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릴오일 먹지마세요, 고래에 양보하세요 [헬프! 애니멀]

김화빈 기자I 2022.08.08 10:19:06

남극 동물들의 먹이 ‘크릴’ 40년간 70% 감소
오메가3 대체로 각광 받는 크릴오일? 아직 섣불러

[이데일리 김화빈 기자] 태평양 등에 서식하는 대왕고래는 포식자들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임신 전 열대지역으로 이동한다. 대왕고래는 출산 후 굶은 상태에서 비축한 지방을 우유로 바꿔 새끼를 키운 뒤 크릴이 풍부한 남극해로 다시 떠난다. 대왕고래는 오직 주식인 크릴을 먹기 위해 약 4개월간 굶주린 채 5000km를 이동한다. 만약 새끼를 데리고 도착한 남극 바다에서 크릴이 사라져있다면 대왕고래의 심정은 어떨까?

세상에서 가장 큰 동물로 알려진 대왕고래 (사진=그린피스)
◇지난 40년간 70% 줄어든 크릴

새우를 닮은 크릴은 대형 동물성 플랑크톤이다. 남극 청정해역에 서식하는 남극 크릴은 펭귄, 물범, 바닷새, 고래의 먹이다. 남극 먹이 생태계 뿌리인 크릴이 영양제와 낚시 미끼, 양식장 사료 등의 목적으로 남획되고 있다.

크릴은 1960년대 구소련에서 어획을 시작했다. 1980년대 들어 극단적 생태계 파괴가 우려되자 1993년 국제사회가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를 통해 크릴 어획에 대한 규제를 만들었다. 남극해양생물자원의 보전에 관한 협약에선 생태계 영향을 줄 수 있는 어획량을 60만톤으로 규정하고 어획량을 10~20만톤 선으로 유지했다.

하지만 남극 해빙 이후 2015년부터 포획량이 30만톤 가까이 증가했다. 남극보전협약이 남극 동물들의 크릴 소비량을 우선적으로 고려한 것도 아니다. 지난 40년간 크릴은 그 양이 70%가 줄었고 크릴만을 먹고사는 아델리 펭귄의 개체 수도 같은 기간 동안 80%가 줄었다. 한국은 2015년 2만 264톤이던 생산량이 2019년 4만 2864톤으로 5년 만에 2배 증가했다. 무엇보다 크릴 잡이에 중국이 뛰어들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면서 크릴 개체수는 더욱 위협받고 있다.

그린피스 등 국제환경단체들은 크릴 남획을 막기 위해 2030년까지 남극을 포함한 전 세계 바다의 30%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공해의 1.2%만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크릴 어획에 대한 비판이 일자 150년 전통을 지닌 영국의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홀랜드앤바렛은 지난 2018년 크릴오일 관련 제품을 출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기름을 녹이는 기름’ 크릴오일 효용성은?

크릴오일은 크릴에서 추출한 오일로 EPA와 DHA를 함유하고 있어 혈당 수치를 낮춘다고 알려져있다. 크릴오일에 함유된 인지질은 물에 잘 녹는 성분으로 체내 흡수율을 높여준다. 크릴오일이 기름을 녹이는 기름으로 알려지면서 혈관 건강 보조제로서의 수요도 증가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크릴오일과 가장 많이 비교되는 건 단연 오메가3다. 그러나 크릴오일은 건강기능식품이 아닌 그냥 ‘식품’이고 오메가3는 건강기능식품이면서 의약품이기도 하다. 효과성 측면에서 크릴오일이 오메가3의 대체재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크릴오일은 오메가3 성분에 우리 인체에도 있는 인지질과 항염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아스타잔틴을 함유한 것이다. 그러나 크릴오일을 먹을 때 얻을 수 있다고 기대되는 효과는 오메가3보다 못하다. 또 아스타잔틴 등 각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성분도 단일 제제에 비해 적은 양이기 때문에 복용 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남극 크릴 ‘생물학적 탄소 펌프’

빙하 가장자리에 사는 크릴은 식물성 플랑크톤 섭식을 통해 탄소를 제거해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데 크게 기여한다. 이 과정을 생물학적 탄소 펌프라고 한다. 크릴 등 해양 생물이 호흡·배변 활동을 하거나 탄소를 지닌 사체로 심해에 가라앉게 되면 탄소가 바다에 격리되는 것이다. 이렇게 바다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1/4를 흡수한다.

남극 동물플랑크톤 ‘크릴’ (사진=극지연구소)
작년 미국 럿거스대학 해양·해안과학과 조교수 그레이스 사바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바다 내 탄소 흐름에서 물고기의 역할을 분석한 결과 바다에 격리된 이산화탄소 중 물고기와 관련된 탄소가 연간 16억 5000만톤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바다 표층수에서 심해로 가라앉는 전체 탄소의 16%를 차지한다.

이처럼 크릴은 대기 중의 탄소를 바다로 격리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인간의 포획 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의해서도 위기를 맞고 있다. 남극의 기온이 지난 50년 동안 약 3°C 상승하면서 크릴의 집인 빙하가 녹고 있는 것이다.

그린피스 조사 결과 크릴을 잡는 어선들은 결과 펭귄 서식지와 고래의 먹이활동 영역을 포함한 생물다양성 집중지역 인근에서 활동한다. 1993년 낡은 국제 협약으로는 크릴 생태계의 붕괴를 막을 수 없다. 남극 생태계와 인간을 위해 크릴 어업에 대한 전지구적인 합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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