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과 금속노조도 달라져야 합니다. 이념과 명분에 집착해 현장과 동떨어진 생색내기식 파업과 국민적인 외면을 받은 기존 운동에서 앞으로 탈피해 나갈 겁니다."
지난 25일 현대차(005380) 새 지부장에 당선된 이경훈씨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차 노조는 한국 강성 노동운동의 대명사다. 1987년 노조가 생긴 이래 94년을 제외하고 매년 파업을 벌이면서 그런 평가를 받았다.
이런 현대차 노조에 중도실리 노선의 후보가 당선된 것은 `하나의 사건`이자 `신선한 충격`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노조원들의 선택이 이미 민주노총을 탈퇴한 쌍용차, KT 등 20여개 노조처럼 노동운동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80년대 이후 이념지향의 노동운동이 순수하게 조합원의 이해관계에 집중하는 쪽으로 변모하는 실질적인 전환점이란 분석도 나온다.
◇ 노동계, 투쟁대신 화합 행보
올들어 KT, 쌍용차, 인천공항공사 등 단위노조 21곳, 3만6000여명의 조합원이 민노총을 탈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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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등 더 이상 현장을 무시한 정치적 투쟁과 파업은 조합원들에게 환영받지 못함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투쟁 동력이 약화될 수 있는 민주노총 입장에선 곤혹스런 표정이 역력하다.
특히 지난 8일 쌍용차 노조의 민주노총 탈퇴는 민주노총의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인 사례다.
무려 77일간에 걸쳐 진행된 쌍용차의 총파업은 민노총의 개입이 노사 문제 자체의 본질을 흐리고 정치성과 폭력성으로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KT노조 역시 탈퇴여부를 묻는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94.9%의 압도적인 찬성률로 민노총을 탈퇴했다.
민노총을 탈퇴한 한 회사의 노조원은 "민노총이 노사관계에 개입하니 노사 협상이 더욱 지연되는 등 정치적 힘겨루기에 이용되는 느낌이었다"면서 "조합원들의 실리 하나 챙기지 못하는 상급단체는 탈퇴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 탈퇴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변양규 박사는 "덩치가 커진 민노총은 하급단체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한다. 그는 "그렇기 때문에 일부 개별 노조들은 조합원의 실질적인 이익을 민노총이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을 느껴 탈퇴를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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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성노조의 대명사였던 자동차 노조원들 사이에 부는 변화의 바람은 민노총의 위기와 직결된다. 현대차 노조가 94년 이후 15년만에 중도실리 노선의 이경훈 후보가 선출된 것은 강성 노조인 현대차 노조의 이미지 쇄신을 의미하는 동시에 투쟁일변도의 민노총 투쟁 방식에 적잖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 위기의 노동운동, 그 해법은
"이대로라면 20년 전 한국노총이 '타도 대상'이었던 것처럼 민주노총 또한 타도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올해 초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지적했다.
그는 또 "위기관리능력이 집행부의 지도력이고 조직의 자정 능력이라고 할 때, 민주노총은 그 점에서 미숙했다"고도 했다.
산별노조는 당초 단일 노조로는 사측과 대등한 교섭력을 갖지 못한다는 판단 아래 단위 노조를 큰 덩치로 묶어 단결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결성됐다.
하지만 당초 목적은 변질된 채 몸짓만 비대해진 `공륭 권력`으로서의 폐단을 점차 드러내왔다.
또 민노총 핵심 간부의 성폭력 사건과 때때로 불거지는 도박 사건 등은 그 발생부터 이후 처리 과정까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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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해이와 정책적 대안의 부제 등 산별노조를 이끌어갈 리더십이 부족하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리더십 부제는 정책적 대안 없이 `빨간 띠`로 대변되는 투쟁 구호만 외침으로써, 시대적 흐름과는 점차 더 멀어진다는 설명이다.
노동행정연수원 박태주 교수는 "민노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인데, 민노총은 이번 정부 들어 정부의 대화 상대로서의 위치를 점하지 못해 더욱 사회적 영향력이 떨어졌다"고 했다.
이어 "특히 한국노총이 한나라당과 정책연대를 맺으면서 민노총은 더욱 설 곳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민노총은 이 외에도 산별교섭단체로서의 문제점도 드러내고 있다. 개별 노조가 아닌 산별교섭 형태를 띰으로써 금속노조, 각 지역의 지부, 해당사업장인 지회 보충 교섭 등 이중·삼종의 교섭에 따른 비효율성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또 기업별 노조의 현안 보다도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미국 쇠고기 수입 반대 등 정치성 파업은 노조원의 복지와 사측의 경영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박태주 교수는 "민노총은 사회적 지지를 어떻게 회복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면서 "내부의 리더십을 재정립하고, 투쟁 구호 대신 정책적 대안과 정부와의 대화 채널 등으로 여론의 지지를 회복하지 않으면 더이상 노동운동을 대변하는 기구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배상근 경제본부장장은 "민노총의 잇따른 탈퇴는 상급단체인 민노총이 근로자의 복지와 근로여건과는 무관한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초점을 맞추면서 근로자들의 거부감이 늘어난 결과"라고 말했다.
이어 "민노총도 정치, 사회적 이슈보다는 근로여건 등 근로자의 실질적인 이득을 위한 활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투적인 노동운동 보다는 노사의 중요한 당면 과제인 생산성 향상과 고용 등에 관심을 가지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노동자의 이탈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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