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전 실장은 지난 3일 안보전략비서관에 내정된 뒤 9일까지 청와대로 출근하면서 통일기반 구축 분야 업무보고, 중앙통합방위회의 등과 관련한 업무를 챙겼다. 그러나 10일부터는 출근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보전략비서관에는 전성훈 통일연구원장이 새로 발탁됐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춘추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천 전 실장 내정 철회 배경에 대해 “통일부의 필수 핵심요원으로 가장 중요한 인재여서 통일부 업무에 지장이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다른 분으로 대체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부의 입장을 배려했다는 게 민 대변인의 설명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이 같은 해명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필수 핵심요원’을 해당 부처와 적절한 조율도 없이 발탁했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내부갈등설이 제기된다. 천 전 실장은 통일부의 대표적인 ‘비둘기파(대북 온건파)’라는 점에서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남재준 국가정보원장, 김관진 국방부 장관 등의 ‘매파(대북 강경파)’ 라인과 갈등을 빚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천 전 비서관은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통일비서관실에서 근무했고,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담당관, 남북회담 기획부단장 등을 지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통일부 대변인과 통일정책실장 등 요직을 맡았지만, 박왕자 씨 피살 사건, 천안함·연평도 도발 당시에도 ‘대화’를 강조해 보수 진영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천 전 실장이 안보전략비서관에 내정된 후 남북 사이에는 이산가족상봉을 위한 논의가 오갔다. 북한은 지난 8일 남북고위급 접촉을 제안했고, 청와대와 정부는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를 열어 북한의 의도를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비둘기파와 매파의 갈등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개성공단 재가동 관련 남북회담 3차 회담 직전인 7월15일 남북실무회담 수석대표였던 서호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이 김기웅 정세분석국장으로 교체된 바 있다. 당시에도 청와대와 정부의 ‘매파’ 라인이 서 전 단장의 유화적인 회담 태도에 불만을 제기해 경질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이후 서 전 단장은 9월17일 남북출입사무소장으로 발령날 때까지 두 달 간 대기 상태에 있었다. 천 전 실장도 마찬가지 처지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는 천 전 실장 내정 이틀만인 지난 5일 통일정책실장 직무대리로 김기웅 남북협력지구발전기획단장을 임명했다.
일각에서는 천 전 실장이 신원조회 과정에서 탈락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가 과거 정부에서도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는 점을 고려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