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의 "반란" 선언.. "기업주인은 나"

오마이뉴스 기자I 2005.06.02 14:43:15

[새로운 소액주주운동 모색 ①] 전문가 전유물서 일반주주로

[오마이뉴스 제공] 소액주주운동은 최근 8년간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 왔다. 지난 1997년 한보철강에 부실 대출을 제공한 제일은행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소송에서 이긴 것을 시작으로, 이후 소액주주운동은 참여연대의 주도아래 "재벌개혁"을 중요한 화두로 내걸었다.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05년, 이 땅의 소액주주운동은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시민단체 등 전문가 집단의 소유물처럼 인식돼 오던 것에서 최근엔 일반 주주들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소액주주에서 추천한 인물이 사외이사로 선임되는 일이 있는가 하면 회사와 상생을 추구하는 소액주주 모임도 차차 생겨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2005년 이 땅에 불고 있는 새로운 소액주주운동의 모습을 2회(① "개미"들의 기업주인 선언 ② 기업별 소액주주 모임 소개)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주 ▲ 시민단체 등 전문가 집단의 소유물처럼 인식돼 오던 소액주주운동이 최근엔 일반 주주들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28일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김상조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이 발언권을 요구하는 모습. ⓒ2005 남소연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한 상장기업의 개미들이 "반란"을 모의하고 있다. 최근 소액주주의 추천에 의해 선임된 사외이사가 처음으로 이사회에 참석해 대표이사 해임을 위한 이사회 소집을 요청한 것. 소액주주가 대표해임 이사회 소집요청 반란의 주인공은 강원랜드 소액주주협의회(회장 박종철)다. 강원랜드는 지난 3월 국내에서 최초로 소액주주가 추천한 박종철 강원랜드 소액주주협의회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지난해 현대증권이 노동조합과 소액주주가 추천한 인물을 사외이사로 선임한 사례는 있었으나 소액주주 단독으로 추천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박 대표는 소액주주를 대표해 처음으로 참석한 이사회를 마치고, 그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소액주주의 감시자 역할을 회사 내부에서 할 수 있게 됐으니 예전보다 훨씬 정확하고 신속하게 감시자 역할을 이어가겠습니다." 박 대표는 또 이 자리에서 김진모 사장의 경영능력 부족과 주주 가치 하락 등의 이유를 들어 대표이사 직무정지 및 해임을 위한 이사회 소집을 요구했다. 강원랜드 소액주주협의회는 과거에도 경영진을 상대로 자신들의 입장을 관철시킨 바 있어 소액주주들이 상장사 사장의 해임을 주도한 첫 사례가 될지 주목되고 있다. "주주 자본주의 폐해" vs "소액주주운동 새 지평 열어" 강원랜드 소액주주 모임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김선웅 좋은기업 지배구조연구소장은 "그간 시민단체 중심으로 진행된 소액주주운동에서 벗어나 일반 주주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그 해법도 모색한다는 점에서 강원랜드 소액주주 모임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강원랜드 소액주주 모임은 그동안 회사 경영진과 대주주에 맞서 강력한 힘을 발휘해 왔다. 부실기업이 아닌 우량기업에서 주주들의 위임장을 모아 처음으로 임시주총 소집을 요구한 것을 비롯해 정부의 폐광기금 인상을 저지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한승호 현대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주가치 극대화란 측면에선 (강원랜드 소액주주의 활동을)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그러나 주주가치 역시 회사와 얽힌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가치와 맞물려 있는 만큼 소액주주의 권익만을 위해 회사가 존재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밝혔다. 폐광지역 주민의 민생고 해결을 위해 설립된 회사가 주주 가치만을 최우선으로 삼을 경우 이해당사자의 피해가 뒤따를 수 있다는 지적이다. 홍성국 대우증권 투자분석부장도 "주주가치만을 지나치게 내세워 기업 경영의 발목을 잡을 경우 주주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김선웅 소장은 "그동안 시민단체가 소액주주운동을 위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해 주었다면, 강원랜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젠 일반 주주들이 그렇게 보장된 틀 안에서 스스로 회사를 감시·견제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등 전문가 전유물서 일반주주로 사실 그동안 소액주주 운동은 크게 두가지로 나뉘었다. 먼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 중심으로 진행된 재벌 개혁운동이다. 참여연대의 등장으로 몇 %의 지분만을 갖고도 수십 개 계열사를 거느리던 "총수지배구조"는 급속도로 붕괴됐다. 불과 8~9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 속에서나 그려보던 일을 참여연대는 현실로 끄집어냈다. 그러나 이는 막상 소액주주들의 권리는 "대의"에 파묻혀 뒷전에 놓이고 말았다는 한계를 떠안아 왔다. 두 번째는 퇴출기업 주주들이 한데 모여 회사의 회생을 찾기 위한 소액주주 모임이다. 최근 들어 퇴출기업이 쏟아지면서 관련 모임도 비례해 늘어났다. 하지만 이는 "사건"이 터진 후에야 각자의 이익을 찾기 위해 한시적으로 결성돼, 결국엔 회사와 또 다른 갈등을 빚으며 투자자들에게 더 큰 피해를 가져오기 일쑤였다. 하지만 강원랜드 소액주주 모임은 달랐다. 