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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올들어 상반기 내내 지지부진하던 암호화폐시장이 하반기 들어 회복세를 보이며 상승랠리를 다시 살려내고 있다. 비트코인은 어느새 8400달러를 돌파했고 원화로는 940만원까지 육박했다. 암호화폐 전체 시가총액도 두 달여만에 3000억달러를 회복했다.
악재가 주춤하며 여러 호재가 시장 상승세를 이끌고 있지만, 하락기에 쏟아졌던 매물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주요 매물대가 추가 상승을 가로막는 벽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시장 내부에서는 여전히 중장기적인 낙관론이 나오고 있다.
◇탄탄해진 기술적 바닥
일단은 비트코인이 장기간 바닥권에 머물면서 탄탄하게 바닥을 다지고 올라왔다는 점이 직접적인 매수세를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작년 12월말 역사상 최고치인 2만달러 직전까지 올랐던 비트코인은 올초 6100달러선까지 하락한 뒤 넉 달 이상 6000~7000달러 박스권에서 정체됐다. 지난달말에는 올들어 최저치인 5848달러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그러다 기관투자가들의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며 6500달러와 7500달러라는 강력한 저항선을 뚫었고 100일 이동평균선이 걸쳐있던 7610달러까지 가볍게 넘어서면서 추가 매수세가 들어오고 있다.
단순 계산으로도 6월 저점이던 28일의 5848달러에서 비트코인을 매입했다고 가정하면 이날 고점인 8342달러까지 무려 42%의 수익을 낼 수 있었을 만큼 강한 상승세다. 소셜 트레이딩 플랫폼인 이토로의 마티 그린스펀 선임 시장 애널리스트는 “비트코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새로운 관심들이 생겨나고 있다”며 이 덕에 암호화폐 강세장이 다시 도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비트코인이 8000달러 위에서 계속 유지될 경우 연말에는 1만달러까지도 상승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현재의 상승 모멘텀이 조만간 꺾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비트코인 가격이 한 달여만에 40% 이상 급반등했고 이미 기술적으로 과매수 국면으로 접어든 비트코인은 다음 번 저항선을 타진하면서 다소 조정을 보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존 펄스턴 크립토패턴스 발행인은 “비트코인이 별다른 조정 없이 8000달러까지 올라왔다는 건 그 자체로 매우 긍정적인 신호”라고 평가하면서도 올들어 가격 급락으로 인해 곳곳에 주요 매물대가 포진돼 있어 추가 상승에는 저항이 강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단 8400달러가 가장 큰 저항선이 될 것으로 점쳤다. 다만 이 지수대까지도 돌파할 경우 심리적 저항선인 9500달러까지도 타진해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숨 돌린 규제 우려
이처럼 반등을 꾀하던 암호화폐시장도 지난주 미국 의회에서의 암호화폐 청문회와 이번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로 이어지는 이벤트에서 규제 강화에 대한 메시지가 나올 지 예의주시하고 있었지만 그 결과는 시장에 오히려 우호적이었다.
지난주 하원 청문회에서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내부 조직인 랩(Lab)CFTC를 책임지면서 최고혁신책임자(CIO)를 겸직하고 있는 대니얼 고핀 이사는 성급한 규제로 인해 암호화폐를 통한 혁신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를 의원들에게 제시했다. 그는 “상품(Commodity)으로 간주될 수 있는 많은 다양한 것들이 존재하지만 이들 모두를 당국이 주시하고 있진 않다”며 “해당 상품에서 파생된 선물이나 스왑 등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고 난 다음에 규제나 감독을 시작하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또 “서둘러 암호화폐에 대해 분명한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예기치 않은 결과를 초래하거나 새로운 상품구조에 잘못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자리에 함께 한 게리 겐슬러 전 CFTC 위원장도 “우리가 수천년간 선호해온 금(金)과 같은 것이 암호화폐의 배후에 있진 않다”고 인정하면서도 “암호화폐는 가치저장 수단이 되고 있고 그런 점에서 비트코인은 현대적 형태의 디지털 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는 사회적인 구조”라며 옹호했다.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에서 각국이 암호화폐를 악용한 범죄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규제인 자금세탁방지(AML) 규제 기준을 10월말까지 마련하자는 것 외에 별다른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암호화폐 비교사이트인 크립토컴페어를 이끌고 있는 찰스 헤이터 최고경영자(CEO)는 ”그동안 암호화폐시장을 가장 억눌러왔던 규제가 서서히 우호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중국과 함께 가장 강한 규제를 보이던 한국만 해도 서서히 긍정적인 신호가 나오는 등 각국 당국이 리스크뿐만 아니라 기회 요소도 함께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기관투자가가 몰려온다
