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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류 과다처방' 의사 입건에도 문전성시.. "살빼면 그만"

이유림 기자I 2023.12.06 11:20:59

구로 'ㄹ'의원 오픈 전부터 대기줄
의료용 마약류 과다처방에도 문전성시
"한 달 동안 10kg 쭉쭉 빠져"
마약류는 금단·내성 탓에 중독 위험

[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4일 오전 9시 55분 서울 구로구 신도림의 ‘ㄹ’ 의원 앞에는 20여 명의 긴 대기 줄이 섰다. 오전 10시 첫 진료를 받기 위해 새벽부터 선착순 대기표를 받았던 사람들이 진료 시간이 가까워지자 하나둘씩 모여든 것이다. 이곳은 온라인상에서 ‘다이어트 3대 성지’로 불리며 ‘오픈런’이 필수인 곳으로 알려졌다. 최근 의원장이 의료용 마약류 과다처방 혐의로 입건되어 논란이 된 곳이기도 하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의 ‘ㄹ’의원 앞. 오픈 전부터 대기하는 모습. (사진=이유림 기자)
서울 구로경찰서에 따르면 ‘ㄹ’ 의원 원장 A씨는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된 상태다. A씨는 의료용 마약류(향정신성의약품) 펜디메트라진을 환자 10여 명에게 과다 처방한 혐의를 받는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해당 의원에 대해 올해 1월과 6월 마약류 오남용이 우려된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 해당 의원의 의료용 마약 처방 내역 등을 확보해 분석한 뒤 A씨를 입건했다. A씨는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A씨를 상대로 피의자 조사를 마쳤다”며 “송치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도 ‘ㄹ’ 의원은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는 40대 남성 임모 씨는 “뉴스에서 보긴 했는데 그 뒤로 어떻게 됐다는 이야기는 접하지 못했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는 ‘음주’ 때문에 살이 급격하게 쪘다면서 “약 복용 후 한 달 동안 10kg이 쭉쭉 빠졌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확실히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방문이라는 40대 여성 김모 씨는 “입건 사실은 알지 못했다”면서도 “첫 번째 복용 때 과다 처방됐다고 느꼈다면 이렇게 또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20대 여성 진모 씨는 “의지가 약한 편이라 약 없이는 식욕 조절이 잘 안 되는데 여기가 제일 유명하대서 찾아왔다”며 “과다복용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다이어트) 목표를 이룬 다음 줄여가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도 다이어트 약을 별다른 제약 없이 처방받을 수 있었다. 우선 문진표를 작성하고 키·몸무게·혈압을 측정했다. 차례가 오기를 30분가량 기다리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그러자 의사는 복용 횟수 안내와 함께 두근거림·울렁거림·손떨림·불면증·두통·어지럼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만치료지침 기준이 되는 신체질량지수(BMI)가 19.92로 정상이지만 이에 대한 특별한 언급은 없었다. 오전 8시 30분 대기표를 받아 의사를 만나기까지 3시간 넘게 걸렸는데 진료는 2분만에 끝났다. 진료비로 5만원, 약값으로 12만 9500원을 지불했다. 총 9종류의 약이 4주치 처방됐는데 그중에는 마약류 식욕억제제 중 하나인 ‘펜디메트라진’ 성분이 포함됐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의 ‘ㄹ’의원 처방전. 노란색이 의료용 마약류 ‘펜디메트라진’ 성분.(사진=이유림 기자)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기준’에 따르면 식욕억제제 사용 대상은 외인성 비만 환자들이다. △적절한 체중감량 요법에 반응하지 않는 초기 체질량지수(BMI) 30kg/㎡ 이상 △당뇨 등 다른 위험인자가 있는 BMI 27kg/㎡ 이상 환자의 경우 체중감량 요법의 단기간 보조요법으로 식욕억제제가 활용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의료용 마약류가 오남용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과 교수는 “마약류는 금단증상과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중독될 위험이 있다”며 “변비와 구토, 혈압 상승과 피부 두드러기가 생길 수 있고 호르몬 균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의료용 마약이 중독자를 양성하는 하나의 게이트(Gate)가 될까 우려스럽다”며 “사회적 비용이 커지기 전에 식약처 등에서 단속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 구로구 신도림의 ‘ㄹ’의원에서 처방받은 4주치 다이어트 약(사진=이유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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