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兆단위 북극항로 개척기금 설립…부산에 해운거래소도 육성"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
이정훈 기자I 2025.09.11 06:45:58

[만났습니다] 안병길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 ①
"선주·화주·금융사·해양연구기관 아우른 컨소시엄 구성"
"조각투자·STO로 해양관련 펀딩 지원..해운거래소 추진"

[부산=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내년 여름부터 시작되는 북극항로 시범운항과 향후 이어질 상업운항에 대비해 수 조(兆)원 규모의 북극항로 개척기금이 해양수산부와 산하 정책금융기관인 한국해양진흥공사(이하 해진공) 주도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또 북극항로 운항을 책임질 국적선사는 물론이고 화주와 금융기관, 해양분야 국책연구기관 등을 한데 모은 이른바 ‘K아크틱 파이어니어(K-Arctic Pioneer)’ 컨소시엄를 구성하기로 했다.

안병길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 (사진 제공=해진공)


이를 통해 부산항을 북극항로 시대의 첨병으로 만드는 한편 해양거래를 담당할 국제 해운거래소까지 키우는 등 부산을 명실상부한 해양수도, 글로벌 해양허브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안병길 해진공 사장은 지난 4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북극항로 개척을 통한 부산 해양수도 육성은 우리나라의 생존과 직결된 국가적 과제”라고 강조하며 해진공의 역할을 한층 강화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아울러 안 사장은 연내 1000억원 규모로 기존 보유 선박에 개인들이 투자할 수 있는 조각투자에 나서는 한편 향후 토큰증권(STO)을 활용해 새로 건조하는 선박과 해양 물류 및 해상풍력 인프라의 자금 조달을 지원하면서도 개인들에게 안정적 투자 수익을 제공할 수 있는 신(新)금융기술 접목에 나서겠다고 했다.

다음은 안병길 해진공 사장과의 인터뷰 전문.

-부산을 중심으로 한 북극항로 개척이 왜 중요한가.

△북극항로 개척을 통한 부산 해양수도 육성은 우리나라의 생존과 직결된 국가적 과제다.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의 말을 빌자면, `해양은 국가 경제안보의 최전선`이다. 수에즈 운하, 호르무즈 해협 등 기존 항로가 갈수록 불안정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해상루트 확보는 필수다. 그런 점에서 북극항로는 단순한 대안이 아니라, 우리 미래를 결정할 전략적 생명선이다. 경제적 효과는 더 명확하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거리가 32~37% 단축되고, 운항일수는 10일 이상 줄어든다. 연료비 절감은 물론 탄소 배출도 크게 줄일 수 있어 환경과 경제를 모두 잡을 수 있다. 특히 부산은 중국 상하이항이나 싱가포르항에 비해 물동량은 적지만,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북극항로와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있다는 결정적 강점이 있다.

-부산을 해양수도로 키우는데 필요한 것은.

△부산을 해양수도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역대 정부에서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구체적 목표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하드웨어만 놓고 보면 부산은 이미 세계 10위에 들 정도로 경쟁력이 높다. 항만과 각종 인프라, 조선산업, 인재, 기술 등이 강하다. 반면 해양 금융과 정보, 디지털화, 해양거래, 법률서비스 등 소프트 파워는 약하다. 일단 부산에 있는 우리 공사가 해양금융과 정보를 담당하고 있고, 연내 부산으로 이전할 해수부가 해양 행정서비스를 맡게 된다. 여기에 해사법원까지 부산으로 오면 해양 법률서비스도 원스톱으로 가능해진다. 마지막 방점은 해양거래인데, 이 역시 해진공이 맡을 수 있다. 이미 해양 정보를 쌓고 있고 부산발 선박 운임지수도 자체 개발해 표준화하고 있다. 이 같은 해양거래를 맡아 국제 해운거래소까지 키우는 게 궁극적 목표다. 북극항로 개척도 이런 거대한 프로젝트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북극항로 개척 과정에서 해진공은 어떤 역할을 준비하나.

