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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과 본질: "은혜에서 권리로"[김병철의 퇴직연금 개혁 시나리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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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 기자I 2026.08.22 15:4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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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금여, 20세기 미국서 임금으로 인정 받으며 전환점 마련
한국은 여전히 '마지막 보너스' 인식 있어 받자 마자 사용해 버려
소득 끊긴 늙은 자신에게 보내는 유일한 월급 봉투라고 생각해야

[칼럼니스트=김병철 한국퇴직연금개발원 대표] “퇴직금은 회사가 주는 마지막 보너스 아닌가요?”

아직도 많은 사장님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20년, 30년 회사를 위해 일해준 대가로 사장님이 주는 두툼한 위로금, 혹은 제2의 인생을 위한 ‘보너스’. 그래서 우리는 이 돈을 받으면 차를 바꾸거나 빚을 갚는 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공돈이나 다름없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이 돈의 성격이 정립되기까지, 서구 사회에서는 오랜 세월에 걸친 치열한 ‘개념 전쟁’이 있었습니다. 과연 퇴직금은 주인의 ‘선의’일까요, 아니면 노동자의 ‘권리’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퇴직연금 개혁의 첫 단추입니다.

19세기 런던, 늙은 집사의 눈물 — “이것은 은혜(Gratuity)다”

시간을 거슬러 산업혁명기 영국으로 가보겠습니다. 귀족의 대저택에서 평생을 바쳐 일한 집사가 은퇴하는 날, 주인은 떠나는 그를 불러 금화가 든 주머니를 줍니다. “자네, 그동안 내 수발드느라 고생 많았네. 이건 내 작은 성의일세.” 집사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당시 이런 돈을 ‘Gratuity(은혜적 하사금)’라고 불렀습니다. 어원인 ‘Gratitude(감사)’에서 알 수 있듯, 철저히 주인의 호의에 기반한 선물이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만약 주인이 기분이 나쁘거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면? 집사는 한 푼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평생을 바친 노동의 대가가 전적으로 주인의 변덕스러운 자비심에 인질로 잡혀 있었던 셈입니다.

20세기 미국, “아니다, 이것은 권리(Right)다”

이 불합리한 ‘하사금’ 문화를 뒤집은 결정적인 사건이 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일어났습니다. 철강 회사와 노동조합 사이의 소송전이었습니다. 노조는 “퇴직연금도 임금 협상의 대상”이라 주장했고, 회사는 “연금은 우리가 베푸는 복지 혜택일 뿐, 노조가 관여할 바 아니다”라고 맞섰습니다.

미국 법원은 이 논쟁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었습니다. 1948년 인랜드 스틸(Inland Steel) 사건에서 연방항소법원은 연금과 퇴직급여가 사용자가 마음대로 베푸는 복지 혜택에 그치지 않고, 임금·근로조건과 긴밀히 연결된 문제이므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쉽게 말하면, 퇴직연금은 주인의 선물이 아니라 근로자가 일하며 쌓아둔 보상의 일부, 즉 나중에 받는 임금이라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 법적 전환은 혁명이었습니다. ‘선물’이 ‘임금’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순간, 기업에게 퇴직급여는 ‘호의’가 아니라 반드시 책임져야 할 약속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이 돈은 회사가 기분 좋으면 주고 아니면 마는 선물이 아니라, 노동자가 자신의 몫으로 요구할 수 있는 재산적 권리의 영역으로 들어섰습니다.

한국의 현실 — 법은 앞섰지만, 인식은 영국에 머물러 있다

이제 한국을 돌아봅시다. 우리는 1953년 근로기준법을 제정하며 서구의 퇴직금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법적으로는 ‘후불 임금(일을 할 때 바로 주지 않고 미루어 두었다가 퇴직할 때 지급하는 임금)’의 성격을 가져왔지만, 우리의 인식은 여전히 19세기 영국 저택에 머물러 있는 듯합니다. 많은 사람이 여전히 퇴직금을 “고생했으니 받는 목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돈을 받자마자 깨서 소비하거나 창업 자금으로 써버리는 경향이 강합니다.

서구 사회가 “이것은 임금이다”라고 싸우며 쟁취해 낸 ‘연금의 철학’을, 우리는 “목돈 타서 뭐 할까”라는 ‘일시금의 환상’으로 소비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 제도가 퇴직금을 ‘연금’으로 유도하지 못하고 ‘목돈’으로 방치해 온 구조적 원인이 큽니다. Part 1에서 살펴본 ‘유리 연금’(이직할 때마다 깨지는 계좌)과 ‘마르는 배낭’(은퇴하는 날 일시금으로 증발하는 돈) 모두, 결국 이 돈의 본질이 ‘지연된 임금’이라는 인식이 뿌리내리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보너스’가 아니라 ‘생존 자금’이다

퇴직연금 2.0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름표부터 바꿔 달아야 합니다. 이것은 퇴사 기념 보너스가 아닙니다. 창업 밑천도 아닙니다. 젊은 날 커피 한 잔을 아끼고 휴가를 반납하며 일했던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내 피 같은 노후의 월급입니다. ‘지연된 임금’이라는 본질을 깨닫는 순간, 이 돈을 함부로 깰 수 없습니다. 그것은 훗날, 소득이 끊긴 늙은 자신에게 보내는 유일한 월급 봉투이기 때문입니다.

서구는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기업이 함부로 돈을 유용하지 못하게 막고, 개인이 함부로 깨지 못하게 잠그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는 이 소중한 개인의 권리를 어디까지 책임져야 할까요? 다음 장에서는 인류 최초로 이 ‘생존 자금’을 국가 시스템으로 확장시킨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의 이야기를 통해 공적 연금(국민연금)과 사적 연금(퇴직연금)의 역할 분담을 살펴보겠습니다. 1층과 2층이 어떻게 다른지, 왜 둘 다 필요한지 그 본질을 파헤쳐 봅니다.

기원과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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