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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FX칼럼)끝물의 조짐

이진우 기자I 2002.10.16 14:44:38
[이진우 칼럼니스트] 지난 주 용평에서 열린 Korea Forex Seminar에서 필자도 달러/원 시장의 동향에 대해 주제발표를 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시장에 몸 담고 계신 많은 분들이 평소 본 칼럼을 읽고 있다는 점이 확인되면서 보람 이상의 부담감을 느꼈습니다.

이미 지난 환율 급락장에서 금년 벌어야 할 몫을 다 해냈다는 시중은행 딜러로부터 “당신의 칼럼은 일주일 정도 후에 읽으면 도움이 될 때가 많더라.”는 얘기를 듣고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시장 분위기에 편승하여 타오르는 불에 기름을 끼얹는 식의 칼럼을 써 나갈 것인가, 지금까지 해 왔던 것처럼 곧 닥칠 변곡점에 대한 경고(warning) 위주로 써 나가며 보다 큰 그림에 충실한 칼럼을 유지할 것인가의 고민이었죠. 체질상 앞으로도 별로 달라질 것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제목부터 해명하고 가자면
수요일 아침 개장 무렵 달러 현물 및 선물시장에서의 호가가 단기추세의 끝물에 도달했음을 짐작케 했다. 뉴욕증시는 나흘 연속 폭등세를 이어갔고 달러/엔 환율은 124.70대에서 거래되며 밤 사이 역외선물환(NDF) 시세가 전일 대비 5원 정도 상승하고 장 중에는 1270원대도 찍어보았다는 재료 하에 장이 열리면서 일단 현물시장에서는 오퍼(Offer)가 잠시 보이지 않았다.

선물시장에서야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주문실수를 노려 “눈 먼 돈” 벌어보겠다는 1290원대의 매도호가가 제시되었지만 그건 늘상 있어왔던 일이니 논외로 한다 치더라도 현물시장에서의 1272원 매도호가는 속이 들여다 보이는 가격이었다. 이후 화면에 찍힌 개장가는 1267원. 지난 금요일의 일중 고점이자 전고점으로 의미를 지니던 1266원을 갭 업(Gap-up)으로 해치우고 50전 정도 상승폭을 넓혀가는 듯 하던 환율은 곧 물량에 맞고 밀리기 시작했다.

롱플레이어들의 “1266원이 지지선인 듯 보이게 하는 작업”이 잠시 펼쳐졌지만 125엔을 찍자마자 후다닥 내려서는 달러/엔 환율에, 전일 장 중 내내 매수세를 형성하던 모 해외투자은행을 비롯한 역외세력의 매도세, 그리고 GM의 대우차 지분참여와 관련하여 10월 중 시장에 달러공급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알려진 물량 중의 일부가 나오며 1260원 마저 밀렸다. 야바위판 같고 줏대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따금씩 의미를 둘 만한 시세를 형성하기도 하는 선물시장에서 굳이 끝물의 조짐을 찾아내자면 최근 현물가격보다 3원 이상의 스프레드를 형성하며 거래되던 달러선물 11월물의 스프레드가 3원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정도.

현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의 금융시장 움직임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머니 게임(Money game)으로서의 속성이 강화되고 있다. 내가 지면 내 돈이 남의 수중에 들어가는 판국에 모두가 이기려 싸우고(거래하고) 있으며,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야인시대”의 개코가 별 볼일 없는 싸움실력에도 불구하고 염천교 나와바리의 대장을 제압한 것은 남성의 급소를 움켜쥐는 치사한 방법을 통해서였지만, 그렇게 한 번 이기고 나니 개코는 승자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것처럼, 경제지표니 기업실적이니 수급상의 수요 혹은 공급우위 등을 운운하지만 실상은 시장을 움직일 만한 힘이 있는 세력들이 판을 짜가는 와중에 경량급 선수들은 눈치껏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트레이딩이요 그러한 곳이 시장이다.

달러/엔 환율의 경우 Daily chart 상 기존의 상승쐐기형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에다 125엔대 진입이 달러/엔의 추가급등을 의미하기보다는 126엔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 패턴상의 고점과 2000년4월에 기록한 전고점으로서의 의미있는 레벨을 확인하기 위한 마지막 불꽃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점에 필자는 주목한다. 국내외 증시의 상승세와 외국인의 주식 순매수에도 불구하고 환율상승의 모멘텀으로 삼아왔던 달러/엔 상승세가 끝물에 가까웠거나 이미 찍었을지 모른다는 얘기다.