△해진공은 해수부 산하 정책금융기관으로서 북극항로 개척을 현장에서 실행하는 주관적 역할을 맡고 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적선사의 극지 전용선박 확보다. 아이스클래스(Ice-Class·국제 쇄빙선 건조표준) 선박은 일반 선박에 비해 1.5~2배 비싼 고비용 구조를 지녀 민간 단독 대응이 어렵다. 공사는 이를 지원하기 위해 북극항로 개척기금을 조성해 선박 건조와 운영에 따르는 위험을 덜어줄 예정이다. 내년 여름 계획된 시범운항은 북극항로 경제성을 입증하는 출발점이다. 이를 위해 공사는 국적선사와 화주와 함께 `K아크틱 파이어니어(K-Arctic Pioneer) 컨소시엄`을 구성해 운항 계획, 비용 분담, 데이터 축적을 준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연료비 절감, 탄소저감 효과를 실증하고 해빙 데이터와 운항 안전 매뉴얼을 축적해 향후 정기항로 개설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또 항로별 해빙 조건, 운항 위험 요소를 실시간으로 집적하고 분석하는 북극항로 운항정보 플랫폼도 준비 중이다. 이를 통해 선사와 화주가 경제성과 안전성을 사전에 검증할 수 있도록 지원하며, 시범운항 데이터와 국제협력 정보도 통합해 향후 북극항로 상업운항 체계의 기반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북극항로 개척기금은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현재 북극항로구축지원특별법에는 북극항로 개척기금 부분이 없어 해수부, 국회 등과 얘기해 법 규정에 기금 설립 근거를 만드는 입법을 11월 쯤 처리할 계획이다. 북극항로 운항을 하려면 쇄빙선과 내빙선부터 만들고, 이 항로 운항이 가능한 전문 인력을 고용하고 양성해야 한다. 특히 컨테이너선을 한 차례만 운항해도 60억~70억원 씩 손실이 나는 만큼 선사에 이를 보전해줘야 한다. 해도(海圖)도 직접 시험 운항하면서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 이 모든 걸 감안할 때, 시범운항에만 조(兆) 단위의 돈이 들어갈 것으로 본다. 정부 예산만으로 다 할 수 없다. 법에 기금 설립 근거가 만들어지면 해진공이 해양금융을 통해 기금을 만들어 지원할 것이다. 재원 조달 방법이나 기금 용처, 규모 등은 해수부와 함께 논의하고 있는데, 해진공 내부 자금에다 해사채권 외화채를 발행해 외부에서 조달한 자금을 같이 활용할 수 있다. 국책금융기관들이 공동 참여하고, 필요하면 민간 금융기관도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조 단위 자금이 한꺼번에 필요한 건 아니기 때문에 일단 기금을 만든 뒤 자금을 축적하게 될 것이다.

안병길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 (사진 제공=해진공)


-K아크틱 파이어니어 컨소시엄은 왜 필요한가.

△선박이 운항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화주다. 배가 운항하는데 화물이 없으면 갈 수 없다. 중국이야 자체 물동량이 많아 이미 북극항로에 정기 컨테이너선을 띄웠지만, 우리는 LNG선이나 화물선 위주고 컨테이너선은 쉽지 않다. 그나마 여섯 차례 정도 북극항로 운항 경험이 있었던 것도 러시아 쪽 화물을 우리 쪽으로 실어오면서 쌓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주뿐 아니라 화주가 컨소시엄에 있어야 하고 금융기관과 극지연구소 등 연구기관 등 여러 이해관계자들이 협업해야만 가능하다. 이 컨소시엄은 그런 협력체인 셈이다. 해수부가 태스크포스팀을 만들면 북극항로 운항을 위해 거버넌스를 구축하게 되고, 해진공이 해수부와 협업을 통해 세부적인 실행에 나설 것이다.

-북극항로 시범 운항을 위해서는 러시아를 비롯한 북극해 인접국가들의 협조가 필요한데.