회사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 때 불쑥 모임이 꾸려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참여연대가 나서서 운동을 주도하지도 않았다. 박종철 대표는 강원랜드 소액주주 모임의 특수성을 "장기투자 문화"에서 찾았다. ▲ 강원랜드 소액주주가 추천한 사외이사 박종철씨는 최근 이사회에 참석해 대표이사 해임을 위한 이사회 소집을 요청했다. 사진은 강원랜드 전경. ⓒ2005 강원랜드 제공 장기투자가 "제2의 소액주주운동" 앞날 가늠 현재 강원랜드 소액주주는 모두 3만여 명. 이 가운데 2000여 명이 소액주주 모임에 회원으로 가입했다. 박 대표는 "이들 중 대부분은 3년 이상 장기 투자를 목적으로 투자에 나섰으며 99년 비상장 시절부터 주주로 활동한 이들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이처럼 장기투자는 "또 다른 소액주주운동"의 앞날을 가늠할 중요한 열쇠다. 김상조(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은 "소액주주든, 기관투자가든, 외국인이든 장기투자로 가야지만 회사 경영진이나 대주주를 향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소액주주나 국내 기관투자가와 달리 외국계 투자자들이 적은 지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장기투자는 배당이 곧 한해 장사다. 그 만큼 기업의 배당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강원랜드 소액주주 모임 역시 그동안 줄기차게 고배당을 요구해왔다. 박 대표는 "외환위기 당시 회사로부터 배당성향(당기순이익 가운데 배당금으로 지급되는 부분을 백분율로 표시한 것) 50%를 보장받고 액면가의 3.7배에 주식을 사들인 투자자가 많다"며 "그러나 지난해 배당성향이 35%에 그친 만큼 앞으로도 배당확대를 요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원랜드 홍보팀 관계자는 "고배당 요구가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소액주주 역시 회사 구성원의 일부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정책을 세워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홍성국 부장은 "소액주주들이 고배당만을 요구하거나 회사 경영에 지나치게 간섭할 경우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밝혔다. 소액주주 활동이 기업의 잠재 성장력을 해치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젠 회사와의 상생 추구하는 소액주주 돼야 이런 맥락에서 강원랜드 소액주주 모임이 지향하는 "회사와의 상생"은 의미가 깊다. 박 대표는 기본적으로 한 기업의 주주는 그 회사와 적대적 관계에 놓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경영진과 대주주에 대한 견제와 감시 역시 일방적인 대립만으로 비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올 여름 회사와 함께 "주주우대 멤버십 제도"를 도입해 일정 조건을 갖춘 주주에게 시설 이용료 할인 등 각종 혜택을 부여할 방침"이라며 "경영진의 불법행위에 대한 감시 외에 회사와 상생할 수 있는 길을 계속해서 찾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소액주주와 기업간의 상생·협력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양측이 대립각을 세워왔을 뿐 아니라 소액주주운동의 본래 기능이 경영진과 대주주의 불법행위에 대한 감시와 견제에 있기 때문이다. 회사와의 상생을 추구하는 강원랜드 소액주주 모임에서 "사장 퇴진"이란 전에 없던 "카드"를 꺼내든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선웅 소장은 "지나치게 회사와의 상생을 추구하다보면 소액주주운동의 본래 기능인 감시활동에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여기에 기업 구성원간의 불평등한 구조도 여전히 한계로 남아있다. 김상조 교수는 "상생과 협력은 기본적으로 기업을 구성하는 각 이해관계자들이 공정한 룰에 의해 자신들의 행위가 보장받을 때 가능하다"며 "하지만 아직까지 그 룰이 기업의 편에 기울어 있어 우리 사회에서 소액주주와 기업간의 상생을 논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기업 경쟁력 높이는 방식으로 옮아가야 소액주주 모임의 내적 투명성이 우선시 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소액주주 모임 대표가 특정세력과 결탁해 지나치게 사익만을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성국 부장은 "소액주주들이 외국인 주주와 힘을 합쳐 지나치게 고배당만을 요구하면 기업의 장기투자가 어려워 잠재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며 "소액주주 활동을 하면서 회사나 대주주의 이익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소수의 개인주주들이 단기적 이해관계에 얽매일 경우 이들이 주도하는 소액주주운동은 성과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박종철 대표는 "기본적으로 우리는 회사 경영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움직인다"며 "다만 감시자의 역할만을 분명히 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사건건 기업의 발목을 잡기보다는 이젠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소액주주운동이 옮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김경신 한양증권 상무는 "대주주와 소액주주는 서로 대립하며 허물을 따지는 관계가 아니라 한 곳을 향해 서로 함께 나아가려는 관계가 돼야 진정한 의미에서 소액주주운동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기 위해서는 소액주주운동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며 "단순히 시세차익을 얻기 위한 투자자의 범주에서 벗어나 장기주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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