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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나 정체성 비슷할수록 폭력·갈등 발생확률 높다"

김혜미 기자I 2018.04.19 09:42:47

KAIST 이원재 교수 연구팀, F1 경주 데이터 분석
"객관적인 스포츠 데이터, 사회현상 연구에 적합"

[이데일리 김혜미 기자] 지위나 정체성이 비슷할수록 폭력이나 갈등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9일 이원재 KAIST 교수 연구팀은 지난 45년간의 포뮬러 원(Formular One) 자동차 경주에서 발생한 사고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는 내용의 연구 내용을 발표했다. 연구에서는 나이가 비슷하고 실력이 우수할수록, 날씨가 좋을수록 갈등이 더 깊어진다는 사실도 목격됐다.

일반적으로는 사용자와 노동자, 권력자와 시민처럼 권력과 정체성이 다를 경우 사회적 갈등이 더 빈번하게 발생한다는 인식이 많다. 그러나 생명을 위협할 정도의 갈등으로 범위를 좁힐 경우 오히려 사회적 지위가 비슷한 관계에서 이같은 현상이 더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와 비슷한 상대방으로 인해 자신의 지위나 정체성에 대한 모호함이 발생하면 사회적 위치에 대한 확신이 떨어지고, 이같은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상대방을 공격하게 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F1 경기를 통해 형성된 인간 행동 데이터를 이용, 인간의 사회적 정체성 유사도를 수치화했다. 지난 45년간 F1 경기에 출전했던 355명 사이에 발생한 506회의 충돌 사고 데이터를 분석한 것. 연구팀은 랭킹과 같은 객관적 성과 지표를 통제한 뒤 선수끼리의 우열, 천적관계 등에 대한 개별적 우열관계를 토대로 선수별, 시즌별 등으로 프로파일을 구성했다.

그 결과 선수간 프로파일이 비슷할수록 서로 충돌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 교수는 “서로 승·패가 비슷해 경쟁관계에서 우위가 구분이 되지 않으면 본인이 모호해진다고 느낀다. 다른 사람에게는 져도 나와 비슷한 상대에게는 반드시 이겨서 모호한 정체성을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랭킹 1·2위끼리는 자주 만나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를 전부 받아들이고 통제한 결과 가설이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사회현상과 F1의 상관관계와 관련해 이 교수는 “회사나 조직에서의 경쟁관계나 우위는 데이터를 구하기 쉽지 않지만, 스포츠는 종속변수로 삼는 선수의 성과가 객관적으로 기록된다”며 “어떤 사회적 관계를 가지며 어떤 구조적 위치에 있느냐를 측정하는 것이 기본 모델인데 F1 데이터는 그런 면에서 매우 객관적인 수치기록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독일 ESMT의 매튜 보너 교수, 프랑스 INSEAD 헤닝 피에누카 교수, 리처드 헤인즈 미 재무부 박사와 공동으로 수행했으며 미 국립과학원회보(PNAS) 3월26일자에 게재됐다. 이번 논문은 미국과학한림원(NAS) 회원 기고가 아닌 직접 투고 방식으로 게재한 두번째 사례로, 국내 대학 사회학자가 PNAS에 논문을 게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원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 KAIST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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