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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도시바(東芝)가 반도체 자회사 ‘도시바메모리’ 매각의 발목을 잡아 온 미국 협력사 웨스턴디지털(WD)과의 협상을 개시했다. 양측의 양보 아래 협상이 진행되면서 SK하이닉스(000660)-베인캐피탈 연합 등 나머지 입찰 기업은 힘써보지도 못하고 인수에 실패할 가능성도 있어 관심을 끈다.
쓰나카와 사토시(綱川智) 도시바 사장과 스티브 밀리건 WD 최고경영자(CEO)은 지난 24일 오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회담에서 현 문제를 해결하고 매각 협의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일본경제신문(닛케이)가 25일 보도했다. 도시바는 미국 원자력발전 자회사 웨스팅하우스에서 7조원대 부실이 뒤늦게 드러나며 일본 기업 사상 최악의 자금난을 맞은 끝에 올 초 반도체부문 분할 매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WD는 도시바와 일본 요카이치(四日) 반도체 공장 공동 운영한다는 이유로 자신을 뺀 제3기업으로의 매각 절차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또 이달 14일 국제중재재판소에 매각 금지 요청을 냈다. 갈 길 바쁜 도시바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두 회사는 원래 직접 연관이 없었으나 웨스턴디지털이 도시바와 협력하고 있던 샌디스크를 인수하며 관계가 생겼다.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위해 2차 입찰에 참여한 SK하이닉스-베인캐피털 연합과 미국 브로드컴, KKR 등 나머지 후보군은 이 협상 결과를 지켜볼 수밖에 없게 됐다. 도시바는 원칙적으로 나머지 후보군을 포함한 입찰 절차를 계속 이어갈 방침이지만 법정 다툼 중인 WD가 적정 금액을 제시한다면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다고 닛케이는 전했다. WD가 사실상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셈이다.
WD도 본인 1조5000억엔(약 15조원), 일본 정부측 산업혁신기구 ·일본정책투자은행 5000억엔 등 이전보다 높은 2조엔 인수안을 새로이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WD(샌디스크)는 전 세계 플래시메모리 점유율 15.4%(2016년 기준)로 삼성전자(005930)(35.4%), 도시바메모리(19.6%)에 이은 3위다. WD가 도시바메모리를 인수하면 단숨에 삼성전자와 플래시메모리 시장을 양분할 수 있게 된다. 오히려 미국, 유럽 등의 반독점금지 조항이 인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WD가 도시바메모리 인수를 위해 제시한 금액이 다른 인수의향기업보다 여전히 낮다는 점도 양자 협상의 변수다. 닛케이는 WD가 이 금액을 얼마나 더 높이느냐로 협상의 초점이 이동하리라 전망했다. WD는 일본정책투자은행 등 일본 정부측 자본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미국 헤지펀드도 추가로 끌어들여 인수 자금을 확보할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