겨 있으니깐 역사를 되풀이해서 보라”고 했다. 우리는 1987년 현 헌법체제 갖추고 35년 지났으니깐 이제는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그동안 국회의원 9번 뽑았지만 제대로 된 지도자가 나온 적이 없다. 근본적인 제도를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정치가 극한 대립으로 가면서 무당층이 계속 늘고 있다. 여당의 역할은.
△여당이 자신 있으면 야당과 싸우지 말고 무시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고 있다. 대국민을 상대로 일해야 한다. 미국의 린든 베인스 존슨 전 대통령은 “국회는 야수와 같은 동물과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사람들을 자극하면 점점 야수의 기질이 나온다. 결국 잘 순치를 하면서 하고자 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게 민주주의 사회에서 여당과 국회에서의 집권세력과의 관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