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수연기자] 새 정권과 함께 혜성처럼 돌아왔던 `최틀러`, 최중경 기획재정부 1차관이 경질됐다. 인플레이션이 치솟는 시기에 고환율 정책을 밀어붙여 유가상승의 충격을 증폭시켰다는, 이른바 `경제팀 책임론`을 어떤 식으로든 물어야 한다는 부담이 최 차관 경질로 귀결됐다.
일종의 `변칙인사`의 불똥을 맞은 최중경 차관은 강성의 상징이다. 기획재정부 1차관이 오로지 외환정책만 담당하는 자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중경이라는 이름이 가장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건 역시 외환시장에서다.
그가 널리 알려지게 된건 2003년 이후다. 2003년 4월부터 2년간 재경부 국제금융국장으로 일하면서 달러/원 환율 급락을 막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 시장을 방어했다. 이에 많은 외환시장 참가자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정부의 개입으로 큰 손실을 입었다. 당시 시장은 `최중경에게 맞서지 말라`며 최틀러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특히 "절상을 막는 개입은 얼마든지 무한대로 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이면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발언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어록이 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외환시장 초강경 개입으로 환율은 안정됐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역외선물환(NDF)과 외환스왑 등 파생거래를 하면서 천문학적 손실을 입고 2005년 5월 환율정책라인에서 물러났다. 그가 국제금융업무에서 손을 뗄 때 `최중경 스타일`을 선호했던 수출 기업들은 탄식했고 외환시장에서는 반겼다고 한다.
최 차관은 2005년 7월부터 세계은행 상임이사로 일하며 잠시 비껴나 있던 최 차관은 강만수 장관이 연말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분과에 전격적으로 불러올리면서 재등장한다. 곧이어 강 장관 취임과 더불어 차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강 장관과의 인연은 1991년 재무부 국제금융국에서 사무관으로 일하면서 맺었다고 한다. 당시 국장이 강 장관이었다. 강 장관의 최 차관에 대한 신임, 특히 외환 등 국제금융업무에 대한 신임은 몹시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해관계에 따라 최 차관에 대한 평가는 극도로 엇갈린다. 하지만 두뇌가 비상하고 추진력이 뛰어나다는데 대해서만은 이견이 없다. 다만 차관 취임 이후 행보에 대해서는 이러쿵 저러쿵 평이 많았다. 장관 발언이 강하면 차관은 호흡을 고르는 역할이 필요한데, 두 사람이 동시에 강성이미지로 질주해 분담의 묘를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또 장차관이 모두 환율과 금리 등 시장에 관련된 발언이 잦아 혼란을 초래한다는 원성도 높았다.
그러나 재정부 내 직원들, 특히 부하직원들에게는 인기가 매우 좋은 편인데, 다분히 그의 보스기질 때문이다. 후배를 확실히 챙기고, 의리가 있다는 평이다. 최 차관 경질 소식을 전해들은 재정부 직원은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떠나서 참 이상한 인사"라며 "내부 직원 반발심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최 차관 경질에 따라 이른바 `최-강 라인`은 사라진다. 당국의 외환정책 또는 개입 스타일에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다.
후임인 김동수 신임 차관은 경력상 외환업무에 크게 간여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이 경우 현재 외환업무의 실무책임자인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의 역할이 부각될 수밖에 없다. 신 관리관은 뵈는 듯 안뵈는 듯 시장에 `손을 쓰는` 방식을 선호하는 등, 최 차관과는 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