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장에게 묻다)현오석 "외환보유고는 신뢰 디딤돌일 뿐"

김기성 기자I 2009.04.16 14:46:00

"궁극적으로 경제체질 강화하고 거시경제 잘 운영해야"
"경기 바닥 근접..올하반기·내년상반기 턴어라운드"
"구조조정 꾸준히 해야..일본 잃어버린 10년 반면교사"
"인플레 걱정할 때 아니다..서비스산업 규제 풀어야"

[이데일리 김기성기자]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사태 이후 추락했던 글로벌 경제가 다시 꿈틀대는 분위기다. 생산 등 일부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개선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글로벌 주식시장도 반등 랠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일시적 반등 및 과열에 대한 경계감도 크다. 전세계에 걸친 막대한 유동성 공급 덕택에 글로벌 경제위기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징후를 보이고는 있지만 넘어야할 산이 아직 많다는 지적이다. 이데일리는 현재의 경제국면과 향후 전망을 진단하기 위해 국내 주요 경제연구원 원장들에 대한 릴레이 인터뷰를 실시한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김주현 현대경제연구원 원장
②김주형 LG경제연구원 원장
③김종석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④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 원장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외환보유고는 중요하고 신뢰의 디딤돌이 될 수 있지만 외환위기를 막는 증거물이 될 수는 없다"며 "관건은 경제체질 강화 여부이고 이를 위해서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거시경제를 잘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원장은 16일 경제 현안 진단 및 전망을 위한 이데일리의 `연구소장 릴레이 인터뷰`에서 "신뢰를 잃으면 외환보유고가 아무리 커도 버퍼가 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현 원장은 "소비 투자 고용이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 회복단계로 보기는 어렵지만 경기의 바닥에 가까이 온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를 고비로 턴어라운드 하지 않나 싶다"고 전망했다.
 
또 "경기 회복 패턴은 U자형으로 판단되는데, 바닥의 길이는 정부 정책에 달려 있다"며 "단기적으로 볼 때 재정이 역할을 담당해야 하고, 경기가 회복된 다음에 가서 재정건전성과 통화유동성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은 사느냐 죽느냐의 관점이다"고 강조했다.
 
그는 "불황의 폭과 회복시기는 각 나라가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추경 편성과 상대적으로 낮은 주택 리스크 등을 감안하면 회복시기가 빠를 수 있다"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이어 "휴대폰 반도체 자동차 등 주력 품목의 시장점유율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신호"라며 "시장점유율은 한번 줄어들면 회복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앞으로 경기가 회복되면 우리에게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현 원장은 구조조정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구조조정은 경기와 관련없이 경쟁력 차원에서 꾸준히 해야 한다"며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에서 입증됐듯이 구조조정이 제대로 안되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그 회복의 잇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구조조정이 잘 되느냐 아니면 못되느냐가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느냐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 원장은 경제위기 진정 이후 인플레이션 우려에 대해 "지금은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때가 아니다"면서 "금융시스템을 정상 작동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환율 추세에 대해서는 "글로벌 달러 약세, 경상수지 흑자, 통화스왑 등과 같은 외환시장에서의 안전망 구축 등을 감안하면 (하향) 안정적일 것"이라며 다만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규모가 적어 해외자금 환류에 대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투기자금 환류가 원화의 급속한 절상 등 불안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일자리 유지 및 창출과 관련해선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 `고용없는 성장` 처럼 고용이 줄어드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며 "그 분야는 서비스산업인데, 정부가 규제완화에 과감히 나서야 하고, 이해당사자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과 집행 모두에서 전략이 필요하다"면서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이해당사자의 입장을 조정하는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없다"며 정부의 전략적 마인드 제고를 주문했다.
 
다음은 현 원장과의 일문일답.
 
- 최근의 경제 상황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시는지. 바닥의 징후가 보이고 있는데.
▲바닥이 가까이 온 것은 사실인 것 같다. 반등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작년 4분기 급격히 위축됐었는데, 그 위축 속도가 올들어 감소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몇개 개별적 지표들이 개선되고 있지만 특히 재고가 줄어들고 있다. 생산을 늘리기 전 단계다. 재고 증가는 제품이 안팔려 불황이 깊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반면 재고 감소는 수요를 재고로 대응하고 있다는 얘기다. 가동률도 상승했다. 투자를 하기 보다는 현재의 시설을 돌리고 있다. 2월의 가동률은 66.7%로 1월의 61.4% 보다 높았다.
 
