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남창균 기자] 소비자는 항상 옳다. 적어도 제품을 만들어 파는 기업 입장에서는 그렇게 믿어야 한다. 소비자가 내 물건을 몰라준다고 억울해 할 일이 아니다. 환경을 탓하고 남을 탓해 봐야 시간만 아까울 뿐이다. 내부에서 문제를 찾고 바꿔 나가야 한다. 이것이 혁신의 기본이다.
혁신은 때를 기다려서 하는 게 아니다. 실시간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졸면 죽는다’는 말이 나온다. 눈을 뜨고 있어도 당하는 게 요즘 세상이다.
이달 11일 출시된 애플의 아이폰4S는 국내 판매에서 신통치 않은 성적표를 받았다. 스티브 잡스의 후광만 믿었다가 보기 좋게 당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아이폰4S의 판매량이 저조한 원인을 하드웨어 차별화 실패에서 찾는다. LTE라는 복병에게 시장을 선점 당한 요인도 있다. 세상은 LTE(롱텀에볼루션) 속도로 바뀌는데 예전 모델로 승부를 걸다 큰 코 다친 셈이다.
LG전자는 스마트폰 대열에서 낙오하면서 창사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휴대폰 사업은 한 때 회사를 먹여 살렸지만 지금은 회사가 휴대폰 사업을 먹여 살리고 있다. 유상증자로 1조원을 수혈받는 중환자가 된 것이다.
이런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동조합에서는 LG 스마트폰 구매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정작 LG전자의 수장인 구본준 부회장의 자기 혁신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위험을 감당할 연구환경은 조성하지 않고 혁신하겠다고 주장만 하는 회사로 보인다”는 한 퇴직 연구원의 따끔한 지적에 대해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노키아와 소니는 어떤가. “석유 굴착 플랫폼에서 일하고 있던 한 남자가 커다란 폭발음에 깨어났다. 그는 시추 플랫폼이 화염에 휩싸인 것을 보고 서둘러 몸을 피했다. 불길과 연기를 피해 남자는 불타는 플랫폼의 가장자리에 섰다. 플랫폼 아래는 어둡고 차가운 바다 뿐이다.”
노키아의 CEO 스테판 엘롭이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 내용 중 일부다. 메시지 속 불타는 플랫폼은 바로 노키아를 가리킨다. 한때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의 40%를 차지했던 ‘휴대폰 왕국’이 빠른 속도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휴대용 오디오기기 ‘워크맨’의 성공으로 글로벌 가전 시장을 주름 잡았던 소니도 형편이 어렵다. 2000년대 초 MP3플레이어가 등장했을 때 저급한 음질이란 이유로 외면했다가 워크맨의 퇴출이라는 쓴 잔을 들었다. 브라운관 TV를 고집하다가 LCD TV 에 늑장대처한 것도 뼈아팠다. 결국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식으로 대응하다가 수렁에 빠진 것이다.
혁신에는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혁신의 실패에는 더 크고, 오랜 고통이 기다린다. 혁신전도사 스티브 잡스는 “항상 갈망하고 항상 무모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고 주문한다.
아이폰 4S가 한국에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것은 잡스가 외친 혁신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고, 경쟁력을 높이는 길은 자명하다. 혁신의 고통을 즐겨야 진짜 고통을 줄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