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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우리의 스승" 차별없는 소통 꿈꾸는 사회적 스타트업 '오르담'

김보영 기자I 2016.04.20 10:57:38

휴대폰케이스 디자인에 점자 접목한 제품 선보여

사회적 스타트업 ‘오르담(ORDAM)’의 박주승(21·왼쪽)대표와 최형준(22)부대표가 자신들이 디자인한 스마트폰 케이스를 가리키고 있다. 김보영 기자
[이데일리 김보영 기자] 지난해 5월 서울 마포구 홍익대 정문 앞을 걸어가던 박주승(동국대 경영학과 2학년·22)씨는 한 시각장애인이 액세서리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봤다. 그는 손으로 더듬거리며 한참이나 액세서리를 고르더니 상점 주인에게 이것저것 물은 뒤에야 마음에 드는 물건을 정했다.

박씨는 “비록 시각장애인이라 해도 예쁜 것을 쓰고 싶은 욕심은 똑같다는 걸 그때 알게 됐다”고 했다. 이날의 경험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사회적 스타트업 ‘오르담(ORDAM·담을 오르다)’을 창업하는 계기가 됐다. 취지에 공감한 동국대 같은 과 동기인 최형준(22)씨가 창업에 합류했다.

장애인·비장애인 누구나 보편적으로 쓸 수 있는 제품이 뭘까 고민하던 끝에 이들은 휴대폰 케이스를 선택했다. 여러 시민단체와 시각장애인들을 만나 의견을 들은 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제품인 애플사의 아이폰 케이스를 제작하기로 했다. ‘점자’를 하나의 디자인으로 활용해 실용성과 패션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자는 게 이들의 구상이었다.

하지만 사업이 순조롭게 풀리진 않았다. 최씨는 “점자를 입힌 휴대폰 케이스를 만들어 시각장애인들에게 선보였는데 호된 꾸지람만 듣고 쫓겨났다”고 회고했다. 가로·세로 길이 1.5mm, 돌출 높이 0.6~0.7mm, 점자와 점자 간의 간격 4.5mm 등 ‘소통을 위한 약속’인 점자 규격을 몰랐던 탓이다. 시각장애인들은 시제품을 두고 “큐빅으로 어설프게 점자 흉내를 낸 제품을 쓰라는 건 모욕”이라며 불쾌해했다.

최씨는 “점자 규격에서 오차가 1mm만 넘어서 시각장애인들이 이를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른 채 모양만 점자를 본떠 만들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욕을 먹어도 할 말이 없던 실수”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때부터 점자 규정을 독학했다. 서울 을지로 인쇄 골목을 돌아다니며 모든 제품에 쓸 수 있는 점자 인쇄 공법을 연구했다. 박씨는 “을지로에서 저희를 모르는 인쇄업자는 아마 없을 것”이라고 웃었다.

지난해 ‘점자의 날’(11월 4일)에 사업자 등록을 내고 사회적기업 지원단체의 도움을 받아 서울 신림동에 사무실을 차렸다. 거듭된 실패 끝에 점자 인쇄 공법 개발에 성공, 올해 1월 ‘점자 프린팅 기술’ 특허를 출원했다. 이들은 “시각장애인들이 점자 프린팅 기술을 접목한 휴대폰 케이스 속 점자를 처음으로 완벽히 읽었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했다.

최씨는 “시각 장애인들이 점자를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잘 새기는 것 못지않게 일반인들이 점자를 ‘디자인 패턴’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케이스 속 점자들을 패턴으로 승화시켜 자연스레 디자인에 녹아들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음표의 머리 부분을 점자로 표현해 손으로 만지면 ‘나누다’는 의미를 읽을 수 있게 한 휴대폰 케이스가 대표적이다.

최근엔 카드형 케이스에 보관해 사용할 수 있는 ‘카드형 USB’도 출시했다. USB에 새겨진 점자로 앞·뒷면을 구별할 수 있게 했다. 시각장애인들의 아이디어를 상품화한 제품이다. 박씨는 “시각장애인들이야 말로 진정한 스승들”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제품 판매를 통해 얻은 수익의 10%를 점자 교육을 위한 지원금으로 기부할 예정이다. 지난달 초 다음(Daum) ‘스토리 펀딩’을 시작해 5월까지 300만원을 목표로 투자자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수익보다는 이런 프로젝트가 있다는 점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게 중요하다”며 “펀딩을 통해 얻은 수익 역시 10% 는 점자 교육 지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래 대학생들을 보면 종종 부럽기도 하지만 이 길을 선택할 걸 후회하진 않아요. 저희의 작은 움직임으로 시각장애인 앞에 놓인 일상의 벽이 조금이나마 낮아졌으면 좋겠습니다.”

‘나누다’란 뜻을 담은 점자를 음표의 머릿 부분으로 활용해 디자인으로 활용한 ‘오르담(ORDAM)’의 휴대폰 케이스. 오르담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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