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명불허전, 또는 백문이 불여일견. 국립극단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다시 본 뒤 떠오른 말입니다. 한 번 관람한 뒤에도 다시 보고 싶은 공연은 많지 않습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그런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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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초연부터 호평을 받은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국립극단 대표 레퍼토리로 여러 차례 무대에 올랐습니다. 이번이 다섯 번째 무대로 이달 초 누적 공연 100회 달성의 진기록도 세웠습니다. 장기 공연이 쉽지 않은 연극으로서는 이례적인 기록입니다.
◇시대를 관통하는 이야기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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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심엔 주인공 정영(하성광 분)이 있습니다. 정영은 지금으로 얘기하자면 지극히 평범한 서민입니다. 마흔이 넘어 뒤늦게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가진 정영은 권력에 대한 욕심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죠. 평범하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번엔 정영의 첫 등장부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임신한 아내(이지현 분)와 함께 “니나니 나니노~” 노래를 부르며 해맑게 등장하는 모습이 유독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이번에 다시 본 작품은 평범한 사람이 권력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 선택으로 허망한 인생을 살게 되는 이야기로 다가왔습니다. 조씨고아를 낳은 공주(우정원 분)의 부름을 받은 정영은 공주로부터 조씨고아를 대신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습니다. 평범한데다 착한 정영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합니다. 정영만이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조씨 가문을 위해 목숨을 스스럼없이 내놓습니다. 마치 그것이 옳은 일이라도 되는 듯이 말이죠.
정영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아이를 대신 희생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러나 정영의 선택은 과연 옳은 것일까요. 작품을 정영의 아내를 통해 이런 질문을 관객에게 던집니다. ‘복수’를 제목에 내걸었지만, 2막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복수도 허망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20년이 지나 비로소 빛을 본 복수는 또 다른 죽음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그 죽음은 또 다른 복수로 이어지겠죠. 정영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얼굴에 하얀 분을 바른 채 해맑던 모습을 읽어버린 정영을, 죽은 이들은 그를 외면한 채 지나갈 뿐입니다.
◇“이 세상은 꼭두각시 무대, 한바탕의 짧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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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은 꼭두각시의 무대라. 북소리 피리 소리에 맞추어 놀다 보면 어느새 한바탕의 짧은 꿈.”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두 번 등장하는 이 대사는 작품의 메시지를 잘 보여줍니다. 원한, 분노, 증오, 그리고 복수가 없는 행복한 세상을 함께 살자는 메시지입니다. 어떻게 보면 교훈적이지만,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이를 관객에게 공감시킵니다. “니나니 나니노~”라고 노래하며 해맑던 정영과 그의 아내의 일상이 계속 이어지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25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합니다. 만약 이번 기회를 놓쳤다면, 언젠가 다시 돌아온 공연은 꼭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몇 년 뒤에도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전하는 메시지와 작품의 힘은 변함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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