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한국무역협회와 산업계에 따르면 미국 금리 인상은 신흥국 경기 침체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수출 부진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나타난 달러화 강세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는 가운데 투자자본들이 신흥시장을 빠져나가 미국으로 몰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환율만 놓고 보면 원화 약세가 수출 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하지만 최근의 유가 상승 기조가 제한을 받고 신흥국 경기가 타격을 받으면 우리 수출 실적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대(對)신흥국 수출비중은 점차 감소하고 있지만 여전히 총수출의 절반 이상(57.1%)을 차지한다.
김경훈 국제무역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미국 금리 인상에 따른 유가 하락, 신흥국 금융불안 등은 우리 수출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라며 “미국 트럼프 신정부의 정책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서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車업계, 신흥국·산유국 판매계획 차질..“美시장 공략 강구”
업종별로 보면 전반적으로 우려가 커졌다. 자동차 분야는 지난달말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로 유가 상승세가 지속하면서 중동 및 아프리카 산유국들의 경기 회복에 따른 자동차 수출 증가 기대감이 나타났지만 미국 금리 인상으로 김이 새버렸다. 꾸준히 성장해온 신흥국 시장에 대한 판매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내년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을 기대해온 브라질 등 중남미 지역 역시 미국 금리인상으로 경기 회복 시점이 미뤄지면 국내 자동차업계의 수출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현대차(005380) 관계자는 “미국 금리 인상 영향이 각국마다 다르게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판매 지역과 성향에 맞는 프로모션을 진행함으로써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며 “투자자금이 몰릴 미국 시장에서 제품을 더 많이 팔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설명했다.
현대모비스(012330) 등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 역시 신흥국 경기 침체로 인한 자동차 판매 감소를 우려하며 시장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최근 유가 상승 전망으로 업황 개선 기대감을 키웠던 조선업계는 아쉽다는 반응이다. 해양플랜트 사업의 회복이 지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율 변화로 인한 수출 경쟁력이 개선되는 것은 다행이지만 글로벌 발주가 예년 수준으로 늘어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현대중공업(009540) 관계자는 “저유가 상황에서도 수익을 낼 수 있는 해양플랜트를 개발하기 위해 오일 메이저와 함께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며 “기자재 국산화나 설비 표준화를 통해 제작단가를 절감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 “신흥국 수출 악영향”..항공, 비용 부담 증가
전자업계 역시 신흥국 수출에 악영향이 있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다만 북미 시장에서는 오히려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미국 금리 인상 자체보다는 업체별로 북미와 신흥국 시장의 매출 비중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보인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달러화 강세가 예상되면서 북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며 “현지 구매력 증가로 인한 수요 확대와 함께 원화 환산 금액 증가로 실적개선이 예상되지만 신흥국 경기 위축으로 이어지면 이 부분의 수출 위축은 우려된다”고 말했다.
반도체의 경우 환율 및 유가변동보다 시장 수급상황에 영향을 많이 받는 만큼 미국 금리인상으로 인한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한 전자부품업체 관계자는 “미국 기준 금리가 인상되더라도 환 헷지를 하고 있어서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다”고 전했다.
항공업계는 금리 인상으로 외화 부채의 부담이 커지는 것을 우려했다. 변동금리부 차입금과 임차료 등의 비용 상승 영향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한항공(003490) 관계자는 “금리 변동과 관련해 고정금리부 차입금과 변동금리부 차입금의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 이자율 상승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며 “변동금리를 고정금리로 전환하는 이자율 스와프계약을 체결하는 등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호무역주의에 신흥국 수출 위축까지..석화·기계업종도 우려
철강업계도 미국의 금리인상이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 인상이 원화 약세로 이어지면서 미국 수출 증가를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미국의 자국 철강산업 보호정책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신흥국 수출 위축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달러화 강세 여파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 제품가격 인상에도 걸림돌이 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미국의 금리인상은 복합적인 요소를 모두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단정짓기 어렵다”면서 “금리인상에 이은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정책의 방향이 우호적이지 않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일반기계 업종 등에는 유가 상승 움직임의 제약이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유가 상승에 제동이 걸리면 매출 회복이나 석유화학 제품 가격 인상이 지연될 수 있다. 신흥국 경기 침체에 따른 수출 차질도 우려된다. 미국 셰일가스·오일 개발이 지연되면 건설기계 및 공작기계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의료정밀·섬유 등은 對美 수출 증가 기대
한가지 기대되는 부분도 있다. 미국 금리 인상은 미국 경제가 회복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만큼 국내 업체들의 미국 수출 증가가 예상된다. 특히 선진국 수출 비중이 50~60%에 달하는 의료정밀기기와 섬유의 경우 미국 금리 인상 영향을 묻는 무협 설문에 대해 각각 34.5%, 27.0%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부정적’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각각 17.2%, 25.7%였다.
한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14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1년만에 금리 인상이다. 이에 따라 0.25~0.5%였던 미국 연방 정책금리는 지난해 12월 이후 1년만에 0.5~0.75%로 인상됐다. 뿐만 아니라 내년 금리 인상 횟수를 종전 2차례에서 3차례로 늘리면서 시장의 예상보다 매파적인 성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