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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원회는 지난 8월 말 논의에 속도를 내고, 이르면 올 가을 입법안을 마련하는 방침을 밝혔다. 세계 최대 규모의 디지털자산 시장 중 하나인 한국에서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지금까지 제정된 디지털자산 관련 법률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법안이 될 것이다.
정부의 목표는 단순히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난 7월 재정경제부와 한국은행을 비롯한 관계기관은 원화 국제화를 위한 종합 로드맵을 발표했다. 적절한 규율 체계를 갖춘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이 로드맵의 핵심 축이며, 원화의 국제적 활용도를 높이고 첨단 제조 및 무역 강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위상에 금융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을 보다 가까이 끌어올릴 수 있다. 2025년 4월 기준 원화가 전 세계 외환거래에서 차지한 비중은 1.8%로, 통화별 순위는 12위였다.
다만 법안에 담긴 일부 접근 방식이 이러한 목표에 부합하는지는 보다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제시된 방안 중 하나는 해외 스테이블코인 발행사가 자사의 스테이블코인을 한국에서 유통하기에 앞서 국내 지점 또는 현지 사무소를 설치하고 등록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국내 기관이 해당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 및 정산하려면 발행사가 ‘해외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로 등록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이 최종 법안에 반영된다면 아시아 주요 규제 시장 가운데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에 가장 제한적인 접근 방식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한국은 같은 시기, 해외 은행이 본국에서 등록한 뒤 비거주자를 대상으로 원화를 보유하고 결제·정산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에서 별도 인가를 요구하는 대신 본국 감독당국의 규율을 인정하는 방식이다. 반면 스테이블코인 법안은 다른 접근 방식을 요구한다. 본국에서 이미 가장 엄격한 수준의 규제를 받는 발행사에도 한국 내 거점을 두도록 하는 것이다. 인정 제도는 대체로 상호주의에 기반한다. 한국이 지금 해외 발행사에 적용하는 기준은 향후 한국의 스테이블코인이 싱가포르, 일본, 영국 또는 미국 시장의 인정을 받을 때 마주하게 될 기준이기도 하다.
대안은 이미 존재하며, 국내 정책당국에도 낯선 접근이 아니다. 미국 지니어스법(GENIUS Act)은 한국에서도 스테이블코인을 전략적 차원에서 논의하는 주요 계기 중 하나가 됐다. 지니어스법은 미국과 유사한 수준의 규제 체계를 갖춘 국가와 ‘상호인정 협정(reciprocal arrangements)’을 체결하고, 해당 국가의 해외 발행사에 제도적 진입 경로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를 담고 있다. 국경을 넘어 활용되는 결제·정산 수단이라는 스테이블코인의 특성을 고려한 현실적인 접근이다.
주요국 규제당국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싱가포르 금융당국은 해외에서 발행된 스테이블코인 가운데 일정 요건을 충족한 일부를 인정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유럽연합(EU) 역시 디지털자산 규제 체계를 개정하기 위해 유사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호주 금융당국은 일정 요건을 충족한 해외 발행사에 대한 별도 면제 범주를 마련했다. 반면 정교한 인가 체계를 구축했지만 동등성 인정 문제를 남겨둔 홍콩은 이제 이를 사후적으로 보완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직 관련 법안을 마련 중인 한국은 인정 체계를 처음부터 법률에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접근이 국내 스테이블코인 논의에서 제기된 우려를 외면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서로 다른 네트워크와 규칙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이 유통될 경우 화폐 가치가 분절될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하지만 국가마다 별도 인가를 요구하면 규제 장벽으로 인해 국경을 넘나드는 일관된 상환과 결제·정산이 오히려 어려워질 수 있다. 유사한 수준의 규제 기준을 갖춘 국가 간 상호인정은, 필요한 안전장치를 유지하면서도 여러 시장에서 액면가 상환이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는 원화와 달러 중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다. 국내 이용자들은 이미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내 유동성 여건과 국경 간 시장 접근의 제약으로 인해 글로벌 기준 가격과 다른 가격에 거래하기도 한다. 인정 제도를 도입하면 해외 발행사를 규제의 테두리 안으로 편입해 준비자산의 건전성과 상환권, 자금세탁방지 체계를 감독할 수 있다. 동시에 원화 스테이블코인도 다른 대안의 부재가 아닌 자체 경쟁력을 바탕으로 경쟁할 수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둘러싼 국회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한국의 규제 수준을 낮추지 않으면서도 해외 발행 스테이블코인의 인정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세 가지 보완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금융위원회가 준비자산의 건전성, 상환권, 독립적인 감사 등 엄격한 기준에 따라 다른 국가의 스테이블코인 규제 체계를 동등한 수준으로 인정할 수 있도록 명확한 법적 권한을 부여해야 한다.
둘째, 지니어스법과 마찬가지로 동등성 판단이 이뤄지는 동안 국내 시장 참여가 해외로 유출되지 않도록 전환기간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모든 해외 발행사에 한국 사무소 개설을 요구하기보다는 금융위원회의 감독을 받는 거래소와 은행, 커스터디 사업자 등 국내 중개기관이 현지 규제 준수의 접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누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어느덧 1년에 가까워지고 있다. 하지만 더 큰 질문은 국내 기관이 실제로 어떤 스테이블코인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이다. 정책당국이 이 문제에 올바른 해답을 내놓는다면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단순 인허가 체계 법제화를 넘어설 수 있다. 원화의 국제적 위상을 한국 경제의 역량에 걸맞게 높이고, 국내 디지털자산 시장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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