우리 경제가 인도네시아 통화의 급락세에 큰 영향을 받을 정도의 수준이 아님은 아시안 게임에서의 양국 메달 수를 살펴보더라도 알 수 있다.(동의를 기대하는 것은 아님. 순전히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함). 해서 인도네시아 루피아니 싱가포르 달러니 하는 조금 거리가 있어 뵈는 통화들은 차치하고 대만달러만 살펴보더라도 지난 7월 중순 이후 줄기차게 하락세를 보이던(미 달러화의 강세) Daily chart에서 美달러의 상승탄력이 급격히 줄어들며 추세전환을 가늠하는 주요 보조지표인 MACD에서는 이미 Cross-down이 관찰되고 있다.

달러/원의 경우는 결국 1332원에서 1164원까지의 환율 급락폭에 대한 조정 기대치로서는 제일 높다고 할 수 있는 61.8% 되돌림 수준인 1268원의 이마 끝까지 도달한 셈이고 일간 차트상의 240일 이동평균선, 주간 차트상의 60주간 이동평균선(최근 몇 년간 중기적인 환율 지지선이나 저항선으로 유용하게 작용해 왔다) 등이 또한 1266~1268원 정도에 걸쳐있어 롱플레이어들의 현란한 드리블이 골인으로까지 성공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레벨에 이르렀다.

그 동안 그토록 심하게 시장을 압박해 오던 기업실적의 재료를 가지고 뉴욕증시는 나흘 연속 눈 튀어나올 만한 폭등세를 이어왔고, 이제나 저제나 무너지려나 싶던 미국채는 화요일 장에서 아주 거덜이 나버렸다. 지난 주 종합지수 600이 무너지면서 “어쩔 수 없는 손절매도”까지 감안한다 하더라도 바보 짓처럼 비쳐지던 “투매”를 겪은 뒤에야 우리 주가도 반등다운 반등에 나서고 있다. 주식시장의 경우 미국이나 기타 지역에서 그 간의 단기급락에 따른 기술적 반등이 다소 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서울의 종합주가지수 580대에서 600 이상까지의 반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끝물의 조짐”이 지난 주에 연출되었고 항상 한 박자 늦게 반응하는 서울 외환시장은 이틀 정도의 흥분과 고집이 더 필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 더 오르자면 못 오를 것도 없겠지만
이 대목에서 다음 몇 가지 사항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고 싶다.

첫째, 달러/엔 환율이 그토록 중요한가? 우리가 익숙한 엔/원 환율 1000원을 기준으로 따지자면 달러/엔 125엔이면 1250원, 달러/엔 127엔이라도 원화환율은 1270원이면 족하지 않은가? 일본 경제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하루 이틀 사이에 뭐가 그리 달라진다고 달러/엔 환율은 120엔과 125엔 사이를 정신없이 오르내리는가? 그 시장에도 지금 수익에 굶주린 투기세력들이 들러붙어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있는 “재료”들을 가지고 한 판 크게 해먹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근본 환율변동이라는 것이 국가간의 무역교류에 따른 외환수급,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 간의 자본이동에 따른 부산물이라고 본다면 작금의 달러/엔 환율 등락을 그러한 “큰 틀”로 설명이 가능한가? 한 동안 달러매수/엔화매도에 치중한 세력들이 언젠가는 그러한 투기적 포지션을 청산해야 한다면 그 때에는 또 무슨 이유를 들어 엔화의 단기적인 강세현상을 설명하려 들겠는가?

둘째, 이렇게 금방 1280원이나 1300원을 입에 올릴 수 밖에 없을 만큼 취약한 통화가 원화라면 지난 4월 이후 쉼 없이 내리기만 하던 환율은 과연 무엇이었나? 달러가 하루 자고 나면 또 10원 남짓 빠지기만 하던 그 때에는 대한민국엔 수출하는 기업밖에 없는 것 같았고 은행권 딜러들에게도 업체 외환담당자들에게도 개인투자가들에게도 달러 롱포지션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처럼 여겨졌었다. “숏이 편하다. 롱은 견디기가 힘들다.”며 토로하던 시절이 불과 두어달 전이다.

