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배드뱅크는 "세금을 쓰레기와 맞바꾸는 정책"이라며 "우리는 매우 다루기 힘든 국가 재정지출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론에도 불구, 유럽까지 배드뱅크 설립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배드뱅크 설립은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 다만 논란을 최소화하기 위한 작업에 시간이 걸리며 당초 예상보다 발표가 늦어질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한편 미국과 유럽의 배드뱅크안은 내용이 조금 다르다. 미국식(式)은 정부가 전적으로 부실자산을 떠안는 구조이지만, 유럽은 각 은행별로 배드뱅크를 세워 부실을 자체적으로 해소하도록 하고 보증을 통해 이를 돕겠다는 것이다.
또한 배드뱅크 설립을 통해 금융시스템을 회복, "돈이 돌게 하겠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도 남아있는 상황이다.
◇ 美 금융권 구제 패키지, 내주 발표될 듯
티모시 가이트너 신임 재무장관이 이끌게 된 미국의 재무부가 내놓을 새로운 금융권 구제 패키지는 크게 세 가지 구조인 것으로 알려졌다.
|
첫 번째가 바로 모기지 증권 등 은행들의 재무제표를 크게 악화시키고 있는 비유동 부실자산만을 따로 떼내어 흡수, 이를 처리해 주는 배드뱅크를 설립하는 것.
부실자산을 떼어내고 우량자산만을 가진 굿뱅크(Good bank)는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것은 물론, 자금 조달이 더 용이해져 부실을 빨리, 쉽게 떨어낼 수 있게 되는 구조다. 관련기사 ☞ 美 `배드뱅크` 카드로 금융구제 나선다
두 번째는 정부가 은행들의 부실 자산 포트폴리오 가운데 일부를 보증해 줌으로써 향후 손실에 대한 방패막이 역할을 해 주는 것.
세 번째는 보통주 매입. 이는 은행 우선주를 매입하는 것이었던 전 정부의 7000억달러 규무의 부실자산구제계획(TARP)으 약간 수정해 은행들이 발행하는 보통주를 매입할 수도 있도록 바꾼 것이다. 보통주 매입은 향후의 주가 상승으로 인한 이득을 납세자들에게 돌려주기 위한 방편이다.
배드뱅크와 관련해 가장 큰 논란거리는 부실자산 가치산정. 부실자산 가치를 낮게 책정하면 은행이 어렵게 되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어렵고, 너무 비싸게 산정하면 납세자의 막대한 돈이 투입되게 된다. 그리고 재원 마련의 어려움, 효과가 과연 얼마나 있을 지에 대한 의구심 등도 반론을 부르고 있다. 관련기사 ☞ 美 배드뱅크 `난항`..방안-효과-재원 `논란`
배드뱅크에 들어갈 자금은 많게는 무려 4조달러까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찰스 슈머 상원의원과 골드만삭스 등이 4조달러를 얘기하고 있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보증하는 채권을 발행하거나 TARP 2차 집행분 일부를 사용하는 것, 새로운 TARP 자금을 의회에 요청하는 것,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를 통한 대출 등이 재원조달 방법으로 거론되고 있다.
당초 미국의 구제안은 이번 주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런 논란이 이어지면서 다음 주로 공개가 미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CNBC는 지난 달 30일(현지시간) 배드뱅크 설립안이 유력하지만 전면 무효화될 수도 있다며 찬반론이 격돌하고 있다고 전했다.
◇ 통합 배드뱅크 vs. 개별 배드뱅크
미국 정부가 고려하고 있는 배드뱅크는 통합형(aggregator bank). 미국에 이어 유럽도 배드뱅크 설립을 논의중이나 통합형이 아닌 개별 은행마다 설립하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독일 정부가 고안하고 있는 배드뱅크 안은 은행별로 내부 배드뱅크를 설립하는 것. 당장 막대한 공적자금을 사용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
통합 배드뱅크를 만들었을 때 부실자산 인수가격이 높게 책정되면 정부의 재정적자 부담이 늘어나게 되고 도덕적 해이 논란도 발생할 수 있다. 반대로 부실자산 인수가격이 너무 낮게(장부가격 아래로) 책정되면 납세자들의 부담만 키운 채 은행 건전성 제고 효과가 별로 없을 수 있다. 또 은행의 자본이 잠식됨에 따라 은행이 국유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독일은 은행별 배드뱅크를 설립해 운영하되, 은행의 부실자산 인수 가격이나 보증 가격을 시가(mark to market) 대신 장부가로 쳐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장부상 부실자산의 가치가 시가보다 더 높아서 손실 확대를 우려한 은행들이 자산을 처분하려 하지 않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특수목적법인(SIV)으로 설립되는 개별 배드뱅크에 대해 정부가 보증을 서주고, 만약 추가 부실이 발생할 경우에 다시금 돈을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한마디로 부실자산에 대해 보증을 해준다는 것과 비슷하다. 단, 은행의 장부에서 부실자산이 떨어져 나온다는 점에서 과거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씨티그룹의 부실자산을 보증해준 것과는 다른 구조를 갖고 있다.
뉴욕대 경영대학원(스턴 스쿨) 맥스 홈즈 겸임 교수는 1일자 뉴욕타임스(NYT) 기고문에서 배드뱅크가 국유화 보다는 나은 방법이지만, 통합형 배드뱅크 보다는 개별형 배드뱅크가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새로운 자금을 마련해 배드뱅크에 쏟아붓지 않고 각 은행들의 채무(liability)에 해당하는 자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 은행은 채권 등을 발행해 투자자를 끌어들이면 된다는 것이다. 투자자로는 사모투자펀드(Private Equity) 등이 거론되고 있다.
◇ `배드뱅크는 배드 아이디어`
통합형이든 아니든 아예 배드뱅크 안에 대한 반론도 강하다.
`월가의 족집게`로 불리는 오펜하이머 & Co.의 메디디스 휘트니 애널리스트는 "재무제표에서 부실자산을 제거한다고 해서 은행권 대출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배드뱅크 설립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휘트니 애널리스트는 이 보다는 은행들이 갖고 있는 값나가는 자산을 파는 것이 손실을 보전하는데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LA타임스는 1일자 사설에서 "배드뱅크는 나쁜 아이디어(`Bad bank` is a bad idea)"라며 정부가 부실자산을 직접 사들이는 것보다 문제가 있는 자산에 대해 보증을 해 주는 것이 최선의 아이디어라고 주장했다. 부실자산 가치를 제대로 산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만 은행들의 부실자산 보유에 대한 기반만 만들어 주면 된다는 논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