△북극항로를 통해 선박을 운항하려면 러시아 연해를 지나가는 게 가장 유리하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현재 우리와 러시아 간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고,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이후엔 재건을 위해서라도 한국과의 경제 협력을 원할 것이다. 러시아로부터 항해 허가권을 받는 데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최근 선박에 대한 조각투자라는 새로운 금융기술을 접목할 계획을 발표했다.

△사실 연내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STO사업을 해고자 했는데, 입법 일정이 늦춰지면서 일단 기존 자산유동화법 내에서 할 수 있는 조각투자를 먼저 하기로 했다. 선박 조각투자는 새로운 방식의 금융조달 기법을 도입해 개인과 민간이 쉽게 선박에 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열고, 기업간(B2B) 중심인 해운·조선산업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높이고자 한다. 일단 시범사업으로 해진공이 HMM 측에 용선 준 선박 한 척을 유동화할 계획이다. 이 선박을 기초로 1000억원 이내의 수익증권을 발행해 일반투자자 누구나 증권 계좌를 통해 청약에 참여해 지분을 갖게 하고 이를 거래소에 상장시켜 자유롭게 유통시장에서도 거래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통상 중고 선박의 가격은 용선료와 폐선박 가격을 합친 것인데, 펀드 만기 3년 뒤에 우리가 다시 매입하는 조건으로 보증을 하면 투자자 손실이 없도록 할 수 있다. 대신 기존 선박펀드보다 2배 정도 수익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향후에 STO 법안이 통과되면 블록체인 방식의 조각투자로 이르면 내년부터는 새로 건조하는 선박이나 해양 물류 인프라, 해상풍력 인프라 등에도 자금 펀딩이 쉬워질 수 있다. 국민들 입장에선 투자 수익을 낼 수 있어 윈윈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해양산업시장 자체도 굉장히 커질 수 있다.

-해운거래소 설립도 준비하고 있다는데.

△세계 주요 해운거래소가 싱가포르, 런던 등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부산이 동북아 내 독자적인 해운 및 금융허브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부산이 단순 항만도시를 넘어, 복합 금융 플랫폼의 중심지로 도약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해진공이 추진하는 해운거래소는 단순한 거래 플랫폼이 아니라, 부산이 국제 해운금융 허브로 도약하기 위한 제도적, 산업적 인프라다. 해진공이 축적해 온 KCCI, KDCI와 같은 공신력 있는 운임지수를 기반으로, 운임과 친환경 연료 파생상품, 탄소배출권 거래 등을 마련할 예정이다. 즉 기술적으로는 디지털 기반 청산·정산 인프라, 금융적으로는 운임 및 친환경 연료 파생상품, 탄소배출권 거래를 결합할 것이다. 특히 다른 해운거래소와 차별화하기 위해 메탄올과 암모니아 등 친환경 에너지는 물론이고 폐선 및 중고선 거래, 해양에 특화한 탄소배출권 거래까지 계획하고 있고, 이를 위해 이미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국내 수출 기업들의 해외 거점 확보를 돕기 위한 글로벌 물류 공급망 구축을 위해 블라인드펀드를 조성했는데.

△해진공은 작년 1월 공사법 개정 이후 해외 물류자산 확보를 위해 5년 간 약 1조원 규모의 투자를 계획, 지금까지 미국, 베트남 등 4개국, 8개 시설에 투자 및 글로벌 물류·공급망 투자펀드 등을 통해 총 4254억원 규모의 금융을 제공했다. 특히 중소·중견 해운·물류기업이 실질적으로 필요로 하는 해외 물류자산을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작년 2140억원 규모의 글로벌 물류·공급망 투자펀드를 조성하고, 미국 애틀랜타 인근 1만평 규모의 물류센터 매입을 완료하고 본격적인 운영을 앞두고 있다. 내년부터는 미국 관세정책 등 지정학적 불확실성에 맞춰 미국과 말레이시아 등 해외 물류센터를 더 확보할 것이다. 또 장기적 측면에서 자금 지원이 적기에 이뤄지도록, 국내외 전문 금융기관들과 협력체계 강화를 통해 보다 안정적인 외화자금 조달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다.

이 기사 AI가 핵심만 딱!
애니메이션 이미지지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