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SRE 자문위원은 신용평가 시스템을 대하는 금융당국의 태도를 이렇게 평가했다. 동양사태 이후 금융감독원은 국내 신평사 3사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고 신용등급 쇼핑 행위에 대한 제재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제재에 앞서 제도부터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SRE 자문단은 이 같은 설문 결과에 대해 금융당국의 개입 그 자체보다는 개입 방식에 대한 시장의 거부감이 반영됐다고 평가했다.
SRE 자문위원은 “과거에도 신평사의 등급평가 실패 사례에 대해 정부가 개입해 왔지만, 시장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며 “지금은 신평사 소속 실장과 애널리스트 등 개인까지 제재하겠다고 나선 것은 금융당국이 동양사태에 대한 책임을 신평사에 미루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금융당국이 그동안 제도 개선책 마련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8월 신용정보법 안에 있던 신용평가 관련 법규들을 자본시장법으로 이관하면서 신평사의 등급쇼핑과 등급카피, 재산상의 이익 수수 등 모범규준으로 규제하던 조항을 시행령과 감독규정으로 높였다.
또 올해 8월 자본시장연구원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연내 발표를 목표로 신용평가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에도 크레디트 업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신평사가 평가 대상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을’의 위치에 있어 등급 인플레와 등급을 사고 파는 문제들이 생기고 있지만, 신평사의 독립성을 키워주기보다 ‘을’을 채찍질하는 데만 몰두한다는 것이다.
이번 신평사 제재는 신용평가가 시작된 이래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이 역시도 개인에 대한 징계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특히 지난 9월 마무리될 줄 알았던 징계가 KB금융지주 사태, 카드사 개인신용정보 유출 등 다른 사안으로 두 달여 동안 미뤄진 것도 업계에 혼란을 주고 있다는 목소리도 높다. 금감원은 12월께에 있을 제재심의위원회에서 신평사 제재를 마무리 짓겠다고 전했지만, 계획대로 결론이 날지도 알 수 없다. 신평사는 신뢰도 회복을 위해 제도 개선 등에 나서야 함에도 손발이 묶인 상황이다.
크레디트업계는 신용평가 수수료 체계, 의무복수신용평가제도 등을 개선하고 독자신용등급 공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지만, 금융위의 정책 우선 순위에선 배제돼 있다는 게 시장 내 인식이다.
‘금융당국이 신평사의 불법 행위에 대해 더욱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이 24명(17.2%)에 그친 것은 당국의 제재를 보는 곱지 않은 시선을 그대로 반영한다.
한 시장 참여자는 “진작에 금융당국이 관심을 기울여야 했는데 문제가 커질 대로 커진 다음 과도하게 제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이데일리가 제작한 ‘20th SRE‘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20th SRE는 2014년 11월11일자로 발간됐습니다. 책자가 필요하신 분은 문의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 : 02-3772-0161, bond@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