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준기 기자]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정국을 뒤흔든 주말 내내 청와대에는 ‘침묵 속 긴장감’만 흘렀다. 자원외교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남긴 메모의 후폭풍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자금 문제로까지 번지면서다.
성 전 회장이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조직총괄본부장이었던 홍문종 새누리당 의원에게 2억원을 건넸다는 의혹이 11일 추가 폭로됐지만 청와대는 어떠한 반응도 내놓지 않았다. 검찰이 12일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수사에 착수한 만큼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한다는 분위기만 감지됐다.
어찌됐든 박 대통령이 지난해 ‘세월호 정국’과 ‘정윤회 문건파문’에 이어 또다시 정치적 시련을 맞게 됐다는 게 청와대 안팎의 탄식이다. 파문의 핵심이 ‘돈’이라는 점에서 그 어떤 정권보다 도덕성에 자부심을 보여 왔던 박근혜 정권이기에 치명타는 더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칫 검찰 수사 과정에서 일부 의혹이 진실로 드러날 경우 정권의 뿌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는 그래서 나온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집권 3년차 박 대통령 앞에 놓인 수많은 국정과제가 일거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안타까움도 배어 나온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노동·금융·교육·공공의 4대 부문 구조개혁 등 주요 국정과제 추진에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농후해진 탓이다. 더 나아가 노사정 대타협 결렬에 따른 민주노총·전국공무원노조·전국교직원노조 연합 총파업 등의 악재와 맞물릴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추모 1주기에 마치 유가족 등을 외면하는 모습을 비추며 순방을 떠나게 된 것도 악재다.
그렇다고 마땅한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폭로였던 만큼 진실로 여기는 분위기가 큰 데다, 실체적 진실을 밝힐 방법을 찾기도 쉽지 않다. 청와대 일각에서 박 대통령이 오는 16일 중남미 순방 출국 전 이번 파문에 대한 메시지를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검찰이 진실 규명에 착수한 가운데 박 대통령의 메시지가 오히려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정치적 오해를 불러올 수 있어 메시지 발신은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그동안 박 대통령이 각종 현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혀왔던 통로인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나 국무회의 등이 출국 전 예정돼 있지 않은 가운데 굳이 관련 의혹을 해명하려다 야권에 공격의 빌미만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제7차 세계 물포럼 계기로 정상회담 등의 일정이 빼곡히 잡혀 있어 당분간 현안에 대해 직접적이거나 명시적인 언급은 자제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박 대통령이 언제 어떻게 무슨 입장을 밝힐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