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경인기자] `삼성전자의 노트북 센스Q30, 아이리버의 딕플, 냉장고 디오스와 지펠...`
최근 한국 전자제품의 주력 색상으로 부상한 `정열의 빨간색`이 일본 열도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가전제품을 인테리어의 일부로 보는 경향이 짙어지면서, 전통적인 회색과 흰색 등 희미한 색상들이 빨간색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일본 가전제품 제조업체들이 제품에 빨간색을 채택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소비자들의 선호도를 따라, 애매모호한 색상에서 탈피해 주방 스토브에서부터 PC까지 모두 빨간색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것.
일본의 경기 거품이 붕괴된 이래 하얀색과 회색, 은색 등의 무채색들이 가전제품을 지배해왔다. 쉽게 질리지 않는데다 어떤 인테리어에도 무난하게 어울리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주택 디자인이 주방-거실-식당의 오픈 구조로 바뀌면서 특히 주방 제품의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샤프는 지난 9월 런칭한 전자렌지 `헤르시오` 2세대의 주력 색상을 `짙은 빨강`으로 정했다. 이는 진보한 오븐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소형 모델은 `밝은 빨강`으로 채색해 건강을 중시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어필할 계획이다.
`헤르시오`의 1세대 모델은 지난 8월까지 1년간 무려 10만개 이상이 판매됐다. 그 중 빨간색이 40%에 달해 당초 회사의 예상치보다 두 배 이상 많았다. 샤프 디자인센터 매니저인 오카다 카이코는 "빨간색 선호가 높아질 것은 예상했지만, 이것은 기대 이상의 폭발적인 반응"이라고 전했다.
`빨간색이 먹힌다`는 결론에 도달한 샤프는 식기세척기, 공기정화기와 같은 다양한 제품에 빨간색을 입혔다.
하얀색과 은색이 주종이던 에어콘에도 `레드 열풍`이 불었다. 산요전자는 올해 2월 에어콘 `시키 사이칸`을 출시했다. 7개의 다양한 컬러 중 빨강 버전의 인기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이 회사 측의 전언.
NEC는 빨강 노트북 PC 마케팅을 진행중이다. `카시스 레드` 모델을 웹 사이트에 공개한지 단 3개월만에 무려 1000개를 판매했다. NEC는 "9월에 출시되는 신모델 예약의 80%가 빨강 버전이며, 특히 여성 고객들이 빨간색 모델을 더 선호한다"고 밝혔다.
일부 제조업체들은 세일즈 캠페인에도 빨간색을 주로 쓰기 시작했다. 소니는 새로운 `브라비아` 모델 평면 TV의 세일즈 프로모션 이미지 색상으로 짙은 빨강을 택했다. 소니에 따르면 30~40대 뿐 아니라 50대 후반까지도 빨간색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빨강은 오랫동안 일본에서 사랑받아온 색상이다. 일본 국기의 주력 색상임은 물론 주요 축제때 이미지 색상으로 사용되고 있고, 컵과 라커박스 등 일상적인 제품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일본에서 다양한 빨강은 각기 다른 이미지를 가진다. 다홍색이 여성스러움, 부드러움을 상징하는 반면 갈색빛 빨간색은 부유함과 성숙함, 강인함 등을 상징한다. 최근 가전업체들이 가장 선호하는 짙은 빨강은 세련됨, 섹시함 등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일본 패션컬러협회의 카와무라 마사노리는 "빨간색 가전제품이 증가하는 것은 최근 트랜드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며 "고객들은 가전제품을 패션 아이콘과 같은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니폰 칼러 앤 디자인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빨간색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는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01년 15%에도 못미치던 것이 2004년에 25%를 넘어섰다. 분홍색을 포함한 `붉은색`에 대한 선호도는 커진 반면, 파랑색과 하늘색 등의 `푸른색`에 대한 선호도는 낮아졌다.
이에대해 마사노리는 "빨간색 선호도가 증가하는 것은 일상적이고 지루한 삶에서 벗어나고 싶은 강한 열망을 반영한다"며 "빨강은 활력, 생동감 등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다 자유롭고 분명한 느낌을 갖게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