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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발굴 지역인 교통호는 1950년 한국전쟁 인민군 점령기 당시 인민군이 전투를 대비해 판 참호로, 수복 후 서산지역 부역혐의자들이 이곳에서 집단 학살됐다. 유해발굴 지역은 전체 길이 약 60m 정도로 3개 구역으로 나눠 지난 10일부터 진행 중이다. 폭과 깊이가 각각 1m 이하로 좁은 교통호를 따라 빽빽한 상태로 약 60~68구가 발굴됐다.
옆으로 누워있거나 고꾸라져 있는 모습으로 발굴된 유해들은 당시 희생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게 한 후 머리 뒤를 쏜 총살로 추정된다. 한 유해는 양팔은 뒤로 꺾인 채 신발을 신은 상태로 발견됐다. 주변에는 소총 M1으로 추정되는 탄피와 백색의 4혈 단추, 고무줄 바지 끈, 반지 등 유품도 발견됐다.
특히 일부 구역에서는 유해 다리 사이에 다른 유해가 안치돼 2~3중 위아래로 중첩된 모습으로 드러났다. 이는 당시 학살 이후 마을 들개가 시신을 물고 마을까지 내려와 이장이 청년들과 함께 주변 시신을 교통호 안에 재매장했다는 참고인들의 증언을 뒷받침한다고 진실화해위원회 측은 전했다.
지난 2008년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를 통해 다수의 참고인들이 읍·면 단위마다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충남 서산경찰서의 ‘신원기록심사보고’를 통해 당시 총살 목격자와 시신 수습자 등과 함께 현장 조사 중 발견한 지역이기도 하다.
이번 유해 발굴 관련 사건인 ‘서산·태안 부역혐의 희생사건’은 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2007년 1월부터 조사를 시작해 2008년 12월 진실규명을 결정한 사건이다. 조사 결과 1950년 10월 초순부터 1950년 12월 말까지 충남 서산경찰서와 태안경찰서 소속 경찰과 해군에 의해 서산시 갈산동 교통호 등 최소 30여곳에서 적법한 절차 없이 집단 학살된 사건으로 밝혀졌다.
현재까지 희생자로 확인된 사람은 977명이고, 희생추정자는 888명에 달한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는 최소 1865명의 민간인이 희생된 것으로 판단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꾸려갔던 당시 20~40대 성인 남성들이었으며 여성도 일부 포함돼 있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실효성 있는 유해발굴과 위원회 종료 이후 유해발굴 사업이 지속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7월 ‘유해매장 추정지 실태조사 및 유해발굴 중장기 로드맵 수립 최종보고서’를 발간하고 전국 6개 지역 7개소를 선정해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