그동안 개인투자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암호화폐시장은 거대한 포지션을 가진 소위 `고래`들에 의해 휘청이는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기관투자가들의 시장 진입은 투자 수요 기반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시장을 안정적이고 균형있게 만든다는 효과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이 실무전담팀을 구성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시장 진입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는 호재는 의미있는 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 그동안 암호화폐에 부정적인 시각을 견지해 온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나면서 암호화폐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이던 데이빗 솔로몬 현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새로운 수장으로 온다는 소식도 호재로 작용했다. 월가 최대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이미 내부적으로 암호화폐 전담 트레이딩 데스크를 꾸리고 비트코인 선물 등 투자를 준비하고 있고 솔로몬 CEO 내정자가 바로 이같은 준비를 책임져 온 인물이다. 또 억만장자 헤지펀드 매니저인 스티브 코엔이 운영하는 코엔프라이빗벤처스가 암호화폐 펀드회사인 오토노머스파트너스를 인수하면서 월가 주요 기관들의 시장 참여가 줄을 잇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암호화폐 거래소와 월렛, 전문 소셜미디어 등으로 사업영역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는 코인베이스가 헤지펀드로부터 200억달러(원화 약 22조7100억원)에 이르는 자금의 수탁서비스를 맡기로 했다는 소식은 기관투자가들의 시장 참여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고 있다. 지난달 코인베이스는 기관들의 암호화폐 투자를 지원하기 위해 기관 수탁서비스인 ‘코인베이스 커스터디(Coinbase Custody)’를 출시했다. 이번에 수탁받은 200억달러의 헤지펀드 자금이 실질적으로 첫 고객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헤지펀드나 벤처캐피털, 자산운용사 등은 암호화폐에 투자하고자 해도 포트폴리오 관리와 암호화폐 수탁에 어려움을 느껴 참여를 꺼려왔다. 코인베이스 서비스가 본격 확산되면 기관들의 시장 참여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코인베이스는 이번 첫 고객 외에도 다른 대규모 헤지펀드들과도 파트너십을 체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가 첫 암호화폐 리서치기관인 펀드스트랫글로벌어드바이저 톰 리 대표는 “비트코인에 대한 부정적 시선들이 바뀌면서 서서히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며 “더 많은 법정화폐가 유입되면서 암호화폐 가격을 위로 더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TF가 촉발시킬 수요 증가
지난 2014년부터 시도됐던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기초자산으로 한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이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기대도 수요 확대를 점치게 하고 있다. 비트코인 선물의 경우 도입 이후 헤지나 투기성으로 매도하는 쪽이 더 많다보니 시장에 마이너스(-) 요인이 되기도 했지만 ETF가 도입되면 펀드내에 현물을 사담아야 하는 특성상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현물 매수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
그동안 ETF 승인 신청을 받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기초자산이 되는 해당 암호화폐의 유동성과 공급량, 총 거래대금, 수탁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승인여부를 판단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10여차례 신청에도 단 한 번도 허용해주지 않았다. 올 1월까지 SEC는 잠재적인 가격 변동성과 밸류에이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 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ETF 신청업체들에게 이를 자진 철회하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현재 SEC는 다이렉시온인베스트먼트 외에 5개 운용사가 신청한 ETF에 대해 최종 승인여부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에서는 대형 자산운용사인 밴엑과 솔리드엑스가 공동으로 설계, 신청한 비트코인 ETF를 이르면 8월쯤 승인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제기되고 있다. 아울러 암호화폐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스타트업 자산운용사인 비트와이즈(Bitwise)는 이날 시가총액 상위 10개 암호화폐에 투자할 수 있는 첫 인덱스형 ETF 출시를 위해 금융당국 승인 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그동안 SEC의 스탠스로 볼 때 단기간 내 승인이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에릭 밸처너스 블룸버그인텔리전스 선임 ETF 애널리스트도 “SEC로서도 여전히 투기적인 버블이 남아있는 암호화폐시장에 추가적인 가격 상승을 부추길 메시지를 주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에도 비트코인 ETF 기대감에 가격이 올랐다가 하락했던 사례를 거론하며 일종의 데자뷰가 이번에도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