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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황장애-트라우마 극복할 단서, 국내 연구진이 찾았다

이재운 기자I 2018.08.07 09:58:11

생쥐가 포식자에 느끼는 본능적 공포 원리 규명

KAIST 제공
[이데일리 이재운 기자] 생쥐가 포식자를 무서워하는 반응을 통해 국내 연구진이 공포에 대한 선천적인 반응을 결정하는 신경회로 원리를 밝혀냈다. 향후 공황장애나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 치료 기술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7일 KAIST에 따르면 한진희 KAIST 생명과학과 교수와 박형주 한국뇌연구원(KBRI) 뇌신경망연구부 박사 공동 연구팀은 동물의 공포에 대한 선천적인 행동 반응이 발생하게 만드는 뇌신경회로를 발견하고 그 원리를 밝혔다.

장진호 박사가 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7월 16일자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동물은 포식자나 위험한 물체와 맞닥뜨렸을 때 적절한 공포 반응을 나타낸다. 가령 사람이 골목 모퉁이를 돌다 갑자기 튀어나온 자동차를 발견하면 깜짝 놀라 몸이 얼어붙는 듯한 경험을 하는데, 이것이 ‘동결(freezing)’이라 불리는 대표적 공포 반응이다. 적절한 공포 반응이 위협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여줘 생존에 필요한 기능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뇌신경학자들은 반대 측면, 즉 공포 반응을 조절하는 신경회로의 이면에 주목한다. 공황장애나 트라우마처럼 극도의 스트레스나 지속적인 생존의 위협에 노출된 사람들에게서 공포 반응을 조절하던 두뇌 회로가 고장난 듯 기능 이상을 보이는 현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원리를 규명하는 작업이 앞서 언급한 질병을 효율적으로 치료하는데 필수적이다.

한 교수 연구팀은 신체적인 고통에 반응하고 통증 정보를 처리하는 뇌 영역으로 알려진 전측대상회 피질(ACC, anterior cingulate cortex)라는 전두엽의 기능에 주목했다. 그 동안 전두엽 뇌 영역이 학습을 통해 획득하는 후천적 공포 조절 기능을 담당한다는 사실이 동물 실험 등으로 규명됐지만 선천적 공포조절 기능은 알려진 바가 없었다.

연구팀은 그간 다른 연구자들이 접근하지 않았던 ‘포식자에 대한 본능적 공포 반응’을 통해 실험을 하며 데이터를 확보하는데 주력했다.

빛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뉴런의 활성을 조절하는 광유전학 기술을 생쥐의 전측대상회 피질에 적용했다. 생쥐들을 포식자인 여우의 냄새에 노출시킨 상태에서 전측대상회 피질 영역을 억제, 자극해 반응 변화를 살폈다.

ACC의 뉴런을 억제하자 여우 냄새에 대한 동결 공포 반응이 크게 증폭됐고, 반대로 ACC를 자극했을 때는 공포 반응이 감소했다. 또한 전측대상회 피질 자극은 트라우마 기억에 대한 학습된 공포 반응도 강하게 억제하는 효과를 보였다.

이를 통해 연구팀은 ACC 영역 내에서 편도체로 연결을 맺은 일부 뉴런들의 성질을 규명했다. 회로망에 따른 뉴런의 종류를 구분하고, 전측대상회 피질-배외측 편도체핵 연결망이 단일 시냅스 흥분성 연결로 구성된다는 점을 파악했다. 나아가 선천적 공포 조절 기능을 수행하는 하부회로를 찾아내 이를 자극하면 공포반응이 감소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코요테나 들쥐 등 다른 포식자에 대한 보강 실험에서도 역시 이런 점이 확인됐다.

한 교수는 “선천적 위협 자극에 대한 공포 행동반응을 코딩하고 있는 뇌 속 핵심 신경회로를 발견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학술적 의미가 있다”며 “향후 전측대상회 피질 신경회로를 표적으로 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기술 개발의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뇌과학 원천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왼쪽부터 한진희 KAIST 교수, 장진호 박사. KAIS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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