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오후에)현대차 위기의 본질은 후진성이다

문주용 기자I 2006.04.07 15:03:10
[이데일리 문주용 경제부장] 지난 2000년 8월말. 현대그룹 `왕자의 난`은 정점을 지나 종막으로 치닫고 있었다. 마지막 고비는 현대차(005380) 그룹의 계열분리.

정몽구 회장이 고(故) 정몽헌 회장이 주도한 3부자 퇴진 요구를 물리치고, 현대차 계열사들을 현대그룹으로부터 떼어내려 하고 있었다. 고비는 공정거래위원회의 계열분리 승인. 이것만 되면, 정씨 형제는 피의 관계조차 청산하는 것이었다.

8월31일 현대차그룹의 계열분리를 공정위가 승인한 날, 현대차 기자실에 이계안 사장(현 열린우리당 의원)이 내려왔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현대차와 정몽구회장은 이익치가 주도한 현대그룹의 공세를 막아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다. 계열분리는 꿈도 못꿨을 것이고.

이 사장에게 기자들이 물었다. "이 사장이 보시기에, 정몽구 회장이 현대차그룹을 잘 이끌어갈 걸로 보십니까. 솔직하게 말해보시죠"

많은 기자들은 현대차가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면 몇년 못가서 망하거나, 외부 세력(당시는 다임러 크라이슬러가 지목됐다)에 기업이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아주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것이었다.

이계안 사장은 "걱정하실 필요없습니다. 정 회장을 제가 옆에서 쭉 모셔봤는데, 한가지에 대해서는 분명합니다. 정말 천운을 타고 나신 분입니다. 이건 어렵겠다 싶은데, 시간이 지나면 결국 환경이 바뀌거나 어떻게 되든, 정 회장은 승운을 잡습디다. 사업을 성공시켜요. 그런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천운을 타고난 분이라 그런 걱정할 필요없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짜봐도 그때 이 사장이 정 회장의 경영능력을 높게 평가했던 것 같지는 않다. 대신 이 사장은 정 회장의 `천운`을 몹시 강조했다.

그후 2년쯤 뒤 이계안 사장은 정몽구 회장의 측근과의 갈등설속에 전격적으로 현대카드 회장으로 발령났다. 그리고선 그도 현대차그룹을 떠났다.

계열분리후 지금까지 현대차는 수년간 빛나는 실적을 올리고 몸집불리기를 통해 급속도로 커져 가면서, 차츰 당시 기억도 가물해졌지만 검찰 수사가 잊었던 의구심을 일깨운다. `현대차는 성장에 그칠 것인가, 발전까지 해낼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다.

국가경제도 그렇지만 기업도 규모가 커지면 성장이 발전을 견인할 것이다. 그렇게 보였다. 그러나 검찰 수사과정에서 현대차는 성장을 발전으로, 양질전환시키지 못해왔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현대차 수사를 지켜보면서 많은 이들이 무슨 의도에서 검찰이 수사했을까. 청와대는 어떻게 개입됐을까, 다른 기업도 손볼까 하는 외부적 요인과 배경을 찾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계기가 외부에 있을지언정 현대차 위기의 본질은 내부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검찰 수사가 현대차에 닥친 위기의 근원은 아니다. 위기의 본질은 현대차 내부에 있는 경영의 후진성 그 자체다. 6년전이나 지금이나 현대차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차가 전혀 현대적이지 않은, 후진성의 단면은 첫째, 경영결정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현대차 그룹의 모태인 현대 그룹이 정주영 창업주의 기획력과 저돌성이라는 개인기에 철저히 의존한 것처럼, 후속그룹은 현대차도 체계적이고 시스템적인 접근보다는 정몽구 회장의 감정적인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해왔다. 경영시스템을 선진화하지 못했다.

후진성의 두번째 단면은 전형적인 측근전횡 경영이다. 후진적인 경영일수록 측근이 활개치는 법이다. 직위나 능력이 아니라, 딱하나의 기준인 `오너와의 거리`가 결정권을 갖는 경영이다. 특히 인사 전횡이 이뤄진다.

이번 현대차 수사의 계기가 된 내부제보자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내부제보자가 바로 인사전횡의 희생양일 것이라는 동정적인 여론과도 무관치않다. 현대차를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라도 측근들의 충성심 경쟁이 현대차에 가장 큰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측근이 판치는 경영은 실력있는 임직원들을 떠나게 만든다. 현대차는 인사시스템을 현대화하지 못한 것이다.

후진성의 세째 현상은 윤리경영의 실종이다. 재계는 수년전부터 윤리경영을 외치면서 정경유착, 하도급비리, 불공정거래 등을 하지 않겠다는 자정노력을 해왔다.

그러나 삼성의 독주를 견제하면서도 재계 이해를 모아내는 등 재계내에서 리더십을 인정받아온 현대차는 재계의 윤리경영노력과는 전혀 반대방향으로 나아간 것이 드러나고있다. 자회사와 위장계열사를 통해 `회사 기회 편취`라는 방식으로 정몽구 회장 부자에게 회사 이익을 떠넘겨주는 잘못을 저질렀다. 그 규모는 천문학적 액수가 될 전망이다.

이런 비윤리적인 경영은 일부 언론을 통해서 간간히 새어나왔지만, 현대차는 위기의 시그널로 인식하지 못한채 진실을 덮는데에 급급했다. 현대차는 윤리경영이라는 피할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한 것이다.

현대차가 삼성전자 수준이 되고 안되고는 검찰 손에, 청와대 손에 달려있질 않다. 자동차를 많이 팔아 수익을 올리는 것만으로는 `제2의 삼성전자`가 되지 않는다. 하늘로부터 얻은 `천운`도 전부가 아니다.

기업 경영에 천운이 어디 있겠는가. 떠올릴 수 있는 천운이라면 그저 `기업경영의 시대정신`일 것이다. 시대정신에 맞추고 읽어내는 현대적 경영을 하면 발전을 기약할 것이다. 이를 읽어내지 못하고 내부에서 이전투구만 하는 전근대적인 경영이라면 도태될 뿐이다. 현대차는 위기의 본질을 정확히 깨우치는데서 위기극복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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