하지만 가동률이 80%를 넘어야 정상적인 회복이다. 소비 투자 고용도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여전히 회복단계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그널은 바닥에 가까워지고 있고, 작년 4분기보다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 관건은 미국인데, 미국 경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진단하시는지.
▲세계로 봐도 개인으로 봐도 자산과 부채 사이에 굉장한 불균형(unbalance)이 있다. 그동안 부채가 너무 많았다. 경제난 이후 개별주체들이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 소비를 줄이는 대신 저축을 늘리면서 소비가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이같은 개인의 불균형과 금융시스템의 불안 등을 감안하면 미국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은 금융위기가 지난 2007년8월 BNP파리바 사태부터 시작됐다는 것이다. 2년 정도 됐다. 사이클로 보면 경기가 어느정도 턴하는 시점에 왔다. 또 그동안 미국 등 각국이 기상천외한 정책을 많이 내놨다. 이런 측면에서 정책적 기대효과가 나타나지 않느냐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에 미국 경제가 더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가 상당히 있다. 미국은 하반기에 바닥 시점이 오지 않느냐는 얘기가 많다.
 
물론 개별 주체의 소비행태에 변화가 생기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작년 4분기 이후 금융시스템의 신뢰성이 조금 나아졌다는 것이다.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작년 위기상황보다는 개선되고 있다. 또 개인의 불균형을 조정하는 그 자체가 위기의 원인을 교정해 나가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 경기사이클이 계속적으로 하강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턴어라운드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하강의 속도나 폭이 줄어들고 있다.
 
- 우리나라의 경기회복이 다른 어느 나라보다 빠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은데.
▲불황의 폭과 회복시기는 각 나라가 정책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회복시기가 빠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세계 경기와 연동돼 있지만 추경을 편성했다든지 주택가격에 대해 규제를 많이 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리스크가 적어 회복의 시기도 빨라질 수 있다고 판단한다. 
우리나라 수출은 줄어들고 있지만 시장점유율은 늘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의 수출이 더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휴대폰 반도체 자동차 등의 시장점유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좋은 신호다. 전체적인 파이는 줄어들지만 그 파이에서 나눠먹은 부분은 우리가 늘어나고 있다. 시장점유율은 한번 줄어들면 만회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앞으로 경기가 회복되면 우리에게 유리할 것이다. 
 
- 국내 경기 회복 패턴과 잠재성장률 회복시기는 어떻게 보시는지.
▲시점을 얘기하기는 어렵지만 올해 하반기나 내년 상반기를 고비로 해서 턴어라운드 하지 않나 싶다. 그러나 잠재성장률 회복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회복 패턴은 `U자형`으로 판단되는데, 바닥의 기간은 정부 정책에 달려있다고 본다. 경기 사이클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투입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단기적으로 볼 때 재정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어느정도 경기가 회복된 다음에 재정건전성과 통화유동성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최대 과제는 경기회복이다. 사느냐 죽느냐의 관점이다. 우선 살아야 한다.
 
- 더블딥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어제 아침 전 IMF 수석부총재였던 앤 크루거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를 만났다. 지속 가능한 회복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부총재는 더블딥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얘기하더라. 개별주체의 불균형을 시정하는데 시간은 걸리겠지만 시정이 되면 상당기간 가지 않겠느냐, 회복이 반짝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자산가격은 늘 경기를 선행한다. 경기후퇴(리세션) 때도 먼저 꺼지고 회복 때는 먼저 올라간다. 분명 자산가격이 오르는 것은 예의주시해야 한다. 완전히 회복됐을 때는 인플레이션의 시그널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상승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본다. 거품 정도의 상태에 도달하려면 상당기간이 걸리지 않나 싶다. 물론 일부 지역, 일부 형태의 자산, 예를 들어 주가라든지 강남3구 아파트 가격은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자산가격이 상승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지방가면 미분양 아파트가 여전히 많다.
 
- 기업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구조조정과 경기를 연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구조조정은 경기와 관련없이 경쟁력 차원에서 꾸준히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회복의 잇점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게 된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 기간중에 세계경기의 회복기간이 상당히 있었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안돼서 세계경기의 잇점을 활용하지 못했다. 구조조정은 성장잠재력을 회복하는 키(key)가 되는 것이다. 경기회복의 시점을 앞당기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꾸준히 해 나가야 한다.
 
- IMF 때와 지금은 다르기 때문에 자칫 구조조정을 잘못하면 경쟁력을 오히려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위기 상황이니까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있고, 그렇게 해야할지도 모른다. 위기상황이 아니라면 현실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지금은 위기상황이니까 IMF 때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듯이 해야할 것들이 많다. 과거 위기가 아니었던 상황에서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못했던 것들을 해야한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노사관계가 아니겠나. 서비스산업 문제도 그렇다. 어려우니까 구조조정을 지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민간 자율의 구조조정은 잘 이뤄지지 않는 듯 하다. 정부가 지금보다 더 적극적이어야 하나.
▲IMF 때 했던 방식과 비슷하지 않겠나. 경쟁력있는 부문에 대해서는 정부가 개입해야하고, 경쟁력 없는 부문의 경우 그 시장 자체에서 구조조정이 일어나야 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기업을 구조조정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하지만 방향은 그렇게 가야 한다. 구조조정을 어느정도 해야하느냐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충돌할 것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구조조정이 잘 되느냐 아니면 못되느냐가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을 높일 수 있느냐의 관건이 될 것이다.
 