그랬던 시장이 1228원에서의 공방에서 달러 추가상승 쪽으로 가닥이 잡힌 이후에는 대한민국에는 정유사를 비롯한 달러가 필요한 업체들만 있는 곳이 되었고 역외가 한 번 당기면 그대로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아주 허약한 체력을 다시 한번 노출하고 말았다. 다음 날 아니면 며칠 내로 “옳다구나.”하며 차익실현에 나설 역외 투자은행들이 무슨 저승사자라도 되는 양, 그들의 달러매수세 뒤에는 항상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을 것이라는 패배주의적 사고의 결과, 자주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따금씩은 주식시장이나 채권시장보다 한 발 앞선 모습을 보여줄 만한 외환시장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2~3일 정도 뒤늦은 반응을 보이는 덜 떨어진 모습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오버슈팅(Over-shooting)의 기간 동안 얼마나 영화를 누리겠다는 것인가? 1228~1230원의 공방에서 위가 열리는 장세가 이루어졌다면 1250원 언저리까지의 추가상승은 웬만하면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숏으로 맞서던 세력들의 손절매수와 Critical level 돌파 이후 쇄도할 신규매수세까지 감안하면 20원 정도야 얼마든지 내달을 수 있다. 1250원에서도 덜 왔다고 시장이 판단했으니 만큼 그리고 그 당시 증시를 비롯하여 주변여건들이 막연한 불안감을 조성하던 때이니 만큼 추가적으로 20원 정도 더 가보자고 나설 수 있다는 점도 수긍이 간다. 그러나 단가 좋은 롱포지션을 언제 털 것인가 고민하던 세력들 앞에서 “Buy more!”를 외치며 뒤늦게 뛰어든 세력들의 타겟은 도대체 얼마였는가? “아침에 1266원 위에서 시작한 것 봐라. 이젠 66원 아래는 당분간 힘들다.”고 코멘트 하는 사람의 포지션은 숏이었을까, 롱이었을까?

시장은 늘 그래왔듯이 다수를 울린다. 늘 의심하는 가운데에 시세는 터진다. 4일 연속 폭등 이후 장 마감 뒤 인텔의 분기실적이 예상치를 크게 하회한다는 소식에 나스닥 선물이 급락하며 오늘 밤 만큼은 뉴욕주식이 단기급등에 따른 큰 폭의 조정이 예상된다고들 한다. 그래서 서울의 주가지수는 뉴욕증시의 폭등을 반영하기보다는 예상 가능한 조정국면을 선반영 하기라도 하듯 상승폭을 좀처럼 넓히지 못하고 있다. 125엔을 찍자마자 급하게 내려서던 달러/엔 환율은 여전히 125엔대 진입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모습이다. 오늘 밤 뉴욕증시가 빠지면 달러/엔 환율도 같이 빠질까? 아니면 뉴욕증시가 오른다고 해서 반드시 125엔대 안착을 이루어 낼 것인가?

그렇다. 또 모르는 일이다. 이런다고 해서 환율이 이렇게 되고 저런다고 해서 환율이 저렇게 되리란 법도 없다. 한 가지 확실하게 얘기하고 싶은 것은 눈 앞의 현상에만 집착하지 말고 한 수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외환시장이 되어서 주식 투자자들도 환율의 변동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기업은 기업대로 “더 갈 겁니다(더 빠질 겁니다).”라는 은행의 코멘트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신들이 기대했던 레벨에 환율이 도달하면 까치 밥은 떼 줄 각오로 헤지매도나 헤지매수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1164원에서 못 산 달러이기에 1200원이나 1230원이 너무 높아보여 멍하니 급등장세를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것처럼 1266원에서 못 판 달러는 1256원에서 팔기가 더 어려워진다. 오늘 칼럼은 평소보다 훨씬 강하게 필자의 뷰가 피력되었다. 126엔의 돌파나 1270원의 돌파가 이루어지면 그 때에는 추세의 전환을 인정할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아직은 “잘 팔아야 하는 싸움”이라는 기존의 뷰를 버리고 싶지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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