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병원은 이날 새벽 백 선생이 영면했다고 밝혔다. 백 선생은 지난해부터 심장질환 등으로 수술과 병원 치료를 받아왔다.
지난 1932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백 선생은 1950년대부터 농민과 빈민, 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해왔다.
백 선생은 지난 1974년 2월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로 옥고를 치렀고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 시 ‘뮛비나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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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페이스북을 통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이 한창일 때 백기완 선생님을 만나뵈러 갔었다. 내 청춘의 노래이자 험난한 시대를 넘어서야 했던 동지들의 노래. 그리고 끝내 국회 본회의장에서 불렀던 노래, 그 노랫말은 백기완 선생님의 시, ‘묏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되새겼다.
강 전 수석은 “내가 선생님의 책을 처음 접했던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 딸에게 주는 편지’라는 작은 책이었다. 딸에게 주는 편지형식으로 쓰인 이 책에 나오는 장산곶매 이야기는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재야’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쓰신 분도 선생이시다. ‘인권이 침해당하고 자유가 박탈당하는 거친 들에 곡식과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라 풀이를 하셨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역사와 미래를 위하여 일평생 나무를 심어오신 선생님께서 영면에 드셨다. 선생님, 평안하소서.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고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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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당의 박영선 서울시장 경선후보는 “선생님이 계시던 대학로 부근 아담한 연구소로 아주 오래전 찾아뵈었던 일은 이제 선생님의 젊음이 담긴 추억이 되었다”며 “통일에 대한 애끓는 열정을 토로하셨던 선생님. 저에게 ‘시원시원하고 단호해서 좋다’고 하셨던 선생님. 선생님. 참 고생 많으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이제 편히 쉬세요. 저희들이 잘 할게요”라며 “선생님 영전에 ‘임을 위한 행진곡’ 원작시를 바친다. 그리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목청 높여 다시 불러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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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 대표는 “사는 모습, 서로의 생각들이 조금은 다를지라도 선생님 앞에서는 모두 하나같이 깊이 머리 숙일 수 있었다. 이제 모자란 우리들에게 누가 회초리가 되어주실까”라며 “부고를 받아들고 휑한 마음 저 구석에 그리운 얼굴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평생 민주주의와 평화통일의 길 틔워 주신 그 자리에 저희들 잘 걸어가겠다. 그곳에서 부디 영면하소서”라고 전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에 마련됐고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7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