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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로직에 따르면 올 1월부터 5월까지 미국과 유럽 주식 시장에 157개 기업이 신규 상장해 총 179억달러(약 22조4000억원)의 자금을 수혈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628개 기업이 IPO를 통해 1920억달러(약 240조4000억원)를 조달한 것과 비교하면 금액 기준 90.68%가 감소했다.
전 세계로 범위를 넓히면 같은 기간 총 공모자금은 전년 동기 2830억달러(약 354조3000억원)에서 810억달러(약 101조4000억원)로 71.38% 감소했다. 상장 기업의 수도 지난해 1237개에서 596개로 반토막 났다.
뉴욕 증시의 경우 주식 시장이 호황을 보여줬던 지난해 1분기부터 3분기까지 기업들이 앞다퉈 IPO에 나섰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FT는 “지난 2월 말 발생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시작된 IPO 시장 부진이 완화되지 않고 있다”면서 “2분기 IPO 물량도 전년 동기 대비 급감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무법인 제너앤블록의 IPO 전문 마틴 글래스 선임 변호사는 당국의 규제 움직임으로 얼어붙은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 시장에서도 원인을 찾았다. 스팩은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것을 목적으로 설립된 명목상 회사(페이퍼컴퍼니)다. 지난해 900개가 넘은 미국 시장의 신규 IPO 중 3분의 2는 스팩이 차지했지만 올해는 3월 기준 48개 스팩이 상장하는 등 대폭 쪼그라들었다. 스팩 시장 과열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지난해 “유명인이 관여했다고 해서 해당 스팩에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경고하는가 하면, 지난 3월에는 투자자 피해를 막기 위해 스팩 감독 강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글래스 변호사는 “지난해 수많은 기업들이 한꺼번에 상장하더니 악재 또한 동시에 몰려들었다”면서 “작년 수준에 도달하긴 힘들겠으나 상황이 안정되면 IPO 시장은 다시 회복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 대어 일부 남았지만…“내년 연기 가능성↑”
일부 IPO 대어는 상장을 추진 중이다. 미국 보험사 AIG는 생명·연금보험 사업 부문을 분사해 ‘코어브리지파이낸셜’이란 법인을 신설하고 IPO 하는 방안을 지난 3월 SEC에 제출했다. FT는 이들의 기업가치가 200억달러(약 25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영국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컨슈머헬스케어 자회사인 헤일리온도 올 여름 런던 주식 시장 상장을 목표로 IPO를 준비하고 있다. IPO에 성공한다면 헤일리온의 기업 가치는 최근 10년래 런던 증시에서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FT는 IPO를 둘러싼 전반적인 환경은 악화됐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가 석유·가스 기업들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고 풀이했다. 지난 2월 노르웨이 주식 시장에 상장한 석유·가스 생산업체 바르 에너지는 8억8000만달러(약 1조1000억원)를 IPO로 조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금융 상황이 개선되는 데 시간이 필요해 다수 기업들이 IPO를 내년으로 연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로펌인 화이트앤케이스의 IPO 전문 이니고 에스테브 선임 변호사는 “상황이 갑자기 달라질 수 있지만 근본적인 시장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다들 숨죽이고 있다”면서 “더 나은 조건을 위해 기다릴 수 있는데 굳이 지금 IPO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