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T까지 직접 한 우기홍 대표…위원장도 ‘인상적’ 후문
우기홍 대한항공 대표이사는 지난 9일 열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간 기업결합 심사에 직접 출석,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10시간 넘게 진행된 전원회의서 가장 많은 발언을 했다. 우 대표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함께 대한항공 대표를 맡고 있는 전문경영인으로, 지난 2020년 대표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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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전원회의는 오전에는 공정위 사무처(심사관)와 피심인(심의대상 기업)이 각각 사실관계와 법적 쟁점을 PT 형태로 발표한 후 이에 대해 서로 반박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공정위에 익숙하지 않은 피심인은 대개 법무법인을 선임해 발표하게 한다. 대한항공은 대리인으로 업계 1위인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선임했기에 PT 역시 대리 진행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우 대표는 이날 심판정에 동석한 베테랑 정영진 변호사 등을 옆에 앉혀두고 자신이 직접 PT부터 진행했다. 대기업 대표가 심판정에 직접 나오는 경우도 드문 만큼 최후 진술이나 오후 위원 질의과정에서 간단한 답만 할 것이란 예상을 벗어났다. 우 대표는 오후 위원 질의시간에서도 일부 법률적 쟁점을 제외한 대부분의 답변을 자신이 했다. 그는 전원회의 직전 주 월요일에 진행된 비공개 의견 청취 때도 직접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도 PT부터 심의 전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우 대표에 대해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는 후문이다. 대기업 대표가 직접 PT부터 주도적으로 심의에 참여한 것은 우 대표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이날 심의에 참여한 한 상임위원 역시 “우 대표가 전문경영인으로서 현안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평했다.
◇ ‘공정위 출석 첫 총수’ 최태원…최후진술서 솔직한 속내 드러내
앞서 지난 12월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실트론 지분인수 관련 사익편취 의혹을 다투는 공정위 전원회의에 직접 출석해 화제를 모았다. 대기업 총수(동일인)가 계열사 사장이나 주요임원에게 위임하지 않고 직접 공정위 심판정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최 회장이 자신과 관련된 의혹인 만큼 직접 소명하겠다는 의지가 강해 직접 출석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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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 넘게 진행된 심의 내내 자리를 지켰던 최 회장은 이날 비공개 심의 및 최후 진술에서 발언을 했다. 그는 최후 진술에서 “실트론 인수가 그룹에 도움이 된다고 해서 참여했는데, 이 행동이 회사 이익을 가로챈 것으로 확인돼 당혹스럽다”며 “제 재산은 실트론 주식보다 훨씬 크고, 실트론으로 돈을 벌자고 SK에 손해를 끼칠 생각도 추호도 없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의 출석이 심의에 영향을 미쳤는지는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최 회장은 과징금은 부과됐으나 형사고발은 면제돼 최악은 피했다.
◇中企 대표 출석해 읍소는 빈번…출석 효과는 ‘명과암’
공정위 심의 과정에서 매출규모가 작은 중소기업 대표가 직접 출석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다만 우 대표처럼 PT까지 직접하는 경우는 없고 최후 발언 등을 통해 선처를 호소하거나 과징금 경감 등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은 과징금으로 회사 전체에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이 대기업까지 확산된 것은 공정위 처분에 대한 중요도가 더 커졌기 때문으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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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현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위법행위가 있었다면 임직원 등 대리인이 나오기보단 당사자가 직접 나와 선처를 바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호소력이 있지 않겠느냐”며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방어권 보장과 공정위의 정확한 심의를 위해서라도 법인 대표가 출석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려도 있다. 아무리 대표라고 해도 공정위 체계에 익숙하지 않으면 효과를 보기 어렵단 판단이다. 서울지역의 한 공정거래법 전문 교수는 “대표의 역량에 따라 출석여부가 도움이 될 수도 있고 크게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다만 디테일을 모두 챙기기 힘든 대표가 세세한 부분을 다투는 심의과정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