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부시 대 케리)②"서민적 보스" 부시

하정민 기자I 2004.03.03 12:11:56
[edaily 하정민기자] 오는 11월 치러질 제 44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할 조지 W 부시 현 대통령은 너무나 잘 알려진대로 40대 대통령 조지 부시의 장남이다. 조지 워커 부시 현 대통령은 케네디 가(家)와 쌍벽을 이루는 미국의 최대 정치명문 부시(家) 가에서 1946년 태어났다. 할아버지 프리스콧 부시가 상원의원을 지낸 미국 동부 코네티컷 주에서 출생했지만 아버지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가 석유사업에 뛰어들면서 텍사스로 이주했다. 부시 대통령의 증조부 새뮤얼 부시는 철강산업에 손을 대 재산을 축적했고 아들 프리스콧을 세인트루이스 출신의 월가 거물 조지 허버트 워커의 딸 도로시와 결혼시켰다. 허버트는 정치적 영향력과 든든한 재력을 무기로 사위의 상원의원 당선을 뒷바라지 했다.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이름에 외할아버지의 성인 `워커`가 포함됐다는 사실만 봐도 그의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부시 대통령 부자가 모두 텍사스에서 석유사업으로 기반을 일군 후 정계로 진출한 데에도 외가의 도움이 컸다. 젊은 시절의 부시는 `부잣집의 철없는 망나니`에 불과했다. 아버지가 다녔던 동부 명문 사립고교인 앤도버를 거쳐 예일대학에 입학했지만 평균 학점이 C-에 불과할 정도로 졸업장을 겨우 얻었다. 예일대 재학시절에는 `해골단`이란 클럽에 가입했는데 이 클럽은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 아버지 부시 대통령, 현 부시 대통령 등 대통령만 3명을 배출한 클럽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부시는 이 클럽에서 술과 연애로 세월을 보냈을 뿐이다. 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의 전쟁영웅이었지만 그는 훈련만 받다가 베트남전에 참가도 못했다. 국내 방위군에 소속된 그는 복무기간을 제대로 이수하지 않았다는 의혹을 받았고 이는 지금도 부시의 정적들이 단골로 비판하는 메뉴다. 군 복무 경험이 없다는 사실은 지난 2000년 존 메케인 상원의원과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맞붙을 때도 불리하게 작용했다. 이번 대선에서는 베트남 전쟁영웅인 민주당 존 케리 후보가 또다시 이 약점을 잡아 집중 공격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부시는 보기좋게 로스쿨 시험에 떨어졌다. 허송세월하던 그는 역시 아버지 후광으로 하버드 경영대학원(MBA)에 입학, 간신히 과정을 이수했다. 하버드와 예일이라는 미국 최고의 학부를 나왔지만 빈약한 지적 수준때문에 매번 언론의 질타를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버지 부시가 나서 "우리 아들은 멍청하지 않다"고 변호까지 했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이었다. 석유사업에 성공한 아버지 부시는 미 중앙정보국 국장(CIA)을 거쳐 정계에서도 승승장구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도 당선됐다. 그러나 아들은 여전히 아버지의 명성에 흠집을 내는 존재였다. 31세에는 하원의원 선거에서 낙방해 가문의 명성에 오점을 남겼고 사업 운도 따르지 않아 석유사업 시작 10년도 안 돼 300만달러의 빚더미에 올랐다. 이 시기에 그는 친구의 소개로 만난 교사 출신의 로라와 결혼했다. 어린이, 독서, 교육 문제를 제외한 일체의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하는 전형적인 현모양처 이미지의 로라는 `드센` 힐러리에게 거부감을 느낀 미국 유권자들의 표심을 부시 쪽으로 돌려놓는 데 상당부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부시의 인생은 1986년 이후 백팔십도 달라졌다. 1986년 40세 생일파티 다음날 전격적인 금주를 선언한 그는 적자 회사를 거대 석유업체 하켄에 팔아치운다. 1988년엔 아버지의 대통령선거 캠프에 참가, 연설원고 등을 작성하며 본격적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듬해 부시는 "창조적인 일을 하겠다"며 파산 직전의 텍사스 레인저스 프로야구단을 인수했고 이후 그의 인생은 화려한 성공가도를 달렸다. 만년 하위권에 불과하던 텍사스 야구단의 성적이 좋아지면서 텍사스의 인기인으로 급부상한 것. 급기야 1994년 텍사스 주지사로 당당히 뽑혔고 2000년 백악관에 입성하기 전까지 텍사스 주지사직을 무리없이 수행했다. 이후 부시 대통령의 행로는 잘 알려진 바다. 2000년 대선에서 민주당 앨 고어후보보다 적은 표를 얻었지만 치열한 법정소송 끝에 동생 제프 부시가 주지사로 있는 플로리다 주를 석권, 아버지가 민주당에 뺏긴 백악관 주인 자리를 8년만에 되찾았다. 그러나 국내외적으로 악재가 겹쳤다. 클린턴 정권과 달리 경제불황이 심각했고 전대미문의 911테러까지 발생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 그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다시 이라크에 손을 댔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전쟁에는 승리했지만 그는 재선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작년 말 후세인 체포로 지지율이 반짝 상승하기도 했으나 많은 인명손실과 지지부진한 전후 처리, 고압적인 대외관계는 재선 가도에 적신호를 드리우고 있다. 케리는 끈질기게 경제 및 이라크 정책의 실책을 부각시키며 부시를 공격하고 있다. 미국 역사상 부자 대통령이 재선한 전례가 한 번도 없었다는 징크스도 부담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낙관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부친의 후광으로 대통령까지 됐다"는 시기어린 비난은 죽을 때 까지 그를 따라다닐 꼬리표지만 아버지의 덕으로 모든 것을 돌리기는 어렵다. `모범생` 스타일의 아버지와 달리 그는 서민적이고 보스 기질이 풍부하며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실제 유권자들은 부시 대통령을 동부출신 귀족이 아닌 남부 텍사스에서 성공한 보통사람으로 여긴다. 부시의 독특한 아우라는 앨 고어를 물리치는 데도 결정적인 위력을 발휘했으며 케리 후보는 고어와 매우 흡사한 부류의 정치인이라는 점을 그는 잘 알고 있다. 1992년 무명의 아칸소 주지사 클린턴은 "문제는 바로 경제야, 이 바보야(It"s Just the Economy, Stupid)"란 한 마디로 아버지 부시를 꺾었다. 이번에는 아들 부시가 "경제가 전부는 아니야, 이 바보야(It"s no longer Just the Economy, Stupid)"란 말로 케리를 꺾을 수 있을까.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