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out)그린스펀의 `수수께끼`에서 무엇을 배웠나

안근모 기자I 2010.10.11 11:15:14
[안근모 이데일리 경제부장] "지난해 6월 이후 연방금리를 1.5%포인트나 인상했는데도 장기채권 금리가 떨어진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수수께끼다."

지난 2005년 2월, 당시 미국 연준 의장이던 앨런 그린스펀의 유명한 `수수께끼(conundrum)` 발언이다.

물론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상할 때 장기금리가 반드시 따라오르기만 하는 건 아니다. 긴축조치로 물가가 안정되고 성장세가 둔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서 장기금리는 오히려 떨어지기도 한다. 실제 당시 미국의 한 지역 연준 총재는 "연준이 물가를 잘 관리할 것이라는 시장의 신뢰를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착각이었다.

수수께끼를 만들어 낸 주범은 연준 자신이었고, 외국인 투자자들은 종범이었다.

연준은 초저금리 정책에서 탈피하기 위해 본격적인 금리인상 사이클에 돌입하고도 자신이 없었다. 매번 `신중한(measured)` 태도를 버리지 않았고, 금리 인상폭도 0.25%포인트를 넘기지 않는 `베이비 스텝(baby step)`에 그쳤다.

연준이 시장을 망치지 않을 것이라 믿은 미국 주택시장은 여전히 활기에 넘쳤고, 낮은 시장금리가 만들어낸 유동성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쏟아져 들어온 달러를 거둬들인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은 이를 다시 미국 채권시장에 쏟아 넣었고, 미국의 장기금리는 낮게 깔리면서 주택시장과 소비시장에 유동성을 펌프질했다. 

7개월이 흘러서야 `수수께끼`를 풀었는지 그린스펀은 `도취감(complacency)`이란 용어로 갈아타며 시장에 경고음을 울렸다.

"장기간의 경제적 안정과 낮은 위험의 시대는 종종 사람들의 도취감을 고조시키지만, 이는 결국 위험자산 가격 하락을 수반하는 반전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이다."

그러나 정작 도취감에 빠져 있었던 것은 그린스펀 자신이었다. 그리고 때는 늦었다. 미국 주택시장은 이미 둔화되는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고, 다음해부터는 부진이 뚜렷해졌다. 그리고는 곧 파국이 왔다. 투자자들도, 정부도, 중앙은행도 모두 물이 끓어 죽을 때가 돼서야 수온이 오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냄비 속의 개구리처럼. 
 
그린스펀의 수수께끼 발언이 나온 지 5년이 지나 우리의 중앙은행 한국은행 주변에서도 비슷한 소리가 나오고 있다. 뒤늦게서야, 그것도 단지 0.25%포인트의 기준금리를 올려놓고 `수수께끼`를 논하는게 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주변 정황이 5년전 미국의 모습을 온통 빼닮아 있기에 전혀 예사롭지가 않다.
 
집값이 떨어질 조짐에는 DTI를 풀고 금리인상을 중단하며 신중(measured)한데, 전세값이 뛰는데는 "심각하지 않다"며 여유롭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패를 읽은 시장은 이제 "내년에 집값 오른다"며 세력을 모으고 있다. 
 
해외로부터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고, 주식과 채권값은 돈의 힘을 앞세워 쉬지 않고 강세행진을 펼치고 있다. 추락하는 환율을 자극할까봐 금리인상을 함부로 못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는 대목까지 보태서 보면 지난 2005~2007년 거품기를 연상시킨다.
 
경제위기를 가장 빠르게 벗어난 나라, G20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대한민국의 정부와 중앙은행과 투자자들은 모두 집단적으로 도취감(complacency)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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