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원화강세가 한국경제를 위협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금융위기 이후 기업들의 환율대응 능력이 높지 않고, 정부의 대응도 한계가 있어 원화강세가 지속될 경우 일본처럼 장기 저성장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다.
LG경제연구원이 5일 내놓은 ‘빨라진 원화강세 한국경제 위협한다’라는 보고서에서 “원화강세가 계속되면 기업 경쟁력이 악화되고, 해외 투자가 늘어나며 국내 투자와 고용, 생산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6월말 대비 10월말 원화 절상 폭은 8.3%로, 올 하반기 세계 주요 통화 중 두 번째로 높았다. 특히 실질실효환율은 5.2%로 국제결제은행(BIS) 추계 대상 61개 통화 중 절상 폭이 가장 컸다. 명목실효환율도 5.4%로 올라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이처럼 원화가 강세를 보이는 이유는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로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올해 9월까지 경상수지 흑자는 488억달러로 지난해 전체 흑자 규모인 431억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연말에는 660억달러에 달하며 경상GDP 대비 5%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수출입이 동반 부진한 불황형 흑자 성격이 짙다.
또 외국인 투자자금의 지속적인 유입도 원화 가치를 끌어올리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내 주식시장에서 7월과 8월 각각 1조3480억원, 1조5240억원을 순매수했다. 9월에는 순매수 규모가 무려 8조3320억원으로 급증했으며, 10월에도 5조원을 넘겼다.
그나마 2011년 이후 국내 자본의 해외 순유출 규모가 커졌고, ‘외환규제 3종세트’로 불리는 선물환포지션 규제, 외국인 채권투자 과세, 단기 외화차입에 대한 부담금 부과 등 정책이 원화 절상 압력을 상쇄시키고 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원화가치가 단기간 급등하면서 당분간은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이 둔화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정책당국의 노력만으로는 이를 막기 어려워 내년에는 원화가 달러당 1000원대 초반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분간 달러당 1050원이 지지선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내년에도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가 예상되고, 미국이 양적완화를 축소할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이 계속된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원화가 10% 절상되면 수출이 5%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 연구위원은 “원화강세가 지속되면 기업들이 이를 버틸 여력이 없어 해외생산을 늘릴 것이고, 이 과정에서 국내 제조업의 생산과 고용이 위축될 위험이 있다”며 “원화절상과 경상수지 흑자가 공존하는 일본형 불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단기적으로 미세조정 차원의 시장개입과 외국자본 유입 억제 조치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내수확대를 통해 성장세를 높이고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적절한 수준으로 줄여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