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의원은 17일 저녁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김 의원은 1980년 5월 17일 신군부가 계엄령을 선포해 서울 거리 곳곳에 사복경찰과 전경이 진을 치고 있던 기억을 떠옹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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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은 “자수 후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가 전두환 대통령 취임과 함께 특사로 풀려났다”며 “살인마가 대통령이 되는 치욕의 시절, 암울한 나날 끝에 겨울쯤 광주를 찾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김 의원은 이번 코로나19 확산 사태 과정에서 광주가 코로나19 확진자 폭증으로 큰 피해를 입은 대구에 협력한 일도 전했다. 전날 글에서 21대 총선 낙선과 관련해 대구의 표심에 다소 서운한 감정을 비쳤던 김 의원은 이번엔 광주와 대구의 연대 가능성에 주목했다.
김 의원은 “광주는 품이 넓다. 3월 초부터 대구는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했다. 수용할 병상이 제한적이니, 자가격리 밖에 방법이 없었다”며 “그때 광주가 손을 내밀었다. ‘빛고을전남대’ 등 두 곳의 병원을 비워 병상을 내주셨다”고 소개했다.
김 의원은 당시 광주에서 낸 특별담화에서 “1980년 5월 광주가 결코 외롭지 않았던 것은 광주와 뜻을 함께해준 수많은 연대의 손길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우리가 빚을 갚아야 할 때”라고 밝힌 구절을 소개하며 광주의 연대의식에 경의도 표했다.
김 의원은 “여러분의 희생에 힘입어 오늘 저희가 세계 1등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살아남은 저희가 앞으로 더 좋은 나라 만들겠다. 부디 편히 쉬시라”며 5월 영령에 추모의 뜻을 전하며 글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