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조용만기자]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가 최근 이색 제안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갈수록 커지고 있는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에서 헐값으로 사들인 알래스카를 비싸게 되팔자는 주장이다.
경제 칼럼니스트인 스티븐 펄스타인은 고유가로 러시아의 자금 사정이 좋아졌고, 매입 의지도 충분할 것이라며 미국이 1조달러 정도에 알래스카를 팔면 재정적자 문제를 단숨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실현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얘기는 아니다. 미국재정적자가 그만큼 심각하며, 해결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재정적자는 4130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3.6%를 차지한다. 클린턴 행정부로부터 정권을 넘겨받을 당시에는 흑자였는데, 부시 대통령 집권하에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라크 전쟁 등으로 돈 쓸 곳은 계속 늘어났는데 감세정책 등으로 세수는 줄어든 게 주원인이다.
재정적자는 미국 경제의 고질병중 하나로, 이를 흑자로 돌려놓은 것은 클린턴의 최대 치적중 하나로 꼽힌다. 반면 재정적자를 키워놓은 부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등을 치르며 집중포화를 받았다. 미국의 재정적자는 부시 행정부하에서는 크게 줄어들기 힘들다는 게 일반적 시각이다.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조차 "미국은 재정적자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했다"고 말할 정도다.
적자가 커지면 정부는 세금을 더 걷든지, 국채를 찍어 재정을 조달할 수 밖에 없다. 부시 대통령이 강력하게 밀어부치고 있는 영구감세를 감안하면 세금을 더 거둬들일 공산은 크지 않다. 답은 국채발행 뿐인데,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 국채 발행이 늘어나면 국채값은 그만큼 싸지고, 금리가 오르면서 소비부진과 민간 투자위축을 불러 경제에 부담을 주게 된다.
미국은 그동안 아시아 중앙은행 등이 국채를 받아주는 덕분에 빚더미속에서도 소비 위주의 경제를 유지해왔지만 적자폭이 확대되면서 해외투자자들의 국채 매입이 줄어드는 등 상황도 예전같지 않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 선진국들과 일본의 경우도 재정적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선진국들의 경우 특히 고령화에 따른 연금과 건강보험 등 복지비용 부담이 최우선 해결과제다. 개인의 재산이 신용을 좌우하는 것처럼 나라 재정형편도 신용등급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세계적 신용평가기관 스탠다드 앤드 푸어스(S&P)는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등 현재 최상위(AAA) 수준인 선진국들의 국가신용등급이 30년이내에 투자부적격 상태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급속한 노령화와 이에 따른 복지비용 부담이 재정적자를 심화시키고 국가부채를 확대시킬 경우 신용도 추락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5월 발표된 OECD 경제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국가채무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본 157.6%로 가장 높고 OECD 회원국 평균은 76.4%에 달하고 있다. 선진국들은 재정적자와 정부부채 감축을 위한 개혁조치에 잇따라 나서고 있다. 영국과 독일은 노령연금 지급연령을 65세에서 2~3년 높이고 일본은 고령자의 본인 치료비 부담을 줄이는 의료제도 개혁에 착수했다. 독일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재정적자를 줄이겠다며 공무원들의 크리스마스 보너스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나서자 공무원들이 일제히 반발하기도 했다.
재정적자의 증가 속도와 고령화 추세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한 시가 급한 상황이다. 올해 재정적자는 13조원을 넘어 국가 총부채가 250여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채무는 1997년보다 3.4배가 늘어났고 2008년에는 30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한국의 고령화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령화와 이에 따른 복지재정 수요는 커질 수 밖에 없다.
7년전 우리는 문민정부의 세계화 바람속에 곳간이 비는 줄도 모르고 흥청망청하다가 경제주권을 IMF에 저당잡히는 신세가 됐다. 바로 7년전인 1997년 12월3일 정부는 IMF와 `대기성 차관제공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이후 기업과 국민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선진국들과 비교해 현재 한국의 재정적자 규모와 국가부채 수준이 심각하지는 않지만,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위기가 빨리 덮칠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문제다. 미국처럼 땅덩이가 넓은 것도 아니고, 독도를 팔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