- 정부가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한다는 말씀이신지.
▲대원칙은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다. 금융권내에서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문제가 시스템에 대한 리스크라면 정부가 들어가야 한다. 시스템 리스크가 아니면 시장에서 해야한다.
 
- 경제위기 진정 이후 인플레이션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렇게 될려면 금융시스템이 정상화돼야 한다. 지금은 통화가 풀렸다가 얼마안돼 다시 한국은행에 들어가는 구조다. 통화 승수효과가 나오려면 투자도 이뤄지고 소비도 해야한다. 하지만 금융시스템이 정상화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는 것은 기업의 활동이 활발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금은 전반적인 인플레이션을 우려할 때가 아니다. 금융시스템을 정상 작동하도록 하는데 초점을 맞출 때다. 금융시스템을 작동시켜서 승수효과를 내도록 하는 게 관건이다.
 
- 일각에서는 달러 가치의 폭락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데.
▲그런 염려는 늘 제기되고 있는데, 그래도 대안은 별로 없어 보인다. 물론 달러를 선호하지 않으면 폭락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달러 가치가 약세로 갈 것이라는 관측이 일반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구 한쪽에서는 세이프티 헤븐은 미국이라고 말한다. 달러 폭락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 환율의 추세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다행스럽게도 최근에 외환시장이 상당히 안정됐다. 절대적인 안정은 아니겠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다. 그 배경중 하나는 수출이 줄어든 것 이상으로 수입이 감소해 경상수지가 흑자로 바뀌었다. 또 다른 하나는 통화스왑 등으로 원화의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외환시장은 금융시장에 비해 훨씬 더 안정화됐다. 두개 모두가 문제였다면 정부가 핸들링하기 힘들었을 텐데 다행스럽게 한쪽이 안정되고 있다.
글로벌 달러의 약세, 경상수지 흑자 전환, 통화스왑 등과 같은 외환시장에서의 안전망 구축 등을 감안하면 환율은 안정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 작년 리먼사태 이후 해외간접투자자금이 대거 빠져 나갔다. 올해 상당부분의 해외자금이 다시 들어올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그렇게 되면 원화가 급속히 절상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과거에는 선진국과의 금리차이가 많았는데 지금은 줄어들어 해외자금 입장에서 메리트는 떨어진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으니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영향을 덜 받으려면 외환시장의 규모가 커져야 한다. 그래야 환투기 세력 바깥에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지금의 상황에서는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봐야한다.
 
- IMF 때 외환시장을 너무 개방했다. 투기자금의 빈번한 유출입과 관련한 폐해가 적지 않다. 외환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분위기다.
▲외환시장의 문을 닫는 쪽으로 가는 것에 대해선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 처럼 개방됐을 때의 관건은 경제체질 강화 여부다. 그러기 위해서는 빌미를 제공하지 않도록 거시경제를 잘 운영해야 한다. 또하나는 국제공조가 중요하다. 네트워크를 잘 활용해서 신뢰도를 높이는 수 밖에 없다. 문을 닫고 있으면 감기는 안걸릴 수 있다. 반면 문을 열어놓으면 언제가 감기에 걸릴 수 있다. 다만 어떤 사람은 폐렴까지 갈 수 있고, 또 어떤 사람은 며칠 앓다가 일어선다. 경제체질의 문제다. 열어놓은 문을 갑자기 닫겠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규제를 강화하기 보다는 지금과 같은 개방상태에서 어떻게 하면 체질을 강화하고 네트워크를 활용해 견뎌낼 수 있게끔 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를 들어보자. 벨기에 등은 우리처럼 스몰 오픈 이코노미다. 그런 나라들도 언제나 외환 리스크에 노출돼 있었다. 그런데 EU(유럽연합)의 회원국으로 들어가서 그 나라 통화가 유로라는 기축통화가 됐다. 우리도 언젠가는 그렇게 가야할 것이다.
 
- 그렇다면 지금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외환보유고를 확충하는 방법 밖에 없다는 얘기인가.
▲외환보유가 신뢰의 디딤돌은 될지언정 위기를 막는 증거물이 될 수는 없다. 사실 2000억달러는 글로벌 마켓에서 보면 크지 않다. 중국과 일본도 걱정한다. 아무리 커도 버퍼가 되기 힘들다. 쏠림현상이라고 하는데 신뢰가 떨어지면 며칠 사이에 확빠져 나갈 수 있다.
 
