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재웅기자] 두산그룹이 다시한번 재계 주목을 받고 있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신기법을 활용, 투자자를 끌어들이는 등 선제적 구조조정에 잇따라 성과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밥캣 인수 뒤 끊임없이 제기돼 온 유동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3일 전격발표한 4개 계열사 지분처리도 마찬가지.
두산그룹은 ㈜두산(000150)이 보유한 삼화왕관과 SRS코리아, 그리고 두산인프라코어(042670)가 보유한 한국우주항공(KAI) 지분을 `한방에` 털어내는 기법을 선보였다.
다른 기업들 같았으면 개별지분들에 대한 각각의 원매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개별접촉을 하는 수고와 비용을 들였을 일이다.
두산은 사고(思考)의 차원을 달리했다. 재무적 투자자를 확보하고 이들과 각각 페이퍼컴퍼니 특수목적 회사(SPC)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 매각대상 지분 각각에 대해 일정비율로 나눠 인수함으로써 윈-윈하는 새로운 구조조정기법을 고안해냈다.
매각대금은 두산DST 4400억원, 한국우주항공(KAI) 1900억원, SRS코리아 1100억원, 삼화왕관(004450) 408억원 등 총 7808억원. 이렇게 유치한 자금을 통해 유동성 애로를 한번에 해결한다는 방안을 만들었고, 성공했다.
◇두산 '新기법'의 핵심은 '윈-윈'
업계에서는 SPC를 이용한 구조조정 모델에 대해 매우 신선한 시도로 평가했다.
상당량의 수주를 확보하고 있는 두산DST와 한국우주항공(KAI), 현금흐름이 좋은 삼화왕관 사업부문과 버거킹·KFC로 대변되는 SRS코리아 등 각각 업종성격과 사정이 다른 회사 지분을 한번에 매각하는 새로운 방식과 '팔릴만한 회사'를 파는 두산 전통의 M&A기법을 효과적으로 결합됐다는 평가다.
아울러 미래에셋PEF와 IMM프라이빗 에쿼티 등 FI는 양호한 회사의 지분을 인수, 2대주주로서의 이득을 볼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SPC청산시에도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또 SPC 운영 3년 경과시점부터는 상호 투자회수 보장을 위해 일방이 지분매각을 원할 경우 상대방이 매각에 동참해야 하는 '드래그어롱(Drag Along)' 조건과 이 경우 서로에 대해 우선매수권도 부여함으로써 일방의 독주를 막는 상호보완적 시스템도 눈에 띈다.
업계 관계자는 "양측이 5년 내에 SPC를 청산키로 한 것은 FI들이 펀드로 구성돼 있어 만기가 도래하는 이유도 있지만 핵심은 5년안에 현 지분의 가격이 현재 보다는 훨씬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매각에 FI로 참가한 유정헌 미래에셋PEF 대표도 "투자하면서 기업의 밸류에이션을 연구했고 투자수익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면서 "경영권 매각시 큰 이득을 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산은 이번 거래에서 SPC에 출자하는 금액 1500억원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는 6308억원 가량을 유치하는 효과를 본다.
◇타깃은 밥캣 이슈 해소
아울러 그동안 두산의 발목을 잡았던 밥캣 문제도 이번 구조조정안을 통해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결국 이번 자금 수혈은 밥캣 인수로 인한 차입금 상환이 주목적이기 때문이다.
현금유입분 6308억원은 대부분 밥캣 이슈 해소에 투입된다. 이와 함께 산업은행 등 채권단도 두산의 이같은 노력에 대해 재무약정상 '에비타 부채비율(debt-to-EBITDA)'을 오는 2012년까지 7배로 완화시키기로 했다.
기존 계약은 약정상 2008년과 2009년 '에비타 부채비율'을 7배 이하를 맞춰야 하며 오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는 6배 이하, 2012년부터 대출 종료시까지는 5배 이하로 부채비율을 유지해야 한다. 만약 약정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부족분을 증자 등을 통해 현금으로 채워넣는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구조조정안으로 두산은 추가증자로 인한 유동성 위기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밖에도 현금 6308억원의 유입으로 지난해 8월 이사회 결의사항인 10억달러 증자를 실행에 옮기게 되는 효과도 있다.
◇시장 "역시 두산다운 발상"
두산의 이번 매각에 대해 시장에서는 환영한다는 분위기다.
우선 SPC를 이용해 투자자 유치와 경영권을 유지하면서도 수익성의 기회를 계속 노릴 수 있는 '일거양득' 시스템에 대해 "역시 두산"이라는 평가다.
또 그동안 두산의 발목을 잡았던 밥캣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에서는 두산의 이번 구조조정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있다.
시장의 한 관계자는 "이번 두산의 구조조정은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긴 것"이라며 "특히 밥캣의 불확실성을 한 번에 해결했다는 점에서 매우 긍정적인 방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두산으로선 마지막이자 최선의 카드를 뽑은 셈"이라면서 "핵심사업에 주력하기 위해 비교적 성과가 좋은 회사들을 매물로 내놓고 일을 성사시킨 것은 전형적인 두산만의 딜 방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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