물론 외환보유고는 중요하다. 이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앞을 대비할 수 있다. 미래의 통화통합에 대비해서도 경상수지 흑자를 통해 외화를 축적해야 한다. 그러나 외환보유고 자체로 외환위기를 막을 수는 없다. 그 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경제체질을 강화해야 한다. 금리 물가 등 거시경제 정책 운영이 그래서 중요하다.
 
- 한국은행은 금리 동결하면서 더 두고보자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한 입장에 대한 평가는 좋은 것 같은데.
▲그 입장에 대해 동의하는 쪽이다. 바닥에 가깝다는 신호가 나오니까 더 지켜보는 게 낫다고 본다. 전체적인 방향은 한은 입장과 다른 견해를 갖고 있지 않다. 지켜보는 시기인 것은 맞다고 본다. 숨고르기 시점이다.
 
- 각종 분야에서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해소방안이 있다면.
▲사람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복지정책은 두가지로 접근해야 한다. 하나는 가급적이면 의료보험 연금 같은 경우에 민간을 참여시키는 시장을 활용한 복지가 돼야 한다. 또다른 하나는 그냥 주는 정책보다 소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정책이다. 정부도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 전(前) 정부 때 접근 방식은 극빈층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었다. 시혜는 모럴해저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받을 때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못한다. 물론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사회안전망 강화는 필수적이다.
 
일자리 나누기를 보자. 기존 근로자도 희생을 해야하는데 그게 쉽지 않으니까 새로 취업하는 사람의 임금을 낮추고 있다. 불공평하다. 아버지가 아들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보더라도 일자리 나누기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앞으로 경기가 회복될 때를 대비해 기업은 예비군 형태로 양질의 인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지금은 비용일지 모르지만 일단 경기가 회복되면 양질의 인력에 대한 비용은 어차피 치러야 한다. 그걸 지금 치른다고 해석해야 한다. 지금은 구조조정할 때인데라는 시각으로 볼 것만은 아니다. 기업은 영속적인 주체를 전제로 하니까 회복될 때를 대비해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보는 게 맞다. 오히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양질의 인력을 확보하는 게 기업입장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 그래도 민간기업의 고용 창출은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어 보인다. 대안으로 공기업 부분에서 그 역할을 더 해줘야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기업 입장에서 보면 뉴 비즈니스를 찾아야 한다. 현재의 상품 가지고는 경쟁력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고 확보해야 한다. 공기업은 아직 군살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 효율성을 높이는 게 맞다고 본다. 산업전체적으로 보면 경쟁력 있는 새로운 분야로 고용이 흡수돼야 한다. 안타까운 게 그 것이 서비스산업이라는 것이다. 서비스를 산업으로 보고 있는 것은 최근이다. 상당부분 공공재로 봐왔다. 의료법인도 영리법인 허용돼야 한다. 그렇게 해서 경쟁력도 높이고 고용도 창출해야 한다. 서비스 규제를 많이 풀어야 한다. 규제를 푼다는 것은 경쟁을 시키겠다는 것인데, 이해당사자들이 막고 있다. 정부가 과감하게 나서야 하고, 이해당사자를 설득시켜야 한다. 이런 부분에서 일자리 창출의 여지가 많다고 본다.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면 고용없는 성장처럼 고용이 줄어드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 영리의료법인 허용에 대해 정부내에서도 이견이 팽팽한데.
▲안타까운 일이다.
 
- 경제 관료 출신이신데 정부 정책에서 아쉬운 게 있다면 한 말씀.
▲과거 경제개발시대 때는 정책 수립만 신경쓰면 됐다. 집행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때 해결하면 되는 구조였다. 그러다 보니 이해당사자의 조정 능력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민주화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이해당사자간 입장을 조정하는 집행이 더욱 중요해졌다. 좋은 정책이라고 해서 좋은 결과를 낳지 않는다. 전략적인 측면에서 고심할 필요가 있다. 기획재정부의 영문명에 전략(strategy)이 들어간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정책과 집행 모두 전략이 필요하다. 결국은 모든 것이 협상이고 타협이다.

▶ 관련기사 ◀
☞KDI 현오석 원장 "구조조정, 성장잠재력 핵심"
☞한경硏 김종석 원장 "올 여름 최대 고비온다"
☞(연구원장에게 묻다)김종석 "정부, 구조조정 주도적 역할해야"

경제연구원장에게 듣는다

- KDI 현오석 원장 "구조조정, 성장잠재력 핵심" - 한경硏 김종석 원장 "올 여름 최대 고비온다" - (연구원장에게 묻다)김종석 "정부, 구조조정 주도적 